▲ 한계희 기자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원자력연구원의 간부가 노조를 설립한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탈퇴를 종용하고, 불법파견 소송을 취하하라고 강요한 녹취록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원자력연구원은 지난해 9월 계약관계에 있는 사내하청회사가 비정규직 조합원에게 노조탈퇴를 요구하고, 이를 거부한 조합원을 해고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노조가입을 막은 주체가 도급회사가 아니라 원청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해당 비정규 노동자들은 원자력연구원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현대 같았으면 아작을 냈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과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이 28일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원자력연구원의 박아무개 핵연료연구개발부장은 지난 16일 자신의 부서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노조탈퇴를 강요했다. 하청회사 소속인 비정규 노동자들이 지난해 10월 대전지법에 낸 근로자지휘확인 소송 첫 공판을 앞둔 상황이었다.

박 부장이 직원들에게 했던 발언은 도가 지나쳤다. “내가 그래서 자네들 노조 탈퇴하라고 그랬어”, “원장님·경영진 다 포함해서 악이 이만큼 올라와 있어”등의 발언이 이어졌다. 소송과 관련해서도 “소송이 어떻게 판별할(판결날)지는 모르겠지만 (자네들이) 졌을 경우에 어떤 사태가 일어나는지 각오하고 있어”, “법정에서 만나면 적과 적이야. 삼성이나 현대 같았으면 아작을 냈어”라고 협박했다.

원자력연구원은 녹취내용을 모두 인정했다. 이종민 홍보협력팀장은 “발언이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의문의 여지없이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당 직원에 대한 조치를 포함해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파견→기간제→파견' 비정규직 돌려쓰기

원자력연구원의 사내하청 사용은 꽤 오래된 일이다. 임철홍(35)씨는 2004년 5월 비파괴검사를 주요 업무로 하는 업체인 ㄱ사에 입사했다. 합격통지서는 ㄱ사에서 받았는데, 임씨가 출근한 곳은 원자력연구원이었다. 그는 원자로에서 부도체를 반도체로 만드는 중성자전환도핑(NTD) 공정에서 일했다. 그 공정에는 실장으로 불리는 책임자가 있었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정규직 서너명과 같은 일을 했다. 임씨처럼 NTD실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는 13명이었다.

같은 일을 했지만 임씨의 소속은 ㄱ사에서 ㄷ사로, 다시 ㄱ사로 오락가락했다. 그러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쏟아지던 2007년 기간제가 됐다. 기간제법에 따라 2년 기간제한 규정이 적용될 즈음인 2009년 해고됐고, 다시 ㄱ사로 취업했다. 전형적인 비정규직 돌려쓰기다. 임씨는 현재 공공운수노조 원자력연구원지회장을 맡고 있다.

원자로 안전관리 업무를 하는 강아무개(40)씨는 2007년 박사급 정규직이 퇴직하자 그 직원이 하던 업무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불법파견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연구원은 노조 설립 움직임이 일자 부랴부랴 도급회사 직원을 관리하는 현장대리인(도급회사 직원)을 배치했다. 원청 직원이 하청노동자를 직접 지휘하면 불법파견(위장도급)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심상정 의원은 “모범적 사용자가 돼야 할 공공기관이 불법파견을 활용하고, 노조활동을 방해하고 있다”며 “고용노동부는 불법·부당노동행위를 면밀하게 감독하고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원 관계자는 "단순 반복업무에 한해 도급을 준 것"이라며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원자력연구원은 수년간 150명에 달하는 사내하도급 노동자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부는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부가 2011년 조사한 ‘2010년 300인 이상 사내하도급 현황’에 따르면 원자력연구원이 고용한 사내하도급 노동자는 ‘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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