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법원 집달관과 용역들의 행정대집행을 막아 줬다. 오늘 하루만큼은 진짜 ‘민중의 지팡이’ 같았다.”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노동자 편에 선 경찰을 본 적이 있나요? 지난 9월 중순 콜트악기 부평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을 현장에서 몰아내고 노조사무실을 철거하기 위한 법원의 행정대집행이 시도됐는데요.

집달관들이 공장에 진입하려 하자 놀랍게도 주변의 경찰들이 이를 막아섰습니다. 법원이 발급한 서류에 강제퇴거 집행내용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지 않아서였다고 하네요. 집달관들이 굴삭기와 용역까지 대동하자 경찰들이 “농성자들이 다칠 수 있다”고 제지해 집행 중지에 큰 영향을 줬다고 합니다.

노사갈등의 현장에서 늘 사측에 편에서 서 있다는 비판을 받아 온 대한민국 경찰인데요. 이날 하루만큼은 어찌 된 영문인지 노동자들의 보호자가 된 셈입니다. 오래 살고 볼 일이죠.

<매일노동뉴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러쿵저러쿵(쿵쿵)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은 올해도 뜨거웠습니다. 현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갖가지 뒷얘기와 포복절도 에피소드, 무릎을 치게 만드는 풍자가 녹아 있기 때문일 겁니다. 올 한 해 쿵쿵에 비친 노동계의 풍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발암물질 검출된 사업장이 어딘가요?

올해 초 화학섬유노조·연맹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자신을 안전보건공단 지역조직 소속이라고 밝힌 이 관계자는 대뜸 수화기 너머로 “발암물질이 검출된 사업장이 어디요”라고 물었다네요.

아마도 본지 2월8일자에 실린 기사(화학섬유연맹 "웅상지역 사업장서 발암물질 다량 검출")를 보고 해당 노조에 전화를 건 모양입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사람은 공교롭게도 발암물질 검출 사업을 총괄했던 책임자였습니다. 그는 정보제공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어떤 피해가 갈지 모르는 데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요청을 거절했답니다.

노동자들에게 안전한 노동환경과 건강정보를 제공해야 할 공단이 어떻게 보면 그 역할을 노조에 떠넘기고 자문을 구한 것인데요. 공단이 스스로의 역할에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되돌아보게 만드는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노조활동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노동현안이 발생했을 때 자신들의 의견을 밝히는 성명서 발표인데요. 성명서 하나 잘못(?) 냈다가 사무실 전화에 불똥이 튄 사연이 눈길을 끕니다.

금융노조는 올해 초 국회 정무위원회가 저축은행 피해구제 특별법을 통과시키자 성명서를 발표하고 “금융질서를 파괴하는 저축은행 피해구제 특별법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는데요. 이를 접한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노조로 항의전화를 돌렸다는 후문입니다. 노조는 예금자보호기금으로 피해를 구제하는 ‘방식’을 문제 삼은 것이지 피해보상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는데요. 항의의 뜻으로 언성을 높이는 이들에게 자신들의 의중을 일일이 설명하기도 힘들어 난감해했다고 하네요.

노조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생활의 발견’이라고나 할까요. 출입기자들이 주요 노조와 밀착해 있는 탓에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노조의 소소한 일상을 엿보는 것도 쿵쿵의 재미입니다. 작은 소품을 활용해 사무실 분위기를 북돋우고 일의 능률을 끌어올렸다는 보건의료노조의 사연을 보죠. 노조는 연초부터 상근자들을 회의로 소집할 때 “땡땡땡” 종소리를 울리고 있습니다.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종이 노조사무실 입구에 달려 있다네요. 그 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한 번 울리면 그 반향이 사무실 구석구석에 미친다고 하네요. 노조 관계자는 “회의 내실화를 위해 종을 사용하고 있다”며 “휴식 후 회의 재개시간이 정확해지는 등 다양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어째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르는데요. 과거의 향수도 불러일으키고 회의시간까지 아낄 수 있다고 하니 다른 노조들도 한 번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요.

전국민주금융노조가 서기호 진보정의당 의원과 친분을 맺게 된 계기도 재미납니다. 서 의원은 판사 재직 당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비판해 유명세를 치른 인물이죠. 노조는 3월 말 서 의원을 초대해 간담회를 개최했습니다. 그런데 섭외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간담회 며칠 전 서 의원이 노조사무실이 있는 서울 여의도 백상빌딩에 사무실을 임대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건물을 오가던 민경윤 노조 위원장과 우연히 만나 급속히 친해졌다네요.

그러던 중 민 위원장이 서 의원에게 간담회를 제안했고, 그가 이를 흔쾌히 수용하면서 간담회가 성사된 겁니다. 서 의원은 간담회에서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한 사연과 정치에 투신한 계기를 속 시원하게 털어놓아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양측은 이후에도 노조 산하 현대증권지부에 대한 현대그룹의 노조파괴 의혹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공조하는 등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노조행사에 초대하자 국정원에 신고?

노사 간에 발생하는 황당한 일도 쿵쿵의 단골메뉴인데요. 이번에도 주인공은 현대증권지부입니다.

지부는 2009년 백두산을 탐방하는 노조행사에 현대증권 경영진을 초대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뭔가 목적을 의심한 사측이 이를 국가정보원에 신고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지부를 당황시켰습니다.

지부는 매년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어울마당’이라는 문화행사를 개최합니다. 2009년 당시에는 백두산 천지로 탐방을 떠나는 일정을 잡았습니다. 지부는 노사화합 차원에서 사측에 초대장을 보냈는데요. 사측이 이를 “노조가 이번에 백두산에 간다고 하는데 수상하니 조사해 보라”며 국정원에 신고한 겁니다. 국정원 직원이 지부에 신고사실을 알려오면서 3년 전 과거가 드러난 것인데요. 지부 관계자는 “노사가 친목을 다지자는 뜻에서 대중행사에 초대했을 뿐인데…”라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노조탄압으로 부르기도 거시기한 사건입니다. 현대증권이 국가안보를 목숨처럼 여겨 투철한 신고정신을 발휘했다고 치죠.

올 여름엔 그야말로 찜통 같은 더위가 이어졌습니다. 안 그래도 짜증나는 계절, 노동자들의 불쾌지수를 급상승시킨 일이 벌어졌습니다. 청소·경비용역업체인 W사는 8월 초 덕성여대 청소·경비노동자가 여름휴가를 요구하자 “경비직은 감시·단속직이라 여름휴가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고 합니다. 동덕·이화여대 등에서 단체협약에 따라 휴가를 보장하고 있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인데요. 공공운수노조 덕성여대분회는 8월 말 여름휴가 보장 등을 요구하며 반짝 파업에 나섰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사용자가 "여름휴가를 보장하겠다"고 밝혔다네요. 그동안 꾹꾹 눌러 왔던 노동자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도, 원청사용자가 나서 파업 이틀 만에 부랴부랴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준 것도 유난히 뜨거웠던 올 여름 찜통더위 탓이 아닌가 싶네요.

비나이다 비나이다, 산업재해 없게 비나이다

고용노동부가 노사정 관계자들과 함께 신에게 빌었습니다. 무슨 속사정이 있었던 걸까요. 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은 올해 봄 인천 청량산에서 ‘인천지역 건설현장 및 사업장의 사망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기원제’를 열었습니다. 인천지역에서 사고성 사망재해가 잇따라 발생하자 노동부가 “신의 힘을 빌려서라도 산업재해를 줄이고 싶다”는 노사정의 뜻을 모아 행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신이 있다면 이러한 정성을 갸륵하게 여겼으면 좋겠네요.

동물복지를 두고 서울시와 노조가 펼친 이념논쟁(?)도 흥미를 끌었습니다. 서울시가 불법포획 논란이 일었던 돌고래 ‘제돌이’를 방사조치한다고 하자 서울시청공무원노조 대공원지부가 이에 대해 반대성명을 내놓았는데요.

지부는 “돌고래 공연은 강압적인 동물학대의 결과가 아닌 조련사와의 애정과 상호신뢰의 결과물”이라며 “서울시가 제돌이의 방사를 위해 8억원의 돈을 들여 야생성 회복훈련을 지원하는 것은 또 다른 생체실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제돌이를 태어난 곳으로 돌려보내려는 서울시의 주장이 타당해 보이는데요. 하지만 온갖 사랑과 정성을 쏟아부었을 조련사들의 걱정스러운 마음도 일면 수긍이 가네요. 제돌이는 내년 8월 자신의 고향인 제주도 앞바다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제돌이가 씩씩한 돌고래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빠지지 말고 삐치지 말고 용서하자, 빠삐용”

집회 현장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노동자들의 투쟁구호인데요. 올해 민주노총이 주최하는 집회에서 예년에는 찾아볼 수 없는 투쟁구호가 관심을 모았습니다.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이 민주노총 전국단위사업장대표자 수련대회에서 제안한 ‘빠삐용’이 그 주인공인데요.

풀어쓰면 “언론·KTX·쌍용차 투쟁에 빠지지 말고, 동지들끼리 운동노선이 다르다고 사소한 것으로 삐치지 말고, 미워 죽겠어도 끊임없이 용서하자”는 뜻이라고 합니다.

리본 때문에 오해를 산 사례도 있습니다. 금융노조 우리은행지부가 6월 말 졸속 민영화 저지투쟁 기간에 가슴에 리본을 착용했는데요. 리본에는 “우리금융지주를 국민의 품으로”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구로 오해를 샀다네요. ‘국민’이라는 단어가 정부의 민영화 추진 초기부터 유력한 인수후보로 거론된 국민은행(KB금융그룹)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건데요.

지부는 “리본의 ‘국민’은 국민주 방식의 민영화를 강조하는 것이지 ‘국민’은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고 억울해했습니다.

연말 대선 정국에서는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재미있는 문장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노동계 인사들의 대선캠프행이 줄을 잇던 때였는데요. “안(철수 캠프)에 있나, 밖(박근혜 캠프)에 있나, 문(재인 캠프)에 있나.” 많은 노동계 인사들이 ‘문’에 기대어 대선결과를 지켜봤는데요. 결국 문 ‘밖’의 인물에게 안방을 내주고 말았네요.

뻔뻔한 컨택터스와 겁먹은 창조컨설팅

대선과 함께 올해 노동계의 관심이 가장 집중된 곳은 컨택터스와 창조컨설팅이었는데요. 사설용역경비업체 컨택터스는 쿵쿵에 소개된 '제4 노총 출범선언문'을 통해 '진화하는 용역깡패'를 자처하며 노동계에 으름장(?)을 놨습니다.

컨택터스는 “노동자들을 낡은 이데올로기와 계급투쟁의 소모품으로 삼는 종북세력이 직장에서 발 못 붙이게 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사회의 비난을 정면돌파하려는 조폭과도 같은 기개(?)가 느껴지는데요. 간담이 서늘해질 지경입니다.

창조컨설팅은 컨택터스와 달리 잔뜩 겁먹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창조컨설팅은 언론보도를 통해 자신들의 행적이 드러난 직후 사무실 문을 꼭꼭 틀어 잠갔습니다. 또 업무를 중단하고 홈페이지를 폐쇄했는데요. 심종두 창조컨설팅 대표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청문회와 국정감사에서 “허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불참하려는 애처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청소노동자 외면하는 학교에 아이 못 보내

너무 속 터지는 얘기만 했나요. 답답한 세상 이곳에서만큼은 가슴 따뜻해지는 엔딩을 기대하셨을 텐데 말이죠. 아직 끝이 아닙니다.

6월 말 평등교육 실현을 위한 전북학부모회는 “청소노동자를 외면하는 전주대와 비전대에 아이를 진학시키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전주대와 비전대는 그동안 청소노동자들을 직접고용했다고 하는데요. 학교재단이 용역업체 (주)온리원을 설립해 간접고용 형태로 변경했다네요. 학부모들은 “우리 아이들이 파괴와 탄압·착취·비리·유착관계에 얽매인 수렁에서 부당함과 불평등을 외면하는 아이로 성장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전주대와 비전대 진학을 거부했다고 하네요.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이들과 같다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와 노동의 앞날이 그렇게 어둡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두 달 전에도 비슷한 사연이 쿵쿵에 보도됐습니다. 인천공항 국제업무단지에 위치한 20여개 상가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단지 일대 도로에 “인천공항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라”는 현수막을 잔뜩 내걸었다고 합니다. 상가 사장님들은 “비정규직들이 제대로 고용돼 돈을 벌고 써야 우리도 잘살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네요.

복지와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수많은 담론이 이 한마디로 속 시원하게 정리된 듯하다면 오버일까요. 이 정도면 그래도 훈훈한 마무리가 되려나요. 내년에는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들이 쿵쿵을 가득 메웠으면 좋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2012년 임진년 한 해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2013년 계사년에는 바라는 모든 일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매일노동뉴스>가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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