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마니타스 대표
박상훈

한국 정치를 나쁘게 만드는 데 기여한 유행어들이 여럿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프레임이 아닌가 한다. 이 말은 지난 5~6년간 민주통합당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과용되면서 마치 민주통합당을 대표하는 정치언어 같다는 느낌을 줬다. 물론 프레임 이론의 가치를 필자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래 전 안토니오 그람시도 말했지만, 인간에게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사실을 인식하는 측면이 분명 있다. 따라서 프레임 이론이 말하듯 사실 그 자체보다도 사실을 인식하는 어떤 개념 내지 인식의 틀이 미치는 영향을 잘 생각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 동의하기 어려운 일에 반대할 경우에도 그것이 자칫 상대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강화해 주는 것은 아닌지 주의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개념도 인간의 현실 모두를 포괄하지는 못한다. 프레임이라는 개념 역시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지 않으면 긍정적 측면 못지않게 부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큰 부작용은 민주통합당을 게으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정당이라면 응당 시민 생활의 현장에 있어야 하고, 그곳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와 때로 모순적이기도 한 요구들을 통합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필자가 보기에 민주통합당 활동가들은 대부분 탁자에 둘러앉아 프레임 짜기로 시간을 보낸 느낌이 든다. 사회로부터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프레임, 자신들의 개념 틀을 사람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믿는 태도도 강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의 언어와는 거리가 있는, 광고와 마케팅의 언어가 지배하기 시작했다. 민주통합당이라는 상품이 소비자인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비춰지게 만들까를 고민해야 한다는 포지셔닝이란 개념도 덩달아 많이 쓰였고, FGI라고 불리는 표적 집단 면접을 통해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정치상품을 개발하고 프레임을 짜 주는 전문가들이 우대받기 시작했다. 이들과 계약해 그들의 보고서를 받고 그에 따라 선거를 기획하고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이 이제는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패턴이 되고 말았다. 그런 시도들도 잘 사용하면 유익함이 있겠으나 문제는 그것이 선거의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한 점에 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정당 조직과 당원들의 역할이 무시되는 경향이 심화됐다. 민주통합당 활동가들과 대화하면서 느끼게 된 것은, 앞으로 이들에게서 민주정치가 내포하는 윤리적인 측면이나 공적 토론에 적합한 마음상태를 보기는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전략적 사고와 공리주의적 가치에 매몰된 그들의 선거기획이 성공한다 해도 그것이 공동체에 가져다주는 선한 효과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프레임 이론을 숭앙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사실성의 가치에 대한 경시’도 문제가 많다. 맛에 대한 개념 없이 맛을 정의하기 어렵다고는 하나, 아무리 그래도 실제로 먹어 봐야 맛을 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사람들의 인식을 특정 방향으로 이끄는 노력이 꼭 좋은 것만도 아니다. 다양한 삶의 현실을 존중하고,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딜레마 앞에서 고민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자가 되기는 어렵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만든 프레임에 스스로 갇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략적 사고에 이끌리다 보니 말의 현란함을 동반할 때도 많다. 그러면서 보통 사람들의 언어가 사라지고 전문가다운 분위기를 풍기는 용어를 동원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것 역시 좋은 일이 아니다. 시민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야단하고 그래야 ‘개념 시민’이 되고 민주주의를 향유할 자격이 있는 듯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런 생각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있다. 독립적인 판단력을 갖도록 교육을 받았거나 재산세를 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시민권을 줬던 시기, 즉 보통선거권이 주어지기 이전 시기를 민주주의라고 하지 않듯이 말이다. 민주주의는 평범한 보통 사람을 위한 것이다. 오래 전 조지 오웰이 말했듯이 “연합해야 할 사람은, 사장에게 굽실거려야 하고 집세 낼 생각을 하면 몸서리쳐지는 모든 이들”이지 특정의 인식을 공유한 사람들만이 아닌 것이다. 2012년 선거에서 민주통합당은 자신들이 만든 프레임에 갇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했다. 그들은 ‘이명박근혜’, ‘민주 대 반민주’, ‘2013년 체제’ 프레임과 같은 ‘정치적 종말론’에 의존했고, 그들만의 인식의 틀 속에서 질 수 없고 져서도 안 되는 선거를 했기에, 지고 나서도 왜 졌는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더 비극적인 것은 그들이 제공한 프레임을 믿고 따른 지지자들을 어찌할 바 모르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아닐까 한다. 이 부조리함, 누가 책임져야 할까.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parsh03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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