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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장 선생님의 ‘밥투정’신지심 공인노무사(법무법인 함께)
신지심
공인노무사
(법무법인 함께)

학교급식 조리종사자의 업무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이들에게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정성껏 맛있게 만드는 것 이외에도 책임져야 하는 것이 있을까.

학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교장·교감의 식사를 식판이 아닌 밥그릇·국그릇에 따로 담아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학교급식 조리종사자의 ‘업무’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쯤이야 힘든 일도 아니고 할 수 있지 뭐, 이렇게 넘겨야 쿨하고 평화로운 것일까.

한 학교에 새로운 교장이 부임했다. 교장은 처음 며칠은 식사를 잘하더니 삼일째 되는 날, 한 숟갈만 뜨고 남은 밥을 그대로 잔반통으로 들고 가서 쏟아 버렸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조리실에서는 밥이 입맛에 맞지 않아 그런가 걱정했고, 교감의 지시에 따라 죽을 따로 끓여서 교장실로 들고 갔다. 교장은 쳐다보지도 않고 “됐습니다”라고 버럭 소리만 질렀다고 한다.

그날부터 조리실에는 비상이 걸렸고, 교장을 위해 밥을 압력밥솥에 따로 하기 시작했다. 수백 명 아이들을 위한 식사를 만드는 조리실은 총칼 없는 전쟁터다. 아무리 숙련된 조리원일지라도, 엄청난 양의 식자재와 거대한 국솥 사이를 쉬지 않고 뛰어다니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급식에 차질이 생긴다. 그런 중에 한 사람만을 위한 밥을 따로 짓는다는 것은 굉장히 신경 쓰이는 노동이다.

그러나 교장은 그 뒤로도 식사를 전혀 하지 않았다. 교장은 왜 단식투쟁을 했던 걸까. 교장은 자신과 교사들의 식사를 학생식당이 아닌 다른 공간에 따로 준비해 줄 것을 지시했는데, 조리장은 이를 반대했다. 교장의 ‘밥투정’은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조리장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었다. 결국 조리장이 병가에 들어간 틈을 타서 ‘교사들 식사는 따로 준비’하는 것으로 교장의 의지는 관철됐다.

근로기준법(제17조)에는 '취업의 장소와 종사하여야 할 업무에 관한 사항'을 근로계약서에 명시하도록 돼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근로자는 “근로조건 위반을 이유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즉시 근로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제19조)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 내용은 현실에 대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업무’의 범위도 불분명할뿐더러, 애초에 자신의 업무가 아닌 일을 하도록 지시받았더라도 이를 따르지 않을 수 있는 용감한 사람은 많지 않다. 만약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면 업무평가에서 안 좋은 평정을 받게 될 것이 뻔하고, 심한 경우에는 징계에 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 부당징계로 다툰다고 하더라도, 사용자의 인사권은 폭넓게 보장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징계의 사유는 정당하다고 인정돼 버릴 것이 뻔하다. 징계양정만 정당성을 따져 볼 가능성이 크다. ‘근로조건 위반으로 입은 손해’의 보상액이 제대로 산정될 리도 만무하다. 게다가 근로계약을 먼저 해지할 수 있다는 것은 고용불안의 시대를 사는 노동자에게 그다지 도움되는 내용이 아니다. 이 학교의 급식 조리노동자들은 교장의 임기가 다하기를 기다리며 묵묵히 추가된 ‘업무’를 수행하는 수밖에 없다.

법의 비루함을 탓하고 이러한 현실을 좀 더 강하게 규율해 주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법은 최소한의 보루일 뿐이고 항상 현실에 미치지 못하기 마련이다. 법도 제대로 만들어야겠지만 우리들의 보편적 상식이 바로잡히길 바라는 것은 어떨까. 다른 사람의 노동에 기대어 자신의 식탁에 억지 권위를 세우는 사람보다, 스스로 자신의 식사를 챙기고 아이들 속에서 함께 식사하고 눈 맞추며 이야기하는 교장이 더 진정한 ‘권위’ 있는 어른으로 인정받도록 말이다. 이런 상식이 보편이 된다면, 급식 조리노동자들이 교사들의 밥상을 따로 준비하기를 거부하더라도 함부로 징계받거나 업무평가에서 불리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더불어 학교 비정규직들이 해당 학교에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감이 직접고용하는 것으로 된다면, 이런 불합리한 업무 강요도 어느 정도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겨울, 삶은 예상치 않은 대로 흘러가고 많은 사람이 쓰리고 아프지만, 삶도 싸움도 계속된다.

신지심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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