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정 기자

"솔직히 투쟁사업장 조합원들은 민주노총 지도부를 어떻게 뽑는지 관심도 없어요."

지난해 민주노총 임원직선제 논란이 불거졌을 때 한 투쟁사업장 노동자에게 "직선제 논란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지자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한 말이다. 당장 '오늘은 또 누가 죽었네', '철탑농성 며칠째네' 하는 상황에서 '웬 한가한 소리냐'고 되묻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직선제 논란은 민주노총에게 '늪'처럼 작용한 게 사실이다. 직선제는 민주노총 조직혁신의 방안으로 제기된 만큼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중요한 시기마다 번번이 발목을 잡는 변수로 작용해 왔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직선제 논란으로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사퇴했다. 대선을 코앞에 둔 중차대한 시기에 지도부 공백이 발생한 것이다. 직무대행체제를 꾸렸지만 곧이어 열린 대의원대회에 대한 절차상 문제가 확인되면서 7기 임원선거가 중단됐다. 이어 비상대책위가 세워지는 등 초유의 사태가 이어졌다.

투쟁을 지도하고 이끌어 가야 할 노동계 내셔널센터의 비정상적 운영이 계속된 가운데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의 죽음이 잇따랐다. 목숨을 걸고 철탑과 굴다리 위로 올라간 노동자들의 농성도 해를 넘겼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노동자들의 절규가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도 직선제 논란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가뜩이나 7명밖에 안 되는 비대위원들은 투쟁 현장 찾으랴, 규약개정 간담회에 가랴,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 내몰렸다. 한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는 "저쪽(새 정부)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전쟁을 선포했는데, 도대체 민주노총은 어디 가서 무엇을 하고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즉각적인 직선제 실시'를 주장하는 진영에서는 급기야 민주노총 위원장실 점거농성을 벌였다. 24일 정기대의원대회에 직선제 안건을 상정하지 못하게 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도 법원에 냈다. 조직 내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사법부를 택한 것이다. 가처분 신청 소식에 "이제 압수수색 들어오는 거냐", "짐을 챙겨 놔야 하는 거냐"며 웃지못할 농담을 하는 민주노총 상근자를 보며 느낀 답답함은 비단 기자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민주노총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제출된 직선제가 되레 조직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데 일조하는 형국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24일 대의원대회에서 직선제 2년 유예를 결정했다. 노동현안 해결에 쓰여야 할 민주노총의 투쟁력이 상당부분 소진된 느낌이다. 이제라도 노동자들 곁으로 달려갈 채비를 했으면 한다. 더불어 8기 지도부는 직선제로 뽑기로 결정한 만큼 임원직선위원회에서 직선제 준비를 철저히 했으면 한다. 투쟁하는 노동자 곁에 있는 민주노총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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