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그놈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김민기씨가 작곡한 ‘작은 연못’의 가사 일부다. 대학 신입생 시절 필자도 즐겨 불렀다. 남북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작은 연못 속에 사는 예쁜 붕어 두 마리의 얘기로 비유해 더욱 공감이 컸다. 작은 연못-예쁜 붕어-싸움-죽음.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정규직화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불현듯 이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남북분단과 현대차 원·하청 연대. 사실 비슷한 부분이 많다. 남북분단이 있기까지 수많은 국내외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듯이 현대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숱한 변수가 맞물리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다만 현대차 원·하청 연대는 현재진행형이어서 남북분단의 비극적 결말을 피해 갈 가능성이 아직 열려 있는 게 다른 점이다. 현대차 정규직지부와 비정규지회의 역할이 이 지점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지난 시기 금속노조 산하 사업장의 원·하청 연대는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았다. 캐리어 광주공장이나 GM대우(한국지엠) 창원공장처럼 정규직노조 집행부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과 의지를 갖고 있었던 경우조차 원·하청 연대는 파행과 패배로 치닫고 말았다. 그만큼 제조업 현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계급적 연대는 힘겨운 것이다. 밥그릇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력한 대자본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명분과 실리, 당위와 현실을 적정한 수준에서 조율하고 절충하지 않으면 논란과 평가만 무성할 뿐 내실은 사라지고 남 탓과 패배주의만 앙상하게 남는다.

거두절미하고 단언한다. 현대차 현장에서 매일 땀 흘리는 노동자들이 노사 간 역관계와 정치 정세, 시민사회 여론, 주체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총체적으로 판단해 결정하고 현대차 자본에 맞서 원·하청 연대의 튼실한 진지를 강화할 때만 이 고비를 극복할 수 있다.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성공이든 실패든 연대책임을 함께 져야 한다.

이미 알고 있는 잘못된 전철을 밟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불법파견 교섭까지 성사된 마당에 현대차가 신규채용안을 들고나오면서 전선이 교란되고 원·하청 연대도 새로운 시험대에 들게 됐다. 다들 예상한 자본의 공세였지만 현장은 심각하게 동요하고 여론도 불리하게 조성됐다. 이런 때야말로 당사자들이 한목소리로 해법을 제시하고 자본을 역공하면서 시민사회의 공감과 지지를 다시 불러일으켜야 한다. 현장 사내하청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의 힘을 보여 주고 1사1노조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전화위복의 호기로 삼아야 한다.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르면 이미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의 조합원들이나 다름없다.

포도청 같은 목구멍 앞에 주눅 들지 않는 노동인권 감수성은 불가능한가. 최종심인 대법원의 판결조차 묵살하고 최병승 1인의 정규직화와 꼼수에 불과한 신규채용만을 강제하는 현대차 자본의 파렴치한 행태를 넘어서는 것이 불가능한가. 2004년 고용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도 정규직화 투쟁이 난관에 직면하자 목을 매 자결해 버린 류기혁 열사의 한을 조금이나마 푸는 것이 불가능한가. 현행범인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책임을 묻는 것이 불가능한가. 송전철탑 고공농성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두 사내하청 노동자가 환한 얼굴로 땅을 되밟는 것이 불가능한가.

마지막까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KT노조의 사례처럼 정규직-비정규직 단결과 연대가 실패하면 결국 공멸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금속노조와 정규직지부·비정규직지회가 이견과 쟁점에 매몰돼 분열하지 말고 모든 힘을 다해 당면한 현안투쟁을 승리로 만들어 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원·하청 연대에 결정적으로 균열이 가거나 어느 일방이 연대를 폐기하는 수준으로 치닫지 않도록 살얼음 위를 걷듯이 진중해야 한다. 큰 실수 없이 정규직-비정규직 연대를 강화하면서 끈기 있게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 비정규직운동 역사상 가장 유리한 조건에서 전개된 이번 투쟁마저 패배하면 모든 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 일파만파로 악영향을 미칠 게 자명하다. 현대차 원·하청 연대의 알찬 결실이야말로 2013년 새해 벽두의 가장 큰 희망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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