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6일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대통령직 인수위에 노동문제 전문가가 포함돼 있지 않다고 우려를 표했다. 민주노총은 “5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어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박근혜 당선자와 새누리당의 태도에 아연실색한 노동계는 노동문제 전문가가 배제된 인수위 명단을 보고 또 한 번 경악했다”고 비판했다. 한국노총도 “박 당선자가 내놓은 노동복지 공약의 실천을 기대하기에는 인수위 구성이 너무도 실망스럽다”고 비판한 후 “비정규직·노동시간·청년실업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 노동계 출신 인사로 인수위를 보강하라”고 주문했다. 지난 3일 인수위 앞에서 금속노조는 기자회견을 열고 “박 당선자는 국민을 대통합하고 노동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지켜라”고 촉구했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의 권력은 대통령 당선자 박근혜와 대통령직 인수위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렇게 박근혜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두렵다.

2. 박근혜 시대에 노동자권리가 저하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아니다. 저하시킨다 해도 그건 노동운동이 맞서 싸워야 하고 분명히 싸울 것이다. 그러니 그 승패를 떠나 그것으로는 두렵지 않다.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따로 있다. 이 나라 노동운동과 노동정치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노동이 아닌 그들이, 대통령 박근혜와 새누리당 그들이 노동자를 위해 뭔가를 하는 거다. 지난달 말 박근혜 당선자는 대기업총수들을 만나서 말했다. “지금과 같은 대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는 많은 국민의 뒷받침과 희생이 있었고 국가지원도 많았기 때문에 국민기업의 성격도 크다고 생각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대기업들의 경영목표가 단지 회사의 이윤 극대화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우리 공동체 전체와의 상생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경영의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서 구조조정이라든가 정리해고부터 시작할게 아니라 어렵더라도 어떻게든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지혜와 고통 분담에 나서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한참 일할 나이에 퇴출시키는 고용형태는 앞으로 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정년까지 일할 수 있도록 기업에서 좀 노력해 주시길 바란다”는 말까지 했다. 노동운동이 노동자권리를 세워 나가는 중심이 되기를 바라는 나는 두렵다. 노동정치가 정치의 주인으로 서기를 바라는 나는, 노동정치가 이 나라에서 이뤄지기를 바라는 나는 진정으로 두렵다. 이 나라에서 보수라는 박근혜가 이 정도로 말했다. 조금 더 강조해서 그가 말했다면, “부탁드린다”, “생각한다”, “좀 노력해 주시길 바란다”를 강력한 의지를 담아서 언어구사를 했다면 이 나라 노동자는 감격했을지도 모른다고 두려웠다. 보수니 민주니 혹은 노동 없는 진보니 하는 그들이 노동을 위해 한다면 노동정치는 없다. 특히 천대받고 버림받아 온 이 나라 노동자에겐 사소한 개선이라도, 조금의 관심과 대우라도 감지덕지라고 감격할 것이다. 그들의 정치에 노동자가 감격해서는 노동정치는 설 자리가 없다. 그러면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열광으로 세워야 할 노동정치는 어렵다. 그러니 노동을 위한 정치가 아닌, 노동이 하는 정치인 노동정치가 이 나라에서 노동을 위하는 그들의 정치때문에 서지 못할까 나는 두렵다. 지금 이 나라는 이미 그 길의 입구로 향하고 있다. 노동정치가 세워 내야 할 복지도 경제민주화도 박근혜의 구호가 됐고 18대 대선에서는 그들이 말했다. 그럼 노동의 개입 없는 복지와 경제민주화의 길로 가 버린다. 이번 대선에서 구조조정도 정리해고도 비정규직도 그들은 자신의 과제로 공약으로 발표했다. 지금 노동정치가 파산인데 노동자의 문제를 그들이 해결하겠다고 나선다는 게 두렵다. 모두가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구조조정이니 정리해고니 비정규직이니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그들의 처지에서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한다면. 아니 그렇게 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라도 한다면 지금 이 나라 노동자와 노동운동의 상태에서는 노동운동은 노동자권리를 세워 나가는 중심이 되지 못하고 더 이상 노동정치는 없을 것 같아 나는 두렵다. 노동자권리를 위한 노동운동과 노동이 하는 노동정치의 말살자·파시즘은 “노동자를 위하여, 인민을 위하여”라는 구호와 함께 올 수 있고 노동자를 위한다는 정책과 함께 올 수 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선 노동운동은 지리멸렬이고 노동정치가 없으니 말살하겠다고 손에 피를 묻힐 필요도 없다. 그러니 그들은 파시즘이란 비난을 얼마든지 피해갈 수도 있다. 더 두렵다.

3. 그렇다면 두려움을 넘기 위해서 노동운동은 박근혜 시대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노동운동과 노동정치를 분명히 해야 한다. 노동자권리를 확보해 내기 위해서 노동자가 하는 운동이 노동운동이고, 노동자세상을 위해서 노동이 하는 정치가 노동정치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노동 아닌 운동과 노동 아닌 정치와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노동자권리를 위한 운동에서도 노동정치에서도 노동(자)이 하는 운동이고 정치라는 것을 분명히 하지 못했다. 사업장 임단협까지도 잘 해결되지 않으면 노동문제를 노동(자)을 위한다는 그들에게 달려가서 요구하고 매달렸다. 진보의 당, 민주의 당, 심지어 보수의 당을 가리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의 과제가 됐고 선거에서 그들의 공약이 됐다. 그들의 표가 됐고 권력이 됐다. 그들이 그것을 해결해 주려는 만큼 그들의 권력은 강화됐다. 이러한 노동문제의 해결구조에서 노동운동은 기껏해야 노동문제를 제기하는 운동으로 전락하고 만다. 노동문제를 자신의 과제로 해서 세워 나가야 할 노동정치는 성장하지 못한다. 돌아보자. 이 나라에서 기본적 노동자권리조차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매우 심각한 노동문제가 어떻게 문제 제기돼서 해결돼 왔던가. 그건 심지어 보수의 당이라도 자신의 과제로 해서 해결하고자 나섰다. 심각한 노동문제는 노동운동이 연대해 온 민주의 당이 자신의 과제로 해서 해결하겠다고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심각하지 않은 노동문제는 진보의 당만이 자신의 과제로 내세웠다. 노동운동이 노동자권리를 위한 노동자의 운동으로 확대‧강화되기 위해서는 노동문제를 제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해결까지도 자신의 과제로 해서 전개되는 운동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실제 그 과제를 해결할 수 있고 해결해 내야 한다는 운동이어야 한다고 내가 말하는 게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그 과제의 설정수준의 문제일 뿐이다. 낮은 수준의 과제라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이고 높은 수준의 과제라면 해결하기 어려운 것일 뿐이다. 난이도가 어려운 과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노동운동이 확대‧강화된다는 것이 아니다. 오직 노동자권리를 위해서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서 해결해 나가겠다고 하는 노동자의 운동이란 걸 스스로 분명히 하고서야 노동운동은 확대‧강화될 수 있다. 노동정치도 마찬가지다. 이제 박근혜 시대. 정권은 낮은 수준이라도 노동자를 위해서 노동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인민을 위해서 복지정책을 펼치겠다고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할 것이다. 민주진보후보라는 문재인이 당선됐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이 나라 노동운동은 어떻게 할 것인가. 비정규직 등 심각한 노동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자회견하고, 최저임금 등 열악한 노동문제를 개선해 달라고 시위할 것인가. 노동운동은 지금 이미 인수위를 상대로 그렇게 하고 있다. 노동자권리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곳이 노동운동의 무덤은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권리를 보장해 준다는 그곳이 노동운동의 무덤일 수도 있다. 자본과 권력이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 준다고 하니 그 자본과 권력에 맞서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운동을 전개하지 않는 그곳은 분명히 노동운동의 무덤이다. 실제로 그들이 노동자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본과 권력이 노동자권리를 보장해 준다고 노동자가 인식하고 있으니 그게 문제가 된다. 이 나라 노동자상태는 매우 열악하다.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 등 고용문제, 최저임금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수와 장시간 노동이 불가피한 임금수준 등 임금문제, 법정근로시간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버린 일반화된 장시간 노동 등 노동자권리 상태는 매우 열악하다. 그러니 노동운동이 아닌 그들이라도, 노동정치가 아닌 그들의 정치라도 이 나라 노동자권리 상태는 지금보다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다. 복지문제도 마찬가지다. 2009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30개국 사회복지지출을 보면 우리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이 9.4%로 30개 회원국 중 멕시코(8.2%)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이는 1위 프랑스(32.1%)를 포함해 덴마크(30.2%)·독일(27.8%)·이탈리아(27.8%)·영국(24.1%)·일본(22.4%)·미국(19.2%) 등과 큰 격차를 보였고, OECD 평균 22.1%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었다. 오늘 이 세상에서 복지는 더 이상 노동정치의 전유물도 아니다. 일본·미국 등 노동정치가 실종된 나라들에서도 적어도 이 나라보다는 월등한 수준으로 보장하고 있다. 지금 이 나라에서 복지지출을 높이는 복지정책을 보수의 새누리당이라도 추진할 수 있는 조건이다. 박근혜가 공약한 복지정책을 실행해 나간다면 매우 열악한 이 나라 복지상태를 볼 때 박근혜에게 인민은 박수를 칠 것이다. 그걸 지켜보면서 과거 인간의 역사에서 복지제도가 노동운동의 정치가 이뤄낸 성과였다고 말해 봐야 소용이 없다. 그러니 뭔가 지금은 노동운동이 대통령직 인수위에 노동전문가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보강하라고 주문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수위 앞에서 금속노조가 “박 당선자는 국민을 대통합하고 노동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지켜라”고 기자회견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운동은 노동문제를 스스로 제가 해결하겠다고 결의부터 할 때라는 것이다. 노동운동은 진정 두려운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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