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비정규직
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사상 초유의 양강(兩强) 구도로 전개되는 대선정국에서 노동운동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좁은 선택지에 갇혀 있는 듯하다. 21세기 한국사회의 노동현실을 상징하는 저임금·비정규직·여성 노동자가 두 명이나 후보로 출마했다. 하지만 언론을 연일 장식하는 것은 노동계 인사 누구 혹은 어느 노조가 박근혜나 문재인 지지선언을 했다는 소식들이다.

그러나 각각 ‘일자리’와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는 양대 대선후보의 TV토론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는 노동자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함께 살자”며 정리해고에 맞선 파업투쟁을 지휘한 죄로 3년을 감옥에서 지내고 만기출소한 한상균 전 지부장을 포함한 쌍용차지부·비정규지회 3인의 노동자들이 지난달 20일부터 평택 쌍용차공장의 송전탑 30미터 상공에서 농성 중이다. ‘먹튀’ 상하이차에는 그 어떤 책임도 묻지 못하고 옥쇄파업 중인 노동자들을 공권력으로 폭력진압한 장본인은 이명박 정권이다. 회사 정상화 이후에도 해고자·무급휴직자를 복직시키지 않는 자본을 비호해 스물 세 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목숨을 잃도록 만든 책임은 분명 이명박 정권에게 있다. 그러나 노조의 반대를 무릅쓰고 쌍용차를 해외매각한 것은 노무현 정권이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IMF와의 재협상”을 주장하며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IMF가 요구한 것보다 더욱 가혹한 구조조정에 앞장서고 정리해고제를 근로기준법에 명문화한 장본인은 김대중 정권이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15만 볼트 송전탑에서는 “불법파견 철폐,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를 내걸고 10월17일부터 두 명의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가 농성 중이다. 대법원에서 두 번이나 불법파견임을 인정했음에도 아랑곳없는 현대차는 방조하면서 정당한 투쟁을 전개하는 비정규 노동자들만 잡아가는 자는 이명박 정권이다. 그러나 2004년 노동부가 현대차의 9천234개 공정이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하고서도 불법을 저지른 자본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오히려 불법파견 사용시 직접고용 간주조항을 파견법에서 삭제한 장본인은 노무현 정권이다. 더 근본적으로 노동유연화를 앞장서 추진하고 파견법과 비롯한 기간제법을 제정해 비정규직 사용을 합법화해 준 책임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있다.

박근혜는 이명박이 아니라고, 문재인은 김대중·노무현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더 솔직히, 박근혜 정권보다는 문재인 정권이 차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할 수 있으려면 세계 경제위기의 영향이 전면화될 내년 이후 한국 경제위기 속에서 박근혜나 문재인이 노동의 희생이 아닌 자본에 대한 통제정책을 취하도록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보다 중요하게는 박근혜나 문재인 정권하에서 노동운동이 경제위기에 맞서 정치적·조직적으로 강화될 수 있는 계기와 계획은 이것이라고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쌍용차 노동자·가족의 죽음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정리해고제를 철폐하기 위해, 우리는 ‘정리해고의 요건 엄격화’나 ‘해고자에 대한 안전망 확보’가 아니라 자신의 위기를 노동자와 사회에 떠넘기는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책임 추궁을 요구해야 한다. 비정규직을 사용해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기업에 대해 그만큼의 제재와 책임을 부담시켜야 한다. 근로계약상의 고용주가 아니더라도 노동자의 노동력을 활용해 이윤을 얻는 기업에게 노동관계법상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런 요구들은 법·제도적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입법청원 운동으로 실현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입법을 강제할 수 있는 대중운동의 힘을 기르고 자본과 권력이 설파하는 위기돌파 방안에 맞선 독자적인 전망을 수립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너무나 아득하게만 느껴진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만약 2009년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벌어졌을 때 “자본이 책임져라, 정리해고 분쇄하자”를 걸고 민주노총 차원의 연대파업과 투쟁을 조직했다면 어땠을까. 구조조정 위협 앞에서 노조가 아니라 회사를 선택하는 ‘민주노조’의 조합원들에게 다른 전망을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2010년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이 벌어졌을 때 이들의 투쟁에 함께하는 것이 불안정노동에 맞선 노동자의 힘을 강화하는 길임을 조합원·비조합원에게 설득하고 연대를 조직했다면, 지금 비정규직 문제해결의 발언권을 얻는 자는 박근혜·문재인이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이지 않았을까.

정리해고제와 비정규직을 철폐할 수 있는 계기와 전망은 여전히 저들의 선택이 아니라 우리의 투쟁 속에 놓여 있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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