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문 랠리’라는 주식시장 용어가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종합주가지수가 상승하는 것을 말한다. 정책의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새 정부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커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김대중 정부 출범 직전 주가상승률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이런 흐름은 정치권으로 옮아간다. 새 정부 출범 후 야당이 새 정부에 일정기간 협조하는데 이를 허니문 기간이라고 한다.

불행히도 우리 정치사를 보면 그 기간은 매우 짧았다. 최근 출범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의 인선을 둘러싸고 정치권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박근혜 당선자·인수위와 야당이 대립각을 그리고 있다. 윤창중 인수위 수석대변인, 김경재 국민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 윤상규·하지원 청년특별위원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야당은 이들을 ‘밀봉 4인방’이라며 교체를 촉구하고 있다. 이동흡 헌법재판소 소장 지명자, 인요한 국민대통합위 부위원장도 사퇴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청와대가 권력비리로 수감된 이명박 대통령 측근인사들의 특별사면을 거론하면서 정치권의 갈등은 증폭되는 양상이다. 이쯤되면 잔치는 이미 끝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렇다면 노사관계에서는 허니문 기간이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노사관계에선 허니문은 없었다. 물론 노사관계를 통계지표로만 보면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011년 노사분규 발생건수는 65건으로 87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이후 증가했던 노사분규가 2004년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서 안정권에 들어섰다는 분석이다. 그런데 이런 해석은 함정에 빠지기 쉽다. 노사분규 발생건수는 줄었지만 건당 분규평균지속일수와 노동쟁의신청건수는 그 추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건당 분규평균지속일수는 30.2일을 기록했는데 2011년에는 30.6일로 나타났다. 노사분규는 줄었지만 노사갈등 강도는 강하고 장기화된다는 얘기다. 같은 기간 노동쟁의신청 건수도 그리 줄지 않았다. 벼랑 끝 타협을 하는 관행이 바뀌지 않았다. 노무현·이명박 정부가 출범했던 2003년과 2008년도 이런 추세였다. 두 정권의 출범 첫 해의 노사관계에서 허니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노동사건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노무현 정부 출범한 2003년에는 화물연대에 이어 철도노조가 잇따라 파업을 벌였다. 새 정부 출범 후 석 달도 채 되지 않았다. 앞서 손배가압류에 항의해 두산중공업노조 배달호 조합원이 목숨을 끊은 데 이어 하반기에는 김주익 한진중공업지회장이 목을 맸다. 언론에선 친노동정권이 출범했다고 했지만 노사관계는 격랑에 휩싸였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에도 이런 기류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은 2008년 4월 총선에서 153석을 차지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을 장악했다. 하지만 그 해 5월 촛불집회라는 광장의 저항에 직면했고, 노동계는 ‘미친소 저지파업’으로 대거 동참했다. 되돌아보면 두 정권 모두 출범 첫 해의 노사관계는 매우 불안정했다. 박근혜 정부는 인수위 단계서부터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노동자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갈등을 예고했다. 노조에 대한 한진중공업의 손배가압류, 쌍용차의 정리해고와 회계조작, 현대차 불법파견, 유성기업노조 탄압 등 묵혀진 노동현안이 즐비하다. 그런데도 박근혜 당선자는 노동사건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선 당시 여야가 쌍용차 국정조사를 합의했음에도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가는 곳마다 말을 뒤집고 있다. 인수위 위원 구성을 보더라도 고용·복지분과위에는 노동현안을 풀 수 있는 인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와 핵심 실세들이 노사관계를 어떻게 보느냐가 드러난 것이다.

이러니 야당과 노동계가 노동현안을 중심으로 ‘반박근혜 전선’을 형성하려 하는 것 아닌가. 진정 박근혜 당선자가 국민대통합과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면 실패한 역사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적어도 박근혜 당선자는 비즈니스 프렌들리인 이명박 대통령과는 달라야 한다. 노동자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 화답해야 한다. 그래야 야당과 노동·시민사회단체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다. 허니문 기간은 거저 얻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 당선자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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