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가 끝난 뒤 노동계는 충격에 휩싸여 있다. 한진중공업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한국외국어대에서 잇따라 노조간부들이 목숨을 버렸다. 극단적 선택의 배경에는 절망감이 자리 잡고 있다. 정치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된다. 특히 법과 제도 개선을 통해 노동문제를 해결하는 임무가 주어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움직임이 매우 중요해 보인다. <매일노동뉴스>가 노동자들의 죽음과 산적한 현안, 법·제도 개선을 놓고 협상테이블에 마주앉을 여야 환노위 간사를 만났다. 새누리당 간사인 김성태 의원은 26일 오후 의원회관에서, 야당 간사인 홍영표 민주통합당 의원은 27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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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표 의원

홍영표(55·사진)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전 대선후보 캠프 종합상황실장으로 지근거리에서 문 전 후보를 보좌했다. 총력전을 펼친 대선 패배에 더해 노동자들의 잇단 죽음이 그에게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홍 의원은 수차례 인터뷰 요청에도 “드릴 말씀이 없다”고 거절했다. 가까스로 성사된 인터뷰에서도 그는 “역사의 죄인이 됐다”고 목소리를 낮췄다. “지난 5년 동안 노동현장에서 폭압적인 노동탄압을 극한적 절망감 속에서 버텨 왔는데 대선에서 패배하고 나니까 새로운 희망을 찾지 못하면서 죽음을 선택한 것 아니냐”고 진단하면서 한 말이다.

홍 의원은 “박근혜 당선자의 정책으로는 전혀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실천의지를 갖고 공약을 냈는지도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 진정성과 실천의지를 평가하겠다”고 강조했다. 쌍용자동차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철탑농성 같은 현안에 대해서는 상심한 듯한 발언을 했다. 홍 의원은 “야당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이라며 “노동문제가 발생했을 때 여론화하고 여당과 정부를 압박하는 역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다만 그는 “민주통합당을 넘어서는 혁신적인 국민정당 틀 속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고 정권교체 희망을 찾자”고 말했다.

- 대선이 끝난 뒤 1주일 사이에 노동자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었다. 어떻게 진단하나.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안타깝다.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노동자들의 삶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많은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정권교체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했는데 대선에서 패하자 죽음을 선택한 것 같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91년 당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전후해 연쇄적으로 사람들이 분신했던 때가 떠올랐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역사의 발전과 진보를 믿어야 한다. 더 이상의 죽음은 안 된다. 국회에서 대책을 찾기 위해 환노위 개최를 새누리당에 요구한 상태다. 상임위를 열어 현안 질의응답을 통해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국회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새누리당 간사(김성태 의원)는 고민해 보겠다고만 하고 있다.”

- 새누리당은 야당이 이번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정치공세라고 할 것도 없다. 대선도 끝난 상황에서 정치공세로 무슨 이득을 얻겠나. 그런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노동자가 4명이나 연속해서 목숨을 잃었는데, 국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게 이상한 것 아닌가.”

“환노위 열어 조남호 한진중 회장 책임 추궁해야”

- 상임위를 연다고 문제가 당장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지점을 얘기해 달라. 

“한진중공업에서 손배 가압류가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한진중 청문회를 할 때도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다. 조남호 회장은 청문회에서 손배 가압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손배 가압류 문제는 국회 차원에서 책임추궁을 할 수 있다. 한진중 노동자들이 손배 가압류로 고통스러워하고 목숨까지 버리는 상황이다. 우선 소송을 철회하도록 압력을 가할 생각이다. 나머지 문제는 솔직히 말해서 당장 해결책이나 대안을 찾기 어렵다. 비정규직 문제는 제도개선이나 정책대안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임위 한 번 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 손배 가압류 문제를 해결할 법·제도 개선방안은 있나.

“손배 가압류는 이명박 정권이 노동을 탄압하는 중요한 도구 중 하나였다. 자본이 사실상 노동권을 제약하는 효율적인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 손배 가압류에 대한 제도개선을 고민하고 있다. 제도적인 문제도 있지만 법원의 판결이 자본에 유리하게 나오는 측면도 있다. 자본은 이를 악용해서 소송을 제기한다. 법원 판결을 보면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사실상 부정하거나 제한한다. 그럼에도 손배 가압류를 제도적으로 개선하기에는 애매한 측면이 있다. 법률적 충돌의 문제가 있어 명쾌하게 규제하기는 힘들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 버리지 말자”

- 죽음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노동운동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다. 투쟁을 통해서 극복했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버려서는 안 될 것 같다. 굉장히 추상적이고 막연한 이야기라고 할지 모르나 결국 역사는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노동운동을 하는 것 아닌가. 박근혜 당선자는 노동문제나 비정규직 문제, 정리해고 문제에 대해 불완전한 정책을 제시했다. 선거용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나마라도 실천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 예컨대 새누리당은 쌍용차 국정조사를 대선이 끝난 뒤 첫 임시국회에서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게 해야 한다. 진보·개혁·민주진영은 전열을 정비해서 우리가 왜 실패했는가에 대해 치열하게 성찰하고, 국민과 함께할 수 있는 토대를 다시 만들어 나가야 한다.”

- 국회에서 무엇을 할 생각인가.

“박근혜 당선자가 대선 과정에서 약속한 것들에 대해 여전히 많은 국민이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선거용으로 여러 가지 정책들을 내놓았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 노동정책이 박근혜 정부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지난 5년간 국민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고 삶의 질이 얼마나 나빠졌나. 대선 과정에서 대기업이나 재벌특권층을 중심으로 한 정책이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국민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광범위한 공감대가 있었다.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였고, 박 당선자도 경제민주화를 내세웠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해 근본적인 노동정책의 변화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당선자의 정책으로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실천의지를 가지고 공약을 냈는지도 의심스럽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 진정성과 실천의지를 평가할 것이다.”

-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공약이 비슷한 게 많았다. 정년연장이나 해고요건 강화가 대표적이다.

“민주통합당이 정년연장 법안을 내니까 새누리당도 같이 하겠다고 법안을 냈다. 새누리당은 정년연장 의무규정을 3년간 유예하자는 실효성 없는 주장을 했다. 그것으로 (정년 전에) 정리해고를 하는 문제가 해결되겠나. 새누리당이 의무규정을 받아들이지 않아 법안이 환노위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 실천의지 평가할 것”

- 법안을 공통된 부분부터 처리하고 경합하는 부분은 나중에 협상을 통해 처리하면 되지 않나.

“현실인식이 다르다. 새누리당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야당 따라잡기 식으로, 하는 척만 하는 데 문제가 있다. 50대 베이비붐 세대가 조기정년퇴직 때문에 얼마나 고통 받고 있는지, 나아가 경제시스템 자체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다른 것 같다. 예를 들어 이 문제를 3년 후에 하자거나, 기업에 부담을 주니까 공공부문만 규제한다는 것은 하는 척만 하는 것이다. 솔직히 공공부문은 정년보장이 된다. 반면에 대기업 사무직은 50대 초반이면 대부분 회사를 나간다. 중소기업 같은 경우에는 정년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 새누리당은 이런 문제에 대해 안이한 인식을 하고 있다. 선거용으로 잠깐 들고 나왔다가 선거가 끝나면 흐지부지된다. 그러니 국민이 정치권을 비난하는 것 아닌가.”

- 노동현안이 풀리지 않고 있다. 현대차 사내하청과 쌍용차·유성기업 등 많은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하며 겨울을 나고 있다. 야권이 공동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쌍용자동차 문제도 그렇고 현대자동차 철탑농성도 그렇고 참 안타까운 게 국회, 특히 야당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이다. 우리는 노동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회적으로 여론화하고 국민의 여론을 토대로 정치적으로 정부나 새누리당이 나서도록 압박하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정권을 잡았다면 힘을 가지고 책임 있게 이런 문제를 처리할 텐데, 그게 안 되는 상황이니까 야당도 힘들다. 19대 국회 들어와 노동문제에 대한 야당 공조는 잘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 주요 노동현안에서 이견이 없다. 지금처럼 야당끼리 이견이 없었던 시절도 드물다.”

- 새누리당은 사내하도급법을 제정해 사내하청 문제를 풀겠다는 입장인데.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법은 사내하도급에 대한 제한마저 다 풀어 주자는 것이다. 동의할 수 없다. 사내하도급법으로는 불법파견이나 불법하청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불법을 합법으로 양성화하는 법안이다.”

- 민주통합당 공약에서 간접고용 대책을 찾기 힘들다. 

“간접고용 문제 해결은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을 바꿔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노동3권을 보장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 현실적으로 어렵다. 자본과 새누리당이 반대하면 법안 통과가 힘들다. 중장기적인 과제로,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다. 대신 4대 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것과 같은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권 잡았다면 다르겠지만 … 야당 역할 제한적”

- 국회 환노위에서 시급히 처리해야 하는 법안이 있다면.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고용안정을 위한 제도적·정책적 노력이 시급하다. 다음으로는 현대차 불법파견처럼 현행법을 위반한 것을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다. 쌍용차 문제는 고용안정 문제와 연결돼 있다.”

- 쌍용차 국정조사는 어떻게 돼 가나. 민주통합당이 제출한 국정조사 요구서가 내용이 방대하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어차피 국정조사 내용은 여야가 협의해야 한다. 지금까지 진행된 국정조사를 보면 대부분 수박겉핥기 식으로 진행됐다. 성과도 없이 끝났다. 그래서 걱정이 된다. 철저한 국정조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정조사가 끝나고 나서 사태해결이 아니라 원위치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불필요한 내용은 조사범위에 넣지 않아도 되지만 필요한 부분은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국정조사답게 해야 한다. 쌍용차 정리해고의 원인이 무엇이고,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사정이 함께 노력해서 노동자들이 일자리로 돌아가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사회적 합의도 필요할 것이다.”

- 야당 국회의원으로서 노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세계 노동운동의 역사를 보면 역사가 때로는 퇴보하고 후퇴하지만 결국 변화하고 발전하고 전진한다. 그것이 역사의 필연이다. 빨리 좌절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가야 한다. 국민들의 정권교체 열망이 그렇게 컸음에도 대선에서 실패한 것에 대해 야당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유구무언이다. 역사의 죄인이 됐다는 생각밖에 없다. 그래서 철저하게 반성하고 성찰해서 완전히 새로운 혁신의 계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통합당을 넘어서는 혁신적인 국민정당의 틀 속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켜 내고, 그런 토대에서 미래의 새로운 정권교체에 대한 희망을 찾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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