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있어서 좋은 것이 있고, 없어야 좋은 것이 있다.”

10일 오후 무주덕유산리조트 호텔 회의실. 민주통합당 노동대책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무주덕유산리조트 주요 임원들이 마주 앉은 자리에서 박현순 리조트 총괄이사가 한 말이다. ‘없어야 좋은 것’이 ‘노동조합’을 가리킨다는 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리조트 노사가 파업과 직장폐쇄로 맞선 지 두 달이 넘었다.

없으면 좋은 것, 노동조합

무주덕유산리조트는 충남 이남권 유일의 종합레저업체다. 전북 무주군 소재 최대 사업장으로 지역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80년 설립된 뒤 94년 종합휴양업 사업계획을 승인받아 호텔·콘도미니엄·유스호스텔·스키장·골프장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당초 리조트 개발은 낙후지역 개발 차원에서 정부 주도로 이뤄졌다. 리조트가 덕유산국립공원 안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도 정부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80년대 말 대대적인 스키장 공사가 시작될 무렵 쌍방울개발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무리한 차입경영과 자금난으로 부도처리됐다. 당시 200여명의 직원이 구조조정됐다.

쌍방울개발의 뒤를 이어 2002년 대한전선이 리조트의 새 주인이 됐다. 그러나 경영사정은 개선되지 않았다. 대한전선이 리조트를 운영한 9년 동안 35명의 직원이 구조조정됐다. 적자가 쌓여 가던 리조트는 2011년 4월 지금의 대주주인 부영주택에 인수된다. 부영주택은 재계서열 19위(민간기업 기준) 부영그룹의 계열사다. 건설업으로 몸집을 불린 부영그룹이 거느린 18개 계열사 중 노조가 설립된 곳은 무주덕유산리조트가 유일하다. 회사 스스로 ‘무노조 경영방침’을 인정하고 있는 부영그룹의 눈에 리조트 노조는 가시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노사관계 초짜기업도 따라하는 '노조파괴 시나리오'

부영주택은 리조트를 인수한 뒤 가장 먼저 팀장급 관리자 13명을 권고사직으로 내보냈다. 지난해 7월 시작된 임금·단체협상은 해를 넘겨 이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노조가 요구안의 상당부분을 포기했는데도 정기 호봉승급과 성과상여금을 둘러싼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노조를 경험해 보지 않은 부영주택은 리조트를 인수한 지 2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노조탈퇴 종용 등 부당노동행위→노사분규 발생→직장폐쇄 단행→관리자급 복수노조 추진’으로 요약되는 이른바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충실히 이행했다. 노조가 회사의 시그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다.

회사측이 노조를 상대로 강공을 펴는 이유는 무엇일까. 회사는 노조가 20년 넘게 누적적자를 기록한 리조트의 경영을 정상화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인식하고 있다. 박현순 리조트 총괄이사는 이날 민주통합당 노동대책위 의원단과의 간담회에서 “무주덕유산리조트는 동종업체 대비 인력은 많고, 인건비는 비싸고, 생산성은 떨어진다”며 경영정상화 방안으로 회사 몸집 줄이기를 계획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앞서 노조의 힘을 빼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박 이사는 “길을 만든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지금 그 길을 걷는 사람이 주인”이라는 말로 회사측의 입장을 대변했다. 기존 쌍방울개발이나 대한전선 시절부터 누적된 경영악화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노조가 회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날 리조트를 찾은 민주통합당 노동대책위 의원단은 “회사가 노조를 대등한 협상파트너로 인정하고, 진실한 자세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원단은 “회사는 리조트에 직원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정리해야 할 대상이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민주통합당이나 새로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확대에 나설 계획”이라며 “회사 마음먹기에 따라 노사갈등 사업장이 될 수도,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한 모범 사업장이 될 수도 있다”고 제언했다.

의원단의 제언이 설득력을 가진 걸까. 의원단이 버스로 상경하다 휴게소에 들른 이날 저녁 7시께 무주리조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노사합의를 도출했다는 소식이었다. 노사는 기존 단체협약을 유지하고, 쟁점이었던 정기호봉승급분은 노사가 각각 양보해 기존 2호봉에서 1.25호봉(125%)으로 정리하기로 했다. 또 흑자 여부와 상관없이 성과상여금을 지급하고, 체불된 각종 수당을 1월 말까지 지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무노조 기업'을 표방한 부영그룹이 노조를 대화상대로 인정한 것이다. 이달 7일 시작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과 정치권의 압박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노사갈등 백화점 '유성기업·보쉬·콘티넨탈'

민주통합당 의원단은 이날 대표적인 노사갈등 사업장인 충남 아산 유성기업도 방문했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사무실에는 충남지역 주요 자동차 부품사인 유성기업과 보쉬전장·콘티넨탈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 노조 관계자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금속노조 소속인 이들 노조들은 공교롭게도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무력화됐다. 유성기업과 보쉬전장에서는 ‘노조파괴 전문가’로 일컬어지는 창조컨설팅과 회사측의 사전공모 정황을 보여 주는 증거들이 다수 발견돼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회사측 인사로 구성된 복수노조 등장과 이에 따른 노-노 갈등, 회사측의 부당노동행위 논란, 기존 노조간부에 대한 대량해고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유성기업의 경우 회사는 80여명의 조합원과 노조간부들 앞으로 40억원이 넘는 손배해상을 청구했다. .

해고노동자들은 영하 10도 안팎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공장 들머리에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다. 지난해 9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주최로 ‘산업현장 용역폭력 청문회’가 열렸지만 노사 간 대립은 계속되고 있다. 회사측은 한발 더 나아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날 민주통합당 의원단과 마주한 유시영 유성기업 대표이사는 해고노동자들을 "해고되고 저러고 있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창조컨설팅 문건 때문에 우리 회사가 노조를 파괴한 회사로 잘못 비춰지고 있는 것이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안타깝다”고 입을 열었다.

컨설팅을 받아야 하는 상황을 노조가 만들었는데, 모든 책임이 회사로 쏠리는 것이 억울하다는 말이다. 그는 사설경비용역을 동원해 폭력을 행사하고 노동자의 공장출입을 제한한 것에 대해서도 “사람을 어떻게 (다치게) 하려고 한 게 아니라, 회사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강변했다. 수많은 언론과 정치권이 유성기업의 노사갈등에 주목해 왔지만, 갈등은 한 치도 개선되지 않은 채 오히려 곪아 가는 중이다.

유성기업 노사는 다음주께 대화를 재개한다. 그런데 대화의 형식을 놓고 또다시 갈등 중이다. 회사는 간담회를, 노조는 단체교섭을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대화 자체가 열리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 대표는 민주통합당 의원단에게 “친구들끼리 다투고 나면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먼저 사과하고 대화를 해야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며 “간담회든 교섭이든 일단 만나서 대화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이 잘 지켜질지 함께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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