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 다국적 제약사로 구성된 한국민주제약노조가 지난 12일 한국노총에서 출범했다. 민주제약노조의 조합원은 900여명이다. 올해 2월 제약산별노조 통합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지난 10개월 동안 산별전환 절차를 밟았다. 한국노총 화학노련 소속 41개 제약사노조 가운데 20%가 산별로 전환한 것이다. 이들은 왜 산별노조를 택했을까. 이들은 첫 번째 이유로 심각한 고용불안을 꼽는다. 지난 10년간 안정적 성장을 구가했던 제약사들은 지난 4월 정부가 약가를 일괄 인하하자 영업이익이 줄었다는 이유로 구조조정을 택했다. 다국적 제약사는 그동안 없었던 고용형태도 만들어냈다. 일부 제약회사는 예전에 정규직 영업사원을 도급업체 직원으로 바꾸고 있다. 말이 도급이지 사실상 파견이라는 지적이 계속된다. 파견직원을 쓸 수 없는 업무에 썼으니 불법파견 논란이 인다. 구조조정에, 불법파견에, 산별노조 등장까지 2012년 제약업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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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적 고용불안, 더 크게 뭉쳐 막아낼 것” 

김상찬
한국민주제약노조
위원장

제약회사마다 고용불안이 심각하다. 상시적인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희망퇴직 등 여러 형태로 인원감축이 이뤄지고 있다. 산별노조를 결성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산별노조의 최우선 과제는 고용안정이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90년대 국내 진입한 후 지속적으로 조직을 축소해 왔다. 생산라인을 대부분 철수한 데 이어 최근에는 영업조직도 줄이고 있다. 최근 제약회사들이 CSO(계약판매대행사) 등을 통해 영업업무를 외주화하고 있는데, 기업별노조 형태로는 이를 막는데 한계가 있다. 비록 산별노조가 다국적 제약사를 중심으로 시작하지만 가입대상은 제약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로 개방돼 있다. 다국적 제약사뿐만 아니라 국내 제약사나 정규직·비정규직 등 고용형태에 상관없이 조직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제약노조는 내년부터 KRPIA(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를 상대로 산별교섭을 요구할 예정이다. 이들이 산별교섭에 쉽게 응하지 않겠지만 대각선 교섭을 실시하고, 조직확대를 통해 압박해 나갈 것이다. 올해 산별교섭 전환과정에서 두 개의 신생노조가 결성된 것만 봐도 제약노동자들의 호응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정규직 줄이고 빈자리에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채워” 

유대희
 한국민주제약노조
BMS지부장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한국에서 지난 15년간 많은 혜택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런데 제약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가 강화되다보니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법적인 문제를 발생 시키지 않으려고 영업모델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영업노동자에 의존하는 경향이 컸다. 영업사원의 능력과 노하우, 판촉에 기대 영업했다면 최근에는 제품의 기술력과 특허를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영업직은 매뉴얼에 따라 회사의 영업방침을 전달하는 중간 매개체로 전락하고 있다.

영업업무의 비숙련화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영업을 아예 외주화하는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인 BMS제약의 CSO(계약판매대행사)다.

회사는 도급이라고 주장하지만 명백한 불법파견이다. 노조가 올해 5월 불법파견 문제를 사측에 제기하기 전까지 회사는 파견 받은 영업 인력에게 정규직과 똑같은 업무를 시켰다. 지점장이 출퇴근 보고부터 업무평가가지 등을 모든 것을 관리했다. 노조가 불법파견 의혹을 제기한 이후 회사는 파견 영업 인력을 지점으로 출근은 시키지는 않지만 업무는 여전히 비슷하게 시키고 있다. 현재 고용노동부가 불법파견 여부를 수사 중에 있다.

또 다른 제약회사의 경우 ‘맨파워’라는 인력파견업체 소속 영업직원 30~40명을 사용하다가 희망퇴직으로 정규직이 20명 나가니, 파견업체 인력을 80명까지 늘이기도 했다. 이 회사뿐만 아니라 많은 제약회사들이 앞으로 정규직을 줄이고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확대해 나갈 것이 분명하다.

다국적 제약회사가 이런 방식을 쓰는 것은 비용절감 차원만은 아니다. 현재 파견업체 인력들의 처우 수준은 정규직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다. 파견업체 직원 대부분이 제약회사 경력직이기 때문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비정규직을 활용하면 고용유연화와 함께 노조에 대한 부담도 덜 수 있다. 경제적 이익이 당장 발생하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이러한 고용형태를 고착화시키면 결국 인건비 지출도 줄이게 될 것이다. 정규직을 없애는 것뿐만 아니라 노조도 없애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경기악화 때, 투쟁보다는 협조·양보 필요”  

남용우
한국경총
노사대책본부장

최근 경제가 악화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회사나 근로자나 모두 어려운 국면에 있다. 노사관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노사가 대화와 협조를 통해 고용과 임금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임금동결 혹은 삭감과 같은 노조의 양보가 없다면 기업이 살아남기 힘든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제약업계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경기가 악화하면 근로자들이 고용안정을 위해 노조를 만든다. 대부분 처음에는 강한 투쟁을 통해 고용조정을 막겠다고 싸움부터 시작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답이 될 수 없다. 회사는 계속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데 싸움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별노조 역시 답이 아니다. 근로자들이 힘을 모으기 위해 계급 간 연대차원에서 산별노조를 만들기도 하지만 결국 문제를 풀 현장은 기업 안이다. 기업 노사가 대화·협조를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산별노조는 오히려 제약이 될 수 있다. 제약업계 산별노조 건설은 그런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근로자들이 일자리(고용안정)에 집착하는 것은 노동시장의 안정성이 떨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한다. 개별 기업의 고용유연성을 좀 더 높이고 노동시장의 안정성도 높인다면 일자리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다소나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제약업계 노동자 이중고 심각" 

최철호 공인노무사

최근 제약업종의 고용에서 문제는 두 가지 양태로 벌어지고 있다. 첫째 구조조정이다. 구조조정은 희망퇴직 형태로 빈번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리해고 방식으로 구조조정이 되면 이슈가 되는데 희망퇴직이라는 외관을 띠기 때문에 논란이 크게 되지 않는다.

또 다른 하나는 간접고용 문제다. 간접고용 문제는 한두 업체만의 일이 아니다. 외국계 제약사의 경우 생산시설이 없어서 마케팅이나 영업 부문에 인력의 대부분이 종사하고 있다. 그런데 외국계 제약사에서 최근 영업 인력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영업대행사를 통해 확보하는 움직임이 있다. 업무 내용은 동일한데 파견회사를 통해 간접고용하는 것이다. 이런 경향이 앞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악의적으로 이용하면 정규직원을 조기퇴직시키고 그 빈자리를 간접고용으로 메울 수도 있다. 고용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임금의 지나친 유연성도 문제다. 제약업계의 문제만은 아닌데 외환위기 이후에 성과연봉제가 많이 도입됐다. 특히나 외국기업이다 보니 글로벌 폴리시(Global policy)라는 이름으로 성과연봉제를 실시한다. 문제는 성과연봉제를 편의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를 인정하더라도 성과에 따른 임금 인상 정도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전혀 안 된다. 어떤 해에는 이익을 내고 평균 임금인상률을 합의하더라도 최하등급(임금동결)의 범위를 임의적으로 확대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임금 유연성을 과도하게 행사하고 있다. 공정한 분배가 되지 않는 것이다. 간접고용에, 임금과 관련한 기준이 불명확한 상태가 바로 제약업계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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