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에 또 한 명의 '사회적 타살자'가 나왔다. 지난 25일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에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노조사무실에서 전국대학노조 한국외대지부장 이호일(47)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노조간부로 일하며 해고와 복직 과정에서 겪은 부당한 처우와 해고기간 쌓인 빚더미가 한 집안의 가장을 죽음으로 내몬 것으로 추정된다.

2006년부터 시작된 파업과 해고·복직투쟁·복직 후 대기발령 등 일련의 과정은 유난히 자존심이 강했던 이 지부장이 죽음을 택할 만큼 힘들고 가혹했다. 이 지부장은 92년 행정지원처 인사담당으로 한국외대에 입사해 98년부터 노조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 외대지부 파업 당시 정책국장으로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가 2년이 넘는 해고무효확인 소송 끝에 2009년 대법원 승소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대학측은 대법원 복직 판결에도 원직복직을 거부했다. 대신 직제에도 없는 대천수련원으로 이 지부장을 발령냈다. 이 지부장과 함께 복직판결을 받은 나머지 노조간부들에게도 원거리 발령 혹은 전공과 다른 부서로 발령을 보내는 등 보복성 인사로 일관했다. 이 지부장과 함께 해고됐다가 복직된 최완식씨는 26일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직원 발령이 전혀 없던 법인에서 운영하는 대천수련원으로 지부장을 발령하자 지부장이 많이 힘들어했다"며 "하지만 워낙 성실해 열심히 근무했다"고 말했다.

학교측의 보복성 인사와 압력이 계속되면서 지부는 자연스레 위축·쇠퇴 과정을 밟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이 지부장은 2010년 14대 지부장선거에 나가 당선됐고, 올해 11월 15대 지부장 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지부 관계자는 "워낙 노조활동이 위축돼 있던 터라 (지부장이) 조합원 간 결속력을 높이는 활동을 열심히 했다"면서도 "한편에서는 부담감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지부장을 더욱 괴롭힌 건 해고자 신분으로 있던 3년 동안 쌓이고 쌓인 부채였다. 최완식씨는 "해고 기간에 생계를 유지하려고 다른 일을 해 보려던 게 잘못돼 경제상황이 더욱 힘들어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경제적 어려움은 우울증을 불렀다. 지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지부장이) 우울증으로 약을 복용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올해 중순께 (우울증으로) 병가를 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 지부장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학교측의 부당해고만 아니었어도 학교에 충실하실 분이었습니다. 해고된 뒤에도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발버둥쳤는데…. 이게 사회적 타살이 아니고 뭡니까."

이 지부장의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담당했던 김선수 변호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결과가 뻔해 보이는 소송을 끝까지 가져가고 보는 대학의 대응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지적한 뒤 "참담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이 지부장의 장례절차를 진행하고 조문객을 맞던 이기연 지부 수석부지부장이 26일 새벽 갑작스런 심근경색 증세로 빈소에서 쓰러졌다. 쓰러진 직후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이던 그는 이날 오후 7시께 갑작스럽게 숨졌다. 김기일 부지부장은 "중환자실에 있던 수석부지부장이 오후 7시께 돌아가셨다"며 "수술이 잘됐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됐다"고 황망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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