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처절하게 탄압받은 노조 중 하나가 전국교직원노조다. 합법화 이후 최대 징계라는 시련을 겪은 만큼 정권교체에 대한 바람 또한 누구보다 컸다. 하지만 기대는 무너졌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보다 10여일 먼저 당선된 김정훈(49·사진) 전교조 위원장은 지난 8일 <매일노동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황스럽고 실망도 컸던 게 사실이지만, 전교조가 언제는 쉬운 길만 갔던 적이 있었냐"며 웃어 보였다.

김 위원장은 새 정부를 상대로 무조건적인 투쟁을 할 생각은 아닌 듯했다. 대화를 할 용의가 있었다. 그런데 전제조건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완전히 망가뜨려 버린 공교육을 살리겠다는 의지와 각종 징계로 해직된 교사들을 일괄 복직시키는 진정성을 보이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 당선자측이 전교조에 대화를 요청한다면 반갑게 맞이할 것이고, 전교조도 박근혜 당선자에 공개적으로 대화를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박근혜 당선자측이 상식 밖의 행동을 한다면 전교조는 상식적인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 대선 결과에 많이 실망했을 것 같다.

“흔히 예상하듯 '힘들 것이다'라는 지점에 대한 대비는 해야겠지만 굳이 박근혜 정권이라고 해서 문재인 정권보다 특별히 아주 많이 힘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문재인이나 박근혜나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 어떤 부분에서 그런가.

“되돌아보면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도입됐다. 그에 따른 갈등도 계속 진행돼 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명박 정권이 이를 너무 저돌적으로 밀어붙여 학교현장을 심각하게 왜곡시켰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과 기조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다고 한순간에 급반전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박근혜 정권도 신자유주의 경쟁교육을 이명박 정권처럼 세게 밀어붙이기에는 부담이 있을 것이다.”

- 정권교체가 됐다면 전교조의 개입영역이 넓어졌을 텐데.

“(대선 결과에) 실망하고 당황한 건 사실이다. 자유주의적 성격을 가진 정부가 들어섰다면 적어도 이명박 정권에서 해임된 교사들에 대한 일괄적인 사면복직·명예회복을 요구할 수 있었을 텐데, 박근혜 정권에서는 그 가능성이 난망해 보이는 게 현실이다. 100% 국민통합을 주장하는 박근혜 당선자가 그 말의 진정성을 확인하려면 소외된 반쪽의 대표성을 지닌 노동진영, 그중에서도 전교조를 포함한 공공부문 해고자들에 대한 일괄복직을 우선 추진해야 된다.”

- 대선이 끝나자마자 보수일각에서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주장하고 있다.

“일부 극단적 극우세력들의 편집증적 집착에서 나오는 주장이다. 그것이 박근혜 당선자와 인수위의 인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법외노조 주장은 이명박 정권에서도 나왔던 얘기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전교조 탄압의 출발이 됐던 시국선언, 일제고사 투쟁, 정당 후원과 관련해 연달아 해직교사들이 생겼다. 그와 동시에 나왔던 게 규약 시정명령이었다. 해직 조합원을 조합원으로 인정하지 말라는 건데, 노동조합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얘기 아닌가. 이것을 빌미로 전교조를 법외노조화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박근혜 당선자측이 준비된 정권이라면, 무모한 행보를 하진 않을 것이다. 해직된 교사를 복직시키고, 이명박 정권에 의해 왜곡되고 뒤틀린 교육과정을 바꿔 내야 하는 게 급선무다. 이런 일들을 하기도 바쁜데 전교조를 적으로 돌려 놓고 상식 밖의 행동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상식 밖의 행동을 한다면 전교조는 상식적인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 박근혜 당선자의 교육정책 공약은 어떻게 평가하나.

“20년 가까운 신자유주의 교육시장화 정책하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서는 ‘학벌계급사회 타파’라는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박 당선자의 교육공약에는 우리나라 교육을 올바른 모습으로 바꿔 놓기 위한 근본적인 대안이나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당선자의 교육공약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긍정적인 요소도 있다. 일제고사 폐지 같은 경우도 기존 새누리당 정책에서 한발 앞서 나간 것이고,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하겠다는 것도 긍정적이다. 그동안 의무교육을 주장하면 ‘빨갱이’라고 했었는데 박근혜 당선자가 하겠다는 것 아닌가. 정말 실현하기를 기대한다. 보편적 복지도 아니고 완전한 방식도 아니지만 대학 반값등록금을 하겠다는 것도 대학교육까지 무상교육을 추진할 수 있는 돌멩이를 하나 놨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이를 시행·추진할 때는 일선 학교에서 일하는 교사들과 교원·학생·학부모단체와 협의하는 게 중요하다. 현재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방식대로 밀어붙였다가는 심각하게 뒤틀릴 수밖에 없다. 공약했으니까 무조건 시행하겠다는 잘못된 관행에서부터 탈출했으면 한다.

‘대학입시 단순화’ 공약에 대해서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일단 입시과정이 단순화만 되도 수험생들의 속이 트일 것 같다. 하지만 세세한 준비와 중장기적인 변화 비전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결국 보수층의 강한 도전에 좌초되고 말 것이다. 입시제도가 복잡할수록 자본과 권력이 원하는 신분질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보수진영은 입시제도 단순화를 찬성하지 않을 거다. 완전하진 않지만 일부나마 긍정적인 교육정책에 대한 추진을 신중하고 확실하게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환영받을 만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 인수위를 대상으로는 어떤 활동을 준비하고 있나.

“박근혜 당선자가 지난 대선후보 3차 TV토론에서 전교조를 보고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하더라. 그 말인 즉, 박 당선자도 전교조의 초심에 대해 인정한다는 뜻 아니겠나. 박 당선자에게 이렇게 전하고 싶다. 전교조는 초심을 단단히 부여잡고 있으니 박 당선자는 전교조와 만나야 한다. 박 당선자측에서 대화를 요구하면 반갑게 맞이할 것이다.

박 당선자가 이명박 정권이 망친 교육을 제대로 바꿔 내고 공교육 기반을 튼튼히 세우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전교조는 박 당선자에게 공개적으로 대화를 요청할 생각이다. 물론 인수위의 청사진이 나온 다음에 그걸 보고 판단해야겠지만 말이다. 박 당선자가 교육계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행보를 보였으면 한다.”

- 임기 첫 번째 과제는 무엇인가.

“전교조의 첫째 요구이자 과제가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는 것이다. 한 학급당 규모가 적정수준을 넘어서면 학교폭력과 교권침해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학급당 학생수는 20명 내외가 가장 바람직하다. 이에 대해 국민여론화를 시킬 것이다. 학급당 학생수 감축과 교원 법정정원 확보에 대해서는 새 정부로부터 단계적인 계획이라도 듣고 싶다.

교사·학생·학부모 자치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흔히 ‘교육 3주체’라고 하지만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은 선생님일 수밖에 없다. 교원업무 정상화와 수업외 업무를 철저히 분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를 정착시키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언론에서 자꾸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을 침해한다고 하는데 잘못된 말이다. 교실에서는 수업이 진행돼야 한다. 수업을 방해하는 모든 상황에 대해서는 학생인권과는 별개로 제재가 필요하지만 교권침해는 그것에 의해서만 생기는 게 아니다. 학교를 수단으로 여기고 교사를 도구로 여기는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들이 교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더 많다. 교장과 교감의 권위주의에 인한 교권침해도 이어지고 있다. 교과부의 제도적인 교권침해는 일상화돼 있다. 이 세 가지로부터 교권을 지킬 것이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교조에게는 단체행동권이 유보돼 있고, 힘없는 단체교섭권을 가지고 있다.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시·도지부의 단체협약이 대부분 무효화됐다. 교과부는 전교조의 단협요구에 해태로 일관했다. 정상적인 대화채널을 정권 스스로 차단하고 막은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지난 5년간 불법을 저질렀다. 박근혜 정권은 합법적인 길로 들어섰으면 좋겠다. 단협을 보장하고 교섭테이블로 나왔으면 한다. 교과부도 불법에서 벗어나 합법의 양지바른 곳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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