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무원노조

지난해 12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마자 '물 민영화'가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박 당선자가 후보 시절 “현 정부의 물산업 정책을 지지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의 '물산업 육성전략'은 노무현 정부 시절 시작된 '물산업 육성 5개년 계획'을 확대한 것이다. 상수도 운영을 민간에 위탁해 세계적인 물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에 따라 육성전략의 첫 단계인 지방상수도 통합사업 컨소시엄 민간참여와 상수도 민간위탁이 확산되고 있다. 시민단체와 야당은 이를 점진적인 상하수도 민영화로 보고 있다. 반면에 박 당선자는 "지방상수도 경영효율화 방안의 일환이 민간위탁"이라며 "시설소유권과 요금결정권이 지자체에 있어 민영화와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이수현(48·사진) 전국공무원노조 사회공공성강화위원회 위원장은 "소유권이 지자체에 있어도 민간기업이 운영권을 확보하게 되면 품질을 담보로 가격협상력을 갖게 된다"며 "박 당선자가 민영화를 부인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거나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민영화 개념을 모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9일 오전 서울 영등포 노조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국민 대통합을 말하는 박근혜 당선자는 물 민영화의 전초전인 상수도 민간위탁을 멈춰야 한다"며 "국민 누구나 깨끗한 물을 차별 없이 공급받는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에서는 제대로 보도되지 않지만 현재 전국 곳곳에서 상수도 민간위탁을 놓고 물 전쟁이 한창이다. 노조에 따르면 2003년 논산을 시작으로 이달 현재까지 한국수자원공사에 상수도를 민간위탁한 지자체가 21곳이나 된다. 노조가 조사한 결과 상수도를 위탁한 지역은 모두 물값과 위탁비가 상승했다. 논산의 경우 2004년부터 2010년 사이 수도요금이 709원에서 883원으로 12.5% 올랐다. 수공에 지불하는 위탁비도 같은 기간 33억3천만원에서 93억9천만원으로 281% 증가했다.

수공은 물가인상이 5%이상 누적될 때마다 민간위탁 운영비를 계속 올려 달라고 요구해 논산시와 갈등을 빚고 있다. 수공의 요구를 따르게 되면 논산시는 매년 60억원을 추가로 수공에 지불해야 한다. 경기도 양주시는 추가요금 부담으로 민간위탁을 철회하기 위해 수공과 법적공방을 벌이고 있다. 충남 예산에서는 지난달 상수도 민간위탁 주민설명회를 개최하려다 지역주민의 반대로 무산됐고, 홍성에서는 민간위탁 심의를 하는 군의회 의원들에게조차 용역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아 심의가 보류됐다. 소유권까지 넘겨주는 완전 민영화를 하지 않았을 뿐 민간위탁이 시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민영화와 다를 게 없는 셈이다.

이 위원장은 "정부가 지방 상수도를 지자체 고유업무로 책임을 떠넘긴 채 낙후된 농어촌 상수도를 개혁하는 공공적 방안 대신 시장에 맡기는 손쉬운 길을 선택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이어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로서는 겉으로 치적이 드러나지 않는 골치 아픈 상수도 사업을 수공에 떠넘기고 싶은 유혹을 떨쳐 버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 상수도 산업의 특징은 ‘빈익빈 부익부’로 요약된다. 대도시 지역은 수도보급률이 100%에 이르지만, 면 단위 농어촌 지역은 37%대에 불과하다. 대도시 지역은 수도사업에 많은 예산을 투자하지만 중소 도시는 쉽지가 않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일수록 유수율이 낮다. 유슈율은 상수도 사업자가 만들어 내보낸 수돗물 가운데 요금이 걷힌 물의 양을 뜻한다. 이에 따라 수돗물의 수질관리에서 지역 간 차별이 발생하고, 수도요금 격차도 심화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상수도 민간위탁은 소외지역의 수도 보급률 확대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적 갈등과 격차를 유발하고 있다"며 "정부가 수도사업을 민간에 넘기는 것으로 정책 실패를 모면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물 민영화는 괴담이 아니라 재정이 열악한 소외된 지역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진행 중에 있는 사업"이라며 "정부와 지자체에 상수도 보급률 확대와 유수율을 높이는 사업에 투자하도록 요구해 물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위원장은 특히 “행정안전부·환경부·국토해양부 등 여러 부처로 흩어져 있는 물 관리업무를 일원화해야 한다”며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돈벌이를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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