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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만난 노동자
송영섭 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의 분향소가 차려진 노동조합 사무실에 앉아 2011년 부산 영도를 뜨겁게 달궜던 희망버스에 오른 한 초등학교 선생님을 생각합니다. "피고인은 시위 참가자 500여명과 함께 사다리 30여개를 이용하여 담을 넘거나 정문 경비실을 통해 피해자 주식회사 한진중공업 소유의 건조물에 침입했다." 한 교사 노동자가 법정에 서게 된 이유입니다. 진주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나이 지긋하신 선생님은 지난해 6월11일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에 참가했습니다. 이날은 서울에서 제자의 결혼식이 있어 주례를 보고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시청 앞에서 저마다 웃음을 지으며 희망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고 가던 길을 멈췄습니다. 그날은 한진중의 첫 희망버스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당시 김진숙씨는 150일이 넘게 고립무원의 85호 크레인 위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홀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 전에 인터넷 등을 통해 한진중과 김진숙씨의 절박한 사정을 알고 있던 터라 선생님은 양복차림 그대로 희망버스에 올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희망버스에 오르는 것을 본 선생님은 자신도 무엇인가를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해 자연스럽게 희망버스에 오르게 됐다고 합니다. 생각지도 않게 조선소 안에서 사다리가 내려와 영도조선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마치 모두의 절박함에 감동해 하늘에서 사다리가 내려오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85호 크레인 밑에 앉아 노래를 같이 부르거나 다른 사람들의 율동을 봤습니다. 울고 웃으며 하룻밤을 꼬박 뜬눈으로 지새웠습니다. “죽지는 말아라”고 소리치고 “사람이 꽃”이라고 소리쳤습니다. 오직 150일 넘게 크레인에 홀로 올라가 있는 김진숙씨에게 힘을 주고자 목놓아 소리쳤습니다. 결혼식 때문에 입은 양복이 전혀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평화로운 밤이었다고 합니다. 한판 축제를 마치고 돌아온 선생님은 그때의 경험이 너무 소중해서 영도조선소 안에서 있었던 일과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고 그것이 증거자료가 돼 선생님은 법정에 서게 됐습니다.

영도조선소 담을 넘어간 이유를 묻는 재판장에게 그 선생님은 김주익 열사 이야기를 했습니다. 2003년 김주익 열사가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홀로 129일을 버티다 끝내 목을 맸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도 죄송스러웠다고 합니다. 외로움과 절망감이 한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갈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고 했습니다. 지난해에 또 그 한진중에서 여성노동자가 크레인 농성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8년 전 노동자의 죽음과 “아빠, 집에 오실 때는 힐리스 운동화 사 주세요”라고 했던 어린 아들의 편지가 떠올랐고, 이번만큼은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 따라 행동한 것이기에 부끄러움이 없고 오히려 그 자리에 있었던 자신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고 했습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4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죽음을 택했습니다. 한진중 최강서 열사는 지난해 11월 노사합의 이후 올해 11월 회사로 복귀했지만 노조에 대한 158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와 노동조합 활동방해, 기업노조와의 차별행위로 더 이상 5년을 어떻게 해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손배 최소화에 합의했던 한진중은 지회가 400년 동안 조합비를 다 모아도 만들 수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내놓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을 없애지 않는 한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은 끝내 한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대학노조 한국외대지부장은 오랜 기간 소송을 통해 대법원 복직판결을 받았지만 이미 조합원들이 떠난 학교현장에서 더 이상의 희망을 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세련되고 지능화된 사용자의 노동조합 탄압으로 노동자들은 제2, 제3의 복수노조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어쩌면 사용자의 탄압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함께했던 동료들의 차가운 시선과 비웃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열사들을 보내는 향냄새를 맡으면서 “죽지는 말아라”고 소리치고 “사람이 꽃”이라고 연대의 손을 내밀었던 2011년 희망버스와 불편한 양복차림으로 기꺼이 영도조선소 노상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던 그 선생님이 그리워집니다.

송영섭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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