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신
한국비정규
노동센터 소장

비통한 세밑이다. 벌써 네 사람의 노동자와 사회단체 회원이 세상을 등졌다. 18대 대통령으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된 지 일주일 갓 지난 지금까지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마치 죽음의 사신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다. 누군가에겐 생의 절정에서 내지르는 환호를 자아낸 청신호가 또 다른 누군가에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한쪽으로 기울 적신호가 됐다. 저승사자를 지척에 두고 사는 삶들이 그만큼 많다는 서글픈 증좌다. 반대 결과가 나왔다면 또 어땠을까 부질없는 생각마저 든다. 모든 후보들이 희망을 얘기하고 온갖 공약이 나부낀 대통령선거 결과가 죽음을 부르다니. 이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정말 이대로 두고 봐야 하는가.

1천만 비정규 노동자와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이주노동자·실업자·영세 자영업자·청년백수 등 한국 사회는 양극화의 그늘에서 고통 받는 일상의 삶들이 대다수다. 힘겨워 희망을 떠올리기 쉽지 않은 민초들이 바로 우리 자신이고 이웃이다. 눈물샘을 조금만 자극해도 금방 눈물이 글썽거려지는 평범한 인생들이 넘쳐나 그 고통스런 눈물마저 식상해질 지경이다. 진실로 함께 살기 위해선 먼저 함께 절망해야 한다. 대면해서 그이들의 소소한 얘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나의 절망과 내 옆 누군가의 절망을 그저 함께 나누는 것이 섣부른 희망을 주문하는 것보다 백 번 낫다. 절망자 인지적 관점의 인권 감수성 일깨우기가 절실하다.

그리고 살아서 싸워야 한다. 무너지는 스스로의 마음 한 자락 질기게 붙들고 삶의 동기가 되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남아야 한다. 그 누군가와 서로 안부를 물으며 버텨야 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투쟁을 결의하고 선택해야 한다. 투지가 지금처럼 삶의 직접적 동력이 된 적이 있던가. 더 나아가 홀로가 아니라 함께 어깨 겯고 싸워야 한다. 그것이 서로살림이다. 노동의 과실을 빼앗고 차별을 조장하면서 천부인권을 우스꽝스럽게 만든 사회적 타살 세력에 맞서 우리 모두를 지금 여기에서 동시에 살리는 공존공생의 투쟁을 일궈 가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들 삶의 방식과 마찬가지로 절망이 깊을수록 새로운 희망을 길어 올릴 우물을 찾아야 한다. 불의한 권력과 탐욕스런 자본에 맞선 투쟁이 희망의 참우물이다.

반대파로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께 간청드린다.

“사람부터 살립시다. 사람 목숨보다 귀한 것이 천지에 어디 있겠습니까. 누구나 함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위정자의 도리 아닐까요. 무엇보다 벼랑 끝까지 내몰린 노동자들, 특히 절망이 일상이 된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최우선 해결하는 것이 신임 대통령 당선자의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정이나 시혜를 베푸는 관점을 넘어 직접 대면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구체적으로 마련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몇 말씀 더 드리면 쌍용자동차 국정조사는 여야가 모두 약속한 만큼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대법원 판결조차 묵살한 채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민주노조 말살에만 혈안이 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합니다. 불법적인 민주노조 파괴가 백일하에 드러난 유성기업 문제도 일단락 짓도록 해야 합니다. 한진중공업·코오롱을 비롯한 정리해고 사업장과 1천800일을 훌쩍 넘긴 재능학습지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누가 신임 고용노동부 장관이 될진 모르지만 이 문제들을 그대로 두고선 어떤 노동정책도 환영받지 못할 것이고 설사 진전된 정책이 나오더라도 비아냥거리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사람 목숨에도 보수·진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면 일단 사람부터 살려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대통합 정신의 진정성이 검증받는 첫 번째 관문이 정리해고·비정규직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의 문제 해결 여부입니다. 쓴소리 들을 각오를 하고 투쟁현장에 직접 찾아가 가슴으로 먼저 그 노동자들을 만나는 것에서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다면 실기하지 말고 제때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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