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활동가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계속되고 있다. 대선 이후에만 벌써 4명이다. 이들은 누구랄 것 없이 해고를 겪었다. 어렵사리 복직한 사람은 복직한 대로,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대로 어려운 삶을 살았다. 이들의 죽음 뒤에는 정리해고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뿐만 아니라 돈으로 헌법상 권리를 제약하는 손배가압류 문제가 얽히고설켜 있다. 노조 활동가들 다수가 겪는 문제로 ‘시한폭탄’을 들고 있는 모양새다. 어떻게 하면 이 죽음의 ‘시한폭탄’을 멈출 수 있을까.

“국민대통합 대통령 되려면 노동자 목숨부터 살려야” 

종호스님
대한불교조계종
노동위원회 위원장

요즘은 신문 보기가 두려울 정도로 마음이 무겁고 불안하다. 노동자들이 연이어 생명의 끈을 놓아 버리는 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로 사회적 타살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를 포함해 집권 여당과 자본가들은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박 당선자는 노동자들이 앞으로 다가올 5년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과 좌절을 깊이 새기고, 노동자들과 ‘소통’하겠다는 일말의 의지라도 보여줘야 한다. 새누리당은 이번 사태에 대해 집권 여당으로서 무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 침묵으로 사태를 외면하는 지금의 태도는 집권 여당의 도리가 아니다.

노동자들이 원하는 건 노동자로서 법에 따라 보장된 권리를 존중하고, 자본가들도 똑같이 법을 지키라는 것이다.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 정치권은 정의롭고 공정한 심판자가 돼야 한다. 박 당선자가 진정으로 국민대통합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면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목숨부터 먼저 살려 내야 한다. 노동자 문제 해결 없이는 국민대통합도 없다. 절망으로 힘들어 하는 노동자들에게도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 당부를 꼭 드리고 싶다. 사회적 타살을 막기 위해 자본과 정치권이 답해야 할 차례다. 노동자도 국민이다.

“비정규직·정리해고·노조탄압 ‘토끼몰이’가 부른 비극”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

대통령선거에 이어진 노동자들의 죽음은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다. 고 최강서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은 정리해고를 거쳐 복직됐지만, 그를 기다린 건 강제휴직이었다. 노조탄압은 계속되고 회사는 노조에 158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였던 고 이운남 조합원 역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생계의 어려움 속에서 죽음을 택했다. 누가 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나.

이명박 정권과 자본은 지난 5년 동안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정리해고로, 노조탄압으로 토끼몰이 했다. ‘함께 살자’는 외침은 국가폭력으로 짓밟았다. 설 땅을 잃은 노동자는 철탑으로 굴다리 위로 올라가고 있다.

노동자들의 절망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으로 극에 달했다. 노동자들은 목숨까지 내놓는 처지가 됐다. 그런데도 박근혜 당선자는 노동자들의 슬픔에 침묵하고 있다. 말로는 국민대통합을 외치면서, 죽음으로 고통을 역설하는 노동자들의 외침엔 귀를 닫고 있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박 당선자는 더 큰 재앙이 닥치기 전에 노동자들의 고통을 감싸 안을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죽음의 항거를 끝내기 위해 금속노조도 모든 걸 걸고 투쟁할 것이다.

“힘이 들더라도 삶이 지속되는 한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

일주일 새 5명이 죽었다. 누구나 짐작하듯이 대통령선거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것이 배경이었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정권교체에 대한 희망의 체감도가 큰 선거였다. 그런 만큼 노동자들은 선거 결과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사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비정규직 문제 등을 깨끗하게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동자 당사자가 싸우는 수밖에 없다. 다만 건설회사 사장 출신인 이명박의 강제철거 식 통치를 힘들게 벼텨 온 노동자들은 앞으로 5년간 이런 상태가 지속될 거라는 데 좌절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게 한방에 해결될 수 있다는 ‘한탕주의’는 애초에 기대할 바가 아니었다. 또 상황이 어렵다고 5년을 절망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정치는 언제나 차선도 아닌 차악으로 진행된다. 그런 조건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당장 손에 잡히는 결과에 모든 것을 걸어서는 안 된다.

한진중공업의 경우 희망버스 이후 회사는 노동자들의 복직을 약속했지만, 결과적으로 이행된 건 없다. 자본은 원래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버스와 한진중 노동자들의 싸움이 ‘승리한 투쟁’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다른 어려운 사람들이 희망버스를 보고 다시 힘을 내 싸우지 않았나. 우리의 삶은 이런 것이다.

목숨을 던진 전태일도 당장 손에 쥔 성과는 없었다. 70년대 동일방직을 비롯한 수많은 투쟁들이 당장의 제도적 변화를 이끈 건 아니었다. 하지만 노동운동의 역사나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않았나. 쉽지 않겠지만 눈앞의 가능성들에 흔들리지 말고, 우리 스스로 자신의 힘을 믿고 자신의 삶을 믿는 게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우리의 삶이고, 힘들어도 삶이 지속되는 한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박정희의 딸로만 알았던 박근혜는 노년층에게 ‘아이돌’ 같은 존재였다.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현시대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끄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정치적 능력과 별개로, 민생을 챙긴다며 이미지 관리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가 이명박처럼 통치자이길 포기하고 탐욕적 부르주아의 길을 걷는다면, 지금의 이미지는 무너져 내릴 것이다. 통치자로서의 기본 상식이 있다면 노동자들의 죽음을 모르쇠로 일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고통 겪는 많은 노동자 상징하고 대변한 것” 

김성희
고려대 연구교수

이번 사태는 사내하청 문제, 정리해고 문제, 비정규직 문제가 핵심 사안이다. 정리해고나 비정규직화에 반대해 파업하거나 저항하면 진압하면서 손해배상 가압류를 거는 악순환 구조 속에서 탈출구가 없는 상황을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워 생긴 사태다. 돌아가신 분들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고통을 겪으면서 지내고 있다. 더군다나 이명박 정권 5년을 버텼는데 앞으로 박근혜 정권 5년을 버텨야 한다는 절망감에, 새로운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이 보태졌다.

악순환 구조를 어떻게든 깨뜨려야 한다. 돌아가신 분들은 고통을 겪는 많은 분들을 상징하고 대변한 것이다. 우리사회의 문제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문제를 잘 푸는 일자리·노동시장정책도 중요하지만 노사관계 문제에도 주목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손배 가압류와 용역폭력에 노출되고, 어떻게 보면 조장되고 방관되는 문제 말이다.

박근혜 당선자가 이명박 대통령같이 양극화 해결이나 비정규직 문제에서 절망을 이겨낼 계기를 만들지 않고 권위주의로 회기하면 절망의 수렁은 계속된다.헌법으로 보호되는 노동3권이 실질적으로 전혀 보장되지 않는 면에 초점을 맞추고 개선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를 답습하면 새 정부는 실패한다. 실패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정체시키고 퇴보시킨다. 친노동·반노동 나누지 말고 넓은 시각으로 사회의 그늘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착목해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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