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울산저널 편집국장

“한 번은 이근안이 ‘높은 사람이 오니까 시키는 대로 대답을 해’라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높은 사람이 왔는데 저는 이근안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높은 사람은 가 버렸으며 이근안은 나를 발로 밟고 몽둥이로 개 패듯이 팼습니다. 그래서 기어서 화장실을 다녔습니다.”(조선일보 12월27일 10면)

1968년 26살의 어부였던 정규용(70)씨가 인천 앞바다 소연평도 근처에서 조기를 잡다 납북돼 다섯 달 만에 돌아왔다. 경찰은 8년 뒤인 76년 정씨를 갑자기 간첩 혐의로 연행했다. 정씨는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게 고문당한 끝에 허위자백을 하고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89년까지 12년11개월을 옥살이했다.

지난 26일 인천지법은 정씨에게 36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판사는 선고에서 “정씨에게 법원을 대표해 사과드리고, 사법부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고문 관련 책을 가장 많이 쓴 이는 ‘조갑제’다.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한길사·1987), <내목에 밧줄이 놓이기 전에>(마당·1983), <김기철은 왜 요절했나>(조갑제닷컴·2011) 등이 조갑제의 고문 관련 저술이다.

이 중에서도 ‘고문에 의한 인간파멸 과정의 실증적 연구’라는 작은 제목이 붙은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이 단연 압권이다. 서슬 퍼런 전두환 군사정권하에서 이런 책을 썼다는 게 신기하다.

조갑제는 이 책 머리말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날 고문은 개인적 폭력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이다. 고문은 정권의 야만성과 국민의 용기가 어떤 눈금을 가리키고 있는지를 알려 주는 지표다. 고문은 국민과 정부의 역학관계가 뒤바뀌지 않을 때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민주화가 안 된 정권 아래에서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때립니까란 말을 믿고 고문이 없어지기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은 한강 물이 여의도 쪽에서 팔당 쪽으로 흐르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고문하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 사람이 아닌 존재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해야 한다. 여기엔 쓸데없는 온정주의가 끼여선 안 된다. 친일파를 온정으로 대한 결과는 친일파로부터 국민이 온정을 구걸해야 하는 지경으로 나타났지 않았는가. 고문하는 자, 고문을 시키는 자들의 가슴에 여론의 화살을 좀 더 깊숙이 꽂아야만 뭔가 달라질 것이다. 고문하는 자들이 제도란 방패 뒤로 언제든지 숨어 버릴 자신이 있는 사회에서는 고문은 근절될 수가 없다. 그런 방패를 걷어내고 고문자들을 사냥하려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야 뭔가 달라질 것이다. 대법원 재판부는 학생을 불법감금한 경찰관을, 권모양을 신문한 문귀동 형사의 가혹행위를 인정한 뒤에도 ‘국가에 공이 크므로 불기소함이 가하다’는 판단을 했다. 이 판사들은 경찰관만이 국가에 공을 세울 수 있고, 자기직분에 충실한 보통사람들은 국가에 아무 기여를 할 수 없는 이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판사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이 글에서 조갑제가 말한 고문하는 자는 이근안이고, 고문을 시키는 자들은 국가권력이다.

그 이근안은 최근 자신이 고문한 고 김근태 민주당 고문을 그린 영화 <남영동 1985>를 보고 나서도 “영화가 과장됐다”고 했다. 그런 이근안이 이달 14일 서울 성수동에서 자신의 자서전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이근안은 “전기고문은 하지 않았고, 휴대용 건전지 수준이었다”고 말한다.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벌어먹기 힘들었던 이근안은 69년 31살의 늦깎이 경찰이 된다. 말단으로 들어가 13년 만에 당시 시골경찰서 과장급인 경감에까지 오른다. 조갑제의 말대로 ‘고문과 조작’으로 만들어 낸 간첩 체포 공훈으로 연속 4번 승진한 결과다. 참 요지경 세상이다.

울산저널 편집국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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