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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장기투쟁 농성장 풍경] 이명박 이어 박근혜 …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대선이 끝난 지난 19일 이후 1주일 남짓한 기간에 5명의 노동자와 활동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노동계의 반응은 점차 하나로 모아지고 있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 민주노총 집계에 따르면 12월 말 현재 장기투쟁 사업장은 40여곳이 넘는다. 이들은 이명박 정권과 싸웠고, 이제 박근혜 정권과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노동계뿐만 시민·사회단체들은 제주해군기지, 용산참사 등 현안을 들고 새로운 투쟁을 가다듬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농성현장을 찾았다.
▲ 서울 대한문 앞에는 11월3일부터 쌍용마을·용산마을·강정마을·탈핵마을로 구성된 ‘함께살자 농성촌’이 형성됐다. 쫓겨나고 내몰린 사람들이 서로에게 기대어 함께 싸우고 있다. 윤자은 기자

"아무리 힘들더라도 죽지 마세요"

"힘들더라도 죽지 말라고 당부하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어요. 저희에게는 희망적인 메시지죠.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 주고 있지 않나 싶어요."(김정욱 쌍용차지부 대외협력부장)

서울 대한문 앞 나란히 세워진 천막 세 동은 덕수궁 돌담길에 기대어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덕수궁을 지나는 시민들에겐 익숙한 풍경이다. 올해 4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먼저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쫓겨나고 내몰린 사람들이 하늘'이라고 외치며 전국을 돌아 대한문으로 온 생명평화 대행진 참가자들은 지난달 3일 쌍용차 농성장 옆자리에 용산마을·강정마을·탈핵마을을 세워 입주했다. 농성촌 입구에 있는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라고 쓰인 의자는 얼마 전 한 시민이 가져다 놓았다.

지난 26일 농성장을 지키고 있던 박정만(47)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직부장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다고 해서 우리의 싸움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며 "정리해고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싸울 것"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승호(47) 금속노조 SJM지회 법규부장은 매주 농성장을 찾는다. 금요일 저녁 경기도 안산에 있는 집에서 출발해 주말 내내 농성장을 지키다 일요일 밤 다시 안산으로 내려간다. 이 부장은 "같은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이지만 그동안 쌍용차 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다"며 "올해 7월 SJM지회가 침탈당하고 보니 우리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더 힘들게 투쟁한 쌍용차 동지들과 연대하지 못한 죄책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7월27일 SJM 안산공장에서 용역경비원들에게 폭행을 당한 충격으로 한 조합원이 두 달째 정신과 입원치료를 받고 있어요. 그분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진 않을까 불안합니다."

이 부장은 인터뷰 도중에 눈물을 터트렸다. 그는 "가장 두려운 것은 희망을 놓는 것"이라며 "연대로 희망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정욱(41) 쌍용차지부 대협부장은 "멘붕에서 벗어나 그동안 해 왔던 실천적인 투쟁을 다시 벌일 때"라며 "세상을 바꾸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8일 현재 쌍용차 평택공장 송전철탑에서 39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문기주(52) 쌍용차지부 정비지회장은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2009년 이뤄진 불법적인 회계조작과 정리해고, 국가 폭력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 책임자를 처벌하고 해고된 노동자들은 현장으로 복직시켜야 한다"며 "새누리당은 대선에서 약속한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를 위해 두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선 이후 노동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엄청난 시련과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에요. 정권이 교체되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했던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진 거죠. 그렇다고 절망하기엔 이릅니다. 87년 이후 우리는 노동악법을 철폐하고 승리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주위에 고통과 절망 속에 있는 동지들이 있나 살피고 어깨 겯고 한 걸음씩 걸어갈 겁니다." 문 지회장의 다짐이다.

용산참사 진상규명·해군기지 반대 … "싸움은 계속된다"

"유가족들의 시간은 2009년 1월20일 이후 멈췄습니다. 고통으로 가득한 4주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야죠."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6일부터 광화문 광장에서 유가족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용산참사 유가족인 유영숙(52)씨는 27일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그날 일어난 일은 참사가 아니라 학살"이라며 "진상을 밝혀낸다고 해서 돌아가신 분들이 다시 살아 돌아오진 않겠지만 이명박 정권에서 저질러지고 은폐·조작된 사건을 다음 정권에서는 밝혀낼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권은 용산참사 이후 철거민 8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올해 10월 두 명이 3개월 가석방을 받아 출소했지만 아직 6명이 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진상규명위는 "복역 중인 철거민들을 즉각 석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 사무국장은 "쌍용차 옥쇄파업 강제진압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강행과 컨택터스 사태는 용산에서 시작됐다"며 "용산참사에서 발생한 국가폭력·용역폭력·건설재벌의 탐욕을 우리가 암묵적으로 용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5년8개월 동안 제주 해군기지 공사를 강행하는 정부와 해군에 저항해 온 강정마을 주민들은 24일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제주해군기지 예산 전액삭감을 호소하는 릴레이 100배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강동균(55) 강정마을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제주도에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을 건설해 크루즈 관광허브로 키우겠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정말 관광미항을 만들 의지가 있다면 진행되고 있는 해군기지 건설공사를 당장 중단하고 해당 예산을 삭감한 다음 사업을 검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탈핵마을을 지키는 하승수(44)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현재 정부는 원자력발전소 5개를 짓고 있고 6개를 신축할 계획"이라며 "박근혜 당선자는 원자력발전소의 안전관리 철저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이는 곧 탈핵 의지가 없다는 것을 밝힌 것에 다름 아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원자력발전소 신규건설 중단 △노후화된 원자력발전소 철거 △원자력발전소 안전성 전수검사 △송전탑 공사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문에서 10분만 걸어가면 또 다른 농성장이 있다. 180개 장애인·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이 8월21일 설치한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농성장이다. 역 개찰구를 빠져나오면 지하보도에 이들의 농성장이 있다. 10월26일 활동보조가 없는 상황에서 잠을 자다 집에 불이 나 숨진 고 김주영씨의 빈소가 차려져 있다. 28일 현재 130일째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공동행동 회원들이 매일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농성장을 지키며 시민들에게 서명을 받는다.

의학적 기준을 적용해 장애등급을 정하는 장애등급제는 의사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소지가 높아 행정관리를 위한 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다. 부양의무제는 실제로 부양을 받지 못한 장애인이 이를 증명하지 못하면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박근혜 당선자는 후보 시절 장애등급제 폐지와 개선을 약속했다. 박경석(52) 공동행동 대표는 "일단 공약한 내용을 지켰으면 좋겠다"며 "관련예산을 확보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밝혀야 한다"고 주문했다.
▲ 용산참사 4주기를 앞두고 26일부터 유가족들이 서울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27일에는 유영숙(52)씨가 1인 시위를 했다. 윤자은 기자

"대선 결과 보다 두려운 것은 노동운동 반목과 갈등"

"짜장면 먹고 싶다. 간짜장 곱빼기."

"중국집 전화번호 가르쳐 줄 테니 직접 주문해요."

"짜장에 공기밥 좀 보내 달라고."

"에이. 돈도 없는데. 자 1천원씩만 모아 봅시다. 먹고 싶다는데."

"형님. 어제 잘 안 꾸던 꿈을 꿨는데 형이 내려왔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인근 송전탑 위에서 농성 중인 최병승씨와 천의봉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사무국장에게 그의 동료들은 이날 아침 회의내용을 차마 말하지 못했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26일 오전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사측과 사내하청 신규채용을 합의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자 긴급 대책회의를 가졌다. 회의에서는 "투쟁의 당사자인 비정규 노동자들이 철탑 위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데, 우리와 일말의 상의도 없이 합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회는 사내하청을 신규채용 방식으로 일부 정규직화하는 것은 불법파견을 불인정하고 다른 조합원이 배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하기로 했다.

회의를 마친 김상록 지회 정책부장은 안절부절못했다. 며칠째 계속된 한파로 농성장 식수통이 얼어붙어 밥 짓고 설거지하기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동료들을 보고 있자니 미안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사측과의 투쟁도 모자라 금속노조 조합원들과 언쟁을 벌이는 모습을 동생들에게 보여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탑 위에는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했다.

대법원 판결에도 물러서지 않는 현대차 사측과 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들에게 대선 결과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지회는 대선 직후인 22일에는 부분파업을 진행했다. 김상록 부장은 "정규직지부가 대선에 대한 패배의식으로 불법파견 투쟁을 빨리 정리하려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김 부장은 지회의 투쟁이 승리하지 못할 경우 10년간의 비정규직 투쟁이 싹을 내리지도 못한 채 사라질까 두렵다고 했다. 김 부장은 "대선 결과보다 두려운 것이 노동운동 내의 반목과 갈등"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운동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때에 따라 올바르고 정의로워야 사람들을 끌고 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지회는 27일 주간조 조합원 부분파업과 야간조 전 조합원 전면파업을 실시했다. 사측을 향해 사내하청 노동자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하던 여느 투쟁과 달리 이날 투쟁에는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를 향한 서운함이 담겨 있었다.
▲ 10월17일부터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해고자 최병승씨와 천의봉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사무국장이 울산공장 인근 송전탑 위에서 사내하청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26일 정오 두 농성자가 동료들과 대화하며 밝게 웃고 있다. 정기훈 기자

새해, 노동자 반격이 시작된다

동료를 잃은 노동자들은 절망했다. 21일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은 회사와 정부를 향한 원망과 분노를 담은 짧은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7일 오후 부산·울산·경남지역에서 모인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신관 정문 앞에 차려진 '최강서 열사 분향소'를 한쪽으로 조심스럽게 옮겼다. 하루 전 한진중 사측은 이곳에서 "(최씨의 자살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사안"이라며 "노사 문제와 직접 관련이 없어 교섭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공문을 금속노조에 전달했다.

사측의 매몰찬 답변을 받은 장소에서 조합원들은 분노했다. 밧줄과 망치를 이용해 정문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측이 철판을 덧대어 용접까지 해 놓은 상태였다.

이에 앞서 이날 오후 부산역 광장에서는 민주노총 영남권 결의대회가 열렸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 "이제는 싸우자"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상진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대선 이후 박근혜 당선자가 취임하기도 전에 하루에 한 명씩 노동자가 죽어 가고 있다"며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노동자의 죽음은 박 당선자와는 아무 상관없다며 내빼고 있다"고 비난했다.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은 "우리는 분노하고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며 "싸우지 않는 우리가 더 가슴 아프다. 싸우지 않고서는 바꿀 수 없다"고 소리 높였다.

금속노조는 내년 1월까지 불법파견·정리해고·노조파괴 등 3대 노동현안이 해결되지 않으면 총파업에 돌입한다. 희망버스도 다시 부산을 향한다. 민주노총·민중의힘·한국진보연대 등으로 구성된 '정리해고·비정규직·노조파괴 긴급대응 비상시국회의'는 1월5일 한진중공업 앞에서 '다시 희망만들기' 행사를 개최한다. '다시 희망만들기'라 이름 지어진 버스는 이날 서울 대한문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출발해 현대차 울산공장 송전탑 농성장을 찾은 뒤 같은날 저녁 한진중 영도조선소에 도착한다.
▲ 27일 최강서 열사 정신계승 민주노총 영남권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부산역에서 집회를 마친 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으로 행진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전자산업 노동인권, 누구를 뽑는다고 실현되지 않는다"

새해에는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들의 투쟁도 계속된다. 20일 저녁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주최한 '삼성규탄 촛불문화제 미리 크리스마스'가 열렸다. 서울 강남 삼성전자 본관 인근에서 개최된 이날 행사에는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대선 결과를 받아든 이들은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과 인권·건강권 실현은 누구를 뽑는다고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며 "더욱 열심히 싸워 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안에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기대됐던 삼상반도체 백혈병 항소심 재판은 1월31일 열린다. 변론이 마무리되지 않고 재판일정은 계속 연기되고 있다. 최근 근로복지공단이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유방암으로 숨진 노동자에 대해 산업재해를 승인한 만큼 이번 재판에 거는 피해자 가족들의 기대는 크다.

삼성전자에서 일한 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이야기를 담은 '또 하나의 가족' 영화도 내년에 상영된다. 11월 한 달간 진행한 제작비 모금에서 1억원 이상이 걷혔다. 제작진은 조만간 2차 펀딩에 들어간다. 이날 반올림 행사에 참여한 김태윤 감독은 "영화를 만들까 말까 고민하던 중에 한국에서 일어난 사실을 배경으로 하는데 무엇이 나를 두렵게 만드는지 고민한 적이 있었다"며 "많은 이들의 힘이 합쳐진 만큼 소중한 영화로 관객들을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승리를 믿는 사람들과 부끄럽지 않는 투쟁 하겠다"

27일 저녁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입구 앞 가로수에 플래카드가 내걸리기 시작했다. 길가에는 손팻말이 줄지어 세워졌다.

"교육,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재능교육에 더 이상 맡길 수 없습니다."

"억울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도록 힘을 주세요."

기독교단체인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가 재능교육 사태 해결을 염원하며 시작한 촛불기도회는 이날로 84회째를 맞았다. 매주 목요일 저녁 재능교육 본사 앞과 박성훈 재능교육 회장이 거주하는 타워팰리스 앞을 오가며 기도회를 연 지 1년이 넘었다.

학습지교사로 일하다 해고된 이들의 싸움은 벌써 5년이 지났다. 이달 21일로 만 5년, 28일로 투쟁 1천835일째를 맞았다.

기도회는 인근주민으로부터 불평을 듣는 것에서 시작됐다. 이른 저녁시간인데도 곱게 차려입은 중년여성은 "잠자는 데 방해가 된다"며 짜증이 묻은 목소리를 손가락질과 함께 한바탕 쏟아냈다. 자주 있는 일인 듯 참가자들은 묵묵히 기도문을 넘기기 시작했다. 원용철 목사는 "인간답게 살아 보자고 외쳤지만 휴대폰 문자 하나로 해고당한 이들이 거리에서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며 "주님의 정의가 이 땅에서 실현돼 억울하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당신의 아들·딸들을 보살펴 달라"고 기도했다.

유명자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장은 "민주노조를 책임져야 하는 소명감, 떠나간 동지들이 박근혜 5년 동안 다시 돌아올 것인지 낙담하는 속에서 다섯 명의 활동가와 노동자들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며 "우리와 함께하고, 우리가 이기리라 믿는 사람들과 부끄럽지 않는 투쟁을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재능교육지부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매일 아침 집회신고와 선전전을 하고 매일 밤 촛불문화제를 연다. 지부가 서울시청 광장인근 재능교육 을지사옥 앞에 천막농성을 벌인 지도 800일에 가까워져 간다. 비닐 두 장으로 만들어진 천막은 한파 속에서 얼고 녹고를 반복하며 물방울을 계속 만들어 내고 있다. 조합원들은 가스 압력밥솥을 이용한 간이 보일러로 겨울밤을 보낸다.

28일 오전 천막농성장에서 만난 유득규 학습지노조 사무처장(재능교육 해고자)은 "가만히 있는데 떡 줄 사람은 없다"며 "투쟁할 사람은 투쟁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지부 조합원들은 기도회에서 소개된 도종환 시인의 '폐허 이후'를 즐겨 읽는다.

"사막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는 풀들이 있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있다. (…) 내가 나를 버리면 거기 아무도 없지만,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나 함께 있는 것들이 있다."
▲ 특수고용직인 재능교육 학습지노동자들의 투쟁이 만 5년을 넘겼다. 이들은 서울시청 광장 인근 재능교육 을지사옥 앞에 세워진 천막농성장에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제정남 기자

제정남 기자 / 윤자은 기자


자발적 연대의 힘, 대한문 '밥셔틀'

일반 시민들이 밥 싸들고 농성촌 찾아


강추위가 몰아친 26일 오후 대한문 '함께살자 농성촌' 천막 안은 고기 굽는 냄새로 진동했다. 마을 주민들이 천막 안으로 모여들었다. 고기를 굽고 있는 사람은 쌍용차 가족도, 노조 조합원도, 시민단체 회원도 아니었다. 자신을 세 살, 다섯 살 난 두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라고 소개한 배아무개(35)씨는 "스물세 분이 돌아가시고 농성을 벌이고 있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잘 버티시라고 힘을 주러 왔다"며 "농성촌 분들에게 밥을 해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배씨는 10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이곳을 찾는다. 그는 "10월과 11월에 방문했을 때 따뜻한 마음을 안고 가게 돼 오늘은 아이들도 데려왔다"고 웃었다. 잡곡밥·삼겹살·김치·상추·고구마·사과 등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그는 올해 4월 한 주부가 "분향소 쌍용차 조합원들에게 진수성찬을 차려 주자"고 쓴 글을 트위터에서 봤다. 이후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농성촌에 밥을 날랐다. 매주 밥을 해 오는 시민도 있고, 도시락을 싸 오는 시민도 있다. 이른바 '밥셔틀'이다. 배씨도 흔쾌히 동참했다.

"쌍용차 분들 이야기는 트위터와 뉴스를 통해 접했어요. 시사문제에 관심이 없었는데 갑자기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된장찌개를 끓이고 계란말이를 해서 무작정 농성촌에 찾아갔죠. 농성촌을 다녀와서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당신이 거길 왜 갔냐'며 웃어요. 나중에는 잘했다고 얘기하더군요. 남편 말고는 친구 한 명한테만 얘기했어요. 다음에 꼭 같이 가자고."

농성촌 주민들은 이 같은 '연대의 힘'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농성장 한구석에는 성탄절을 맞아 여기저기서 보내 준 케이크 상자가 켜켜이 쌓여 있다. 밥·케이크·커피·이불·핫팩·히터와 같은 농성물품은 이름 없는 시민들과 단체들로부터 꾸준히 보충된다.

김정욱 쌍용차지부 대협부장은 "농성촌에서 밥을 해 먹을 수가 없기 때문에 대한문 인근 분식집에서 대부분의 끼니를 때우는 실정"며 "밥셔틀을 해 주시는 시민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했다.

윤자은 기자

제정남  jjn@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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