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화평)

대상판례 / 서울행정법원 2012구합1310 조정서에대한견해제시결정취소

1. 논의배경

2012년 11월19일 민주노총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제노동기구(ILO)가 한국정부에 일방적인 정부지침을 무기로 한 (공공기관)노조활동-노동기본권 침해 중단 및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또 △(공공기관 노조 활동가들에 대한)대규모 징계-해고 및 업무방해죄 적용에 따른 민·형사 처벌 등 직접적인 노조탄압을 중단하고 원상회복할 것 △사용자 지배·개입에 따른 노조활동 위축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를 실시할 것 등을 권고했다.

정부(기획재정부)가 예산편성지침을 무기로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을 형해화하고, 총액인건비제도와 경영평가 및 경영평가 성과급제도를 통해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을 통제·억압한 것은 오래됐지만 현 정부 들어서서 그 정도가 심해졌다. 특히 감사원 감사를 앞세운 소위 ‘감사원 지적사항’의 이행 여부가 경영평가에 반영되도록 하면서 많은 공공기관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이 본격화된 것이다. 근로기준법을 상회하는 단체협약에 대해서는 어김없이 ‘감사원 지적사항’이 떨어졌고, 이를 불이행하는 기관에 대해서는 ‘방만경영’이라는 낙인을 찍어서 관련지표에 최하점을 부여하도록 한 것이다. 정부는 경영평가에서 나쁜 성적을 받는 기관에 대해 기관장 해임건의 및 성과급과 경상경비 예산의 차등지급 등으로 압박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판결은 한국○○공단(이하 ‘공단’이라 한다) 사용자가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서에 대한 견해제시결정에 불복해 서울행정법원에 견해제시결정 취소를 청구한 사건이다. 공단 사용자가 스스로 조정서를 수락하고도 조정서 이행을 거부하며 이 사건을 제기한 것은 감사원 지적사항의 관철을 위해서다. 이 사건에서 공단 사용자는 조정서 및 견해제시결정의 이행이 감사원법을 위반하게 될 것이라는 논리로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서 이행을 거부했고, 조정서 불이행 상태는 현재도 계속돼 노사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한국정부에 대한 국제노동기구의 권고사항들이 현재진행형임을 보여 주고 있다.

2. 대상판결의 의미

1) 사건의 쟁점

이 사건 노사는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서를 양측이 수락한 후 그 이행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졌다. 조정서에는 임금인상률에 관한 조항(제1항), 감사원 지적사항의 이행을 위해 당사자에게 협의의무를 부여한 조항(제2항 및 제4항), 유효기간에 관한 조항(제3항)이 명시됐다. 그런데 사용자의 목표는 감사원 지적사항 이행에 있었기 때문에 감사원 지적사항이 이행되지 않으면 조정서 제1항의 임금인상도 이행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조정서 중에서 임금인상에 관한 부분(제1항)과 감사원 지적사항 이행부분이 동시이행관계에 있는지 여부를 중앙노동위원회에 해석요청했다. 이에 대해 중노위는 “2011년도 임금인상분은 2011년 12월31일까지 전액 지급돼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대해 공단 사용자는 중노위의 견해제시결정에도 불구하고 감사원 지적사항 개선과 관련된 제2항 및 제4항(감사원 지적사항 관련)이 이행되지 않으면 제1항(임금인상분 지급)의 이행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계속했다.

2) 판결 요지

서울행정법원은 이 사건 조정서에 정한 바대로 “노동자들에게 임금인상분을 지급하면 감사원 지적사항을 이행하지 아니하게 될 소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결과가 발생하는 것은 원고 공단이 중노위 조정위원회의 조정안을 수락한 것에 따른 결과이지 그와 같은 결과를 두고 이 사건 조정서의 해석을 내용으로 하는 이 사건 견해제시결정 자체가 감사원법에 위반되어 위법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3) 단체협약에 대한 감사원 감사의 문제점

감사원법 제33조(시정 등의 요구)에 따르면 감사원이 감사 결과 위법 또는 부당하다고 인정되는 사실이 있을 때에는 해당 기관의 장에게 시정·주의 등을 요구할 수 있고, 해당 기관의 장은 감사원이 정한 날까지 이를 이행해야 한다. 제34조(개선 등의 요구)에 따르면 감사원은 감사 결과 법령상·제도상 또는 행정상 모순이 있거나 그 밖에 개선할 사항이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해당 기관의 장에게 법령 등의 제정·개정 또는 폐지를 위한 조치나 제도상 또는 행정상의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의한 단체협약은 근로기준법보다 상회하는 근로조건을 정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는 일반적으로 단체협약의 고유한 기능으로 인정되고 있다. 따라서 감사원이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을 상회하는 단체협약상 근로조건을 위법·부당하다고 판단해 지적사항을 내는 것은 노동관계법의 입법취지에 반할 수 있다. 물론 국가예산 또는 독점적 지위를 통해 운영되는 공공부문에서 노사 주체들의 과도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그대로 용인할 수는 없다. 이런 이유로 감사원이 공공기관 예산집행에 대해 감사권한을 갖는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노동조합의 정당한 단체교섭권 행사 및 단체협약 체결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감사권한을 사용할 경우에는 초법적인 권한남용이 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현행 법률에서 공공기관 노동조합에 대해 민간부문에 버금가는 노동기본권을 보장한 상황에서는 정부가 편의적으로 예산편성권과 감사권한만으로 노동조합의 정당한 단체교섭권을 제한할 경우에 그로 인한 노사갈등은 불가피하다. 노동계의 대정부투쟁 수위가 높아지고 국제노동기구 등 국제사회로부터 질타가 이어져 국가위상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3. 공공부문 노사관계 정상화를 위한 제언

서울행정법원은 중노위의 조정서와 견해제시결정이 다소 감사원 지적사항과 충돌하는 점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상충되는 문제는 공단 사용자가 조정서를 수락한 데서 기인한 것이라며 그 책임을 공단 사용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필자는 이 같은 서울행정법원의 견해가 일면 타당하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 공공부문에서 정부예산지침과 감사원 감사 등을 통해 노동3권을 침해하고 노사갈등을 초래한 상황을 두고 개별 공공기관장의 조정서 수락에 따른 책임으로 치부하는 것은 상황인식에 있어서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공공부문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노사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해 본다.

1) 정부의 실질적 사용자성 인정

공공기관 종사자들의 실질적 사용자는 정부다. 이는 그동안 주인인 국가(정부)가 대리인인 공공기관장들을 인사권·정원조정권·예산지침과 감사원 감사·감독관청에 의한 보수규정승인 등 각종 감독권으로 통제해 온 사실이 말해 준다. 대리인(기관장)과 상대방(노동조합) 간 법률행위(단체협약)의 효과는 주인(국가)에게 직접 귀속되는 것이므로, 이런 사실관계를 존중하고 법률(예컨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정부와 노동조합 간 교섭 또는 협의에 관한 근거규정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

2) 정부의 예산편성지침서 작성 등에 노조 대표의 참가

공공기관 사용자들이 예산지침을 이유로 노동조합과 교섭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정부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정부가 다음해 예산편성지침을 작성하는 과정에 총연맹 또는 산별노조 수준에서 노동조합 대표자와 협의하고 참여하도록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아울러 기업 수준에서도 다음해 인건비 예산편성과정에 기업별 노조(또는 지부)와 교섭 또는 협의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3) 단체협약과 내부규정에 대한 감사의 대상과 절차 개선

대상판결에서와 같이 노동관계법에 규정하지 않거나 노동관계법보다 상회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조항 또는 관련 취업규칙을 문제 삼아 지적하고, 이를 이유로 경영평가 등에 불이익을 주거나 기관장을 문책하는 행위는 자칫 정부가 노사관계의 배후에서 노사갈등을 유도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노조법으로 보장된 규범적 부분(근로조건)에 대해서는 단체협약을 존중하는 것이 노동관계법을 준수하는 것이고, 선량한 사용자로서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아울러 감사원이나 감독관청의 감사가 인건비예산이나 노사관계를 대상으로 할 경우에는 반드시 노동조합의 의견을 청취하고 이를 보고서에 기재해야 할 것이다.

4) 공공성의 강화

마지막으로 공공부문을 이윤창출이나 비용절감의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정부의 관점을 개선해야 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고 선진국에 비해 현저하게 적은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지금과 같은 재무적 측면의 규제정책에는 한계가 있다. 공공기관의 공공성과 안정된 고용관계를 고려해 대국민 서비스가 개선되도록 하는 새로운 공공기관 감독 시스템과 경영평가 시스템의 개선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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