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수
공인노무사
(민주노총 법률원)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와 시·도 교육감들의 사용자성 부인, 여러 개의 노조로 조직된 복잡한 이해관계.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의 단체협약·임금협약 체결을 위한 2012년 공동투쟁은 이처럼 많은 악조건 속에서 시작됐다.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구성, 첫 번째 고개 넘다

급식실 조리실무원·과학실 실험보조·행정실보조·도서관 사서·영어강사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직종의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을 전국적으로 조직하고 있는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전국여성노조는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를 구성하고,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의 사용자인 교육과학기술부 및 지역교육청들을 상대로 공동교섭·공동투쟁을 전개하기로 합의했다.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제도는 과반수노조로서 교섭대표노조가 되면 단체교섭·협약체결·쟁의행위 실시 여부 등 모든 권한을 독점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그런데 반드시 과반수노조가 ‘승자독식’하는 구조로만 교섭창구를 단일화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공동대표제를 채택했다. 크고 작은 갈등을 조율하고 양보하는 과정을 거쳐 3개 노조의 권리·의무와 운영원칙과 기준 등을 담은 기본협약서를 체결했다. 조합원 숫자의 적고 많음에 구애받지 않고 3개 노조의 위원장들이 동등하게 연합해 교섭대표노조의 대표권을 행사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각 지역교육청을 상대로 교섭요구공문을 발송하는 것부터 교섭요구안 확정, 노동쟁의 조정신청, 쟁의행위 찬반투표, 쟁의행위, 노동위원회 신청에 이르기까지 3개 노조가 공동으로 논의하고 합의해 3개 노조 위원장 공동명의로 진행해 왔다. 그렇게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의 본격적인 공동교섭과 공동투쟁은 시작됐다. 지난해 11월3일 1만명을 넘는 조합원들이 집결한 학교비정규노동자대회를 개최했다. 같은달 9일에는 공동파업까지 벌였다. 가히 모범적인 공동투쟁을 전개한 것이다.

교육감 사용자성 확인, 두 번째 고개 넘다

지난해 4월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국립대 부설학교 소속 조합원에 대해서는 교육과학기술부장관에게, 공립학교 소속 조합원에 대해서는 각 시·도 교육감에게 임금·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단체교섭 요구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교육과학기술부장관과 각 시·도 교육감은 하나같이 "학교장이 사용자이니 학교장에게 교섭을 요구하라"고 답했고, 노조법이 정한 창구단일화 절차를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 이후 수차례에 걸친 교섭요구에도 교섭요구사실공고를 행하라는 노동위원회의 초심·재심 결정에도 불구하고 교육과학기술부장관과 각 시·도 교육감은 법원의 확정 판결이 있을 때까지 교섭에 응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학교장이 직접 채용공고를 내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으며 업무지시도 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장이 사용자이고, 교육과학기술부와 시·도 교육청은 그저 각 학교를 관할하는 행정청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각 학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설립·경영하는 기관이고, 따라서 각 학교장이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한 채용공고·근로계약서 작성·업무지시 등을 행했어도 그것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를 위임받아 행한 것이다. 학교장이 사용자가 될 수는 없다. 결국 학교를 설립·경영하는 주체인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사용자다. 학교장을 일반 사기업의 영업소장이나 공장장 등과 유사하게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최근 중앙노동위원회는 9개 시·도 교육감이 사용자성을 부인하면서 창구단일화 절차를 이행하지 않는 등 교섭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결정했다. 이어 서울행정법원도 9개 시·도 교육감이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의 사용자로서 창구단일화 절차를 이행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남은 것은 교섭, 그리고 단단하게 하나 되는 것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이 각 시·도 교육감들의 태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어쨌든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은 두 가지 어려운 고개를 넘어 여기까지 왔다. 이제 남은 것은 교육과학기술부장관 및 각 시·도 교육감과 실질적으로 교섭해서 고용을 보장받고, 반토막짜리 임금·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지금까지 하나의 노조처럼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고 투쟁해 온 경험으로 진짜 하나의 노조로 함께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의 관심과 응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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