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은 왕이다, 오늘도 열심히 일하자.”

“5년 전에 산 물건 바꾸러 왔어요. 제품에 이상이 있으니까 바꿔 달라는 거 아니에요?”(KBS 개그콘서트 중에서)

고객을 왕으로 모시다가 병들어 가는 감정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일과건강은 지난 11일 오후 서울 도봉구 도봉숲속마을에서 '2013 노동자 건강권 포럼'을 개최했다.

김태흥 감정노동연구소 소장은 “감정노동 텔레마케터의 경우 전화를 먼저 끊을 수 있는 권리를 주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고객에게 일방으로 사과하지 않을 권리를 줘야 한다”며 “감정노동의 강도가 강한 직종의 경우 주기적으로 휴식을 취하고 정신적 배려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서비스연맹이 2010년 발표한 직종별 우울증 발생빈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화장품 판매원은 32.7%, 카지노 딜러는 31.6%, 계산원은 26.5%로 높게 나타났다.

서비스연맹은 감정노동자·소비자·정부·기업의 역할을 제안했다. 감정노동자는 자기 존중감을 높이는 인식을 갖고 소비자는 감정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며, 정부는 산업재해 인정을 통해 감정노동자를 보호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기업에는 △안전보건 전담부서 설치 △사내 심리상담실 운영 △사업장 내 욕설 및 폭언 방지책 마련 △고객에 의한 성희롱 예방 매뉴얼 보급을 요청했다.

윤미옥 서비스연맹 동원F&B노조 총무부장은 “백화점이나 마트에 파견돼서 일하다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하는 고객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속으로 화를 삭일 수밖에 없다”며 “이런 고객을 상대할 때 원청업체에서 막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감정노동을 인정받기 위한 법제화 관련 논의도 이어졌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신적 질병을 산재로 인정하는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성종 서비스연맹 정책실장은 “감정노동이 노동으로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산재법 개정과 더불어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도 개정돼야 한다”며 “감정노동의 실태를 알려 내고 법률개정안 통과를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한국도로공사가 지난해 10월 선포한 감정노동자 인권보호헌장이 눈길을 끌었다. 헌장에는 △감정노동자가 악성고객으로부터 인격적인 수모를 당하지 않도록 대처방안 수립 △심리치료 프로그램 지원 △표준화된 고객응대 지침 제공 등이 담겼다.

김민정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조사과 여성인권팀 조사관은 “인권위원회는 각 회사에서 감정노동자 인권보호헌장을 만들도록 장려하고 있다”며 “올해 안에 여성 감정노동자의 인권향상을 위한 법제 개선 권고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포럼에서는 △발암물질과 직업성 암 △화학물질 유출사고와 지역사회의 대응방향 △산업재해를 줄이는 방법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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