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동훈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현장)

국내 학습지업계 최고로 볼 수 있는 A사. 2009년 기준으로 이 기업의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6천548억원으로 국내 24위였다. 올해 7월 A사 회장은 보유주식의 대가로 4억6천500만원의 현금을 중간배당으로 챙겼다. 연말에 또다시 기말배당금으로 4억원을 받을 예정이다. 그리고 관계사의 배당수익까지 고려하면 배당금액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A사의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285억원 수준이고, 지난 30여년간 시장점유율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A사는 조직 구성원 상호 간의 존중과 협력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구성원에 대한 눈높이사랑’과 존경받는 기업으로써 건강한 사회 구현에 이바지하는 ‘사회에 대한 눈높이사랑’을 경영이념 핵심가치라 밝히고 있다.

이런 A사가 40대 이상의 장기근속 노동자들을 감축하겠다고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근로기준법이 정한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즉 정리해고를 강행할 수 있을까. 다른 최선(차선이 아니다)의 선택은 없을까. 그 결과를 소개한다.

A사의 인사규정에서 정하고 있는 정년은 직급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만 50세부터 57세까지다. 그러나 인사규정 시행세칙은 직급별 표준체류연수를 4년으로, 일정기간 승급을 하지 못하면 직급정년의 적용대상이 된다. 그렇게 직급정년의 적용을 받게 된 노동자들은 또다시 임금피크제 적용대상이 된다. 첫해에 30%, 2년차에 40%, 3년차 이후에는 50%의 급여가 삭감된다. 임금피크제 적용 연령은 직급별로 만 44세부터 50세까지다.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게 된 40대 이상의 장기근속 노동자들 상당수는 반토막 난 급여로 계속 버틸지, 스스로 회사를 떠날지 고민하게 된다. A사 정규직 노조는 현재까지 정규직 학습지교사 중 정년퇴임자가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한다.

2012년 10월 즈음에서 11월 말까지 약 2개월에 불과한 기간에 A사 노동자 140여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10여년 넘게 학습지교사로서 회원관리업무를 담당해 왔던 노동자들에게 A사가 임금피크제 적용대상이라는 이유를 들어 신설되는 특판사업본부로 갈지, 사직할지를 선택하라며 면담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선택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관리자들은 ‘특판본부로 발령 나면 버티지 못할 것이니 사직해라’, ‘6개월분 임금을 줄 테니 나가라’, ‘몇 달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며 사직을 종용하기도 했다. 결국 대상자 192명 중 14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9천여명의 비정규직 학습지 교사를 두고 있는 A사의 2011년 정규직 학습지 교사수는 겨우 410명. 이제 140여명이 회사를 떠나면 정규직 비율은 3% 이하가 된다.

이뿐일까. A사는 2007년부터 매년 생산성 향상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주요 대상은 여전히 40대 이상 장기근속 노동자들이었다. 사실상 퇴출프로그램임을 잘 알고 있던 노동자들은 교육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엄청난 교육 분량과 냉혹한 평가가 뒤따랐다. 교육이 끝나면 미수료를 이유로 대기발령과 무급휴직, 또다시 대기발령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이어진다. 하나 둘 회사를 떠났다. 임금피크제로 반토막 난 월급에서 또다시 깎인 대기발령 6개월차의 장기근속 노동자. 2012년 7월 실수령액 기준 30만원도 되지 않는 돈을 월급으로 받은 17년차 장기근속 노동자는 그렇게 회사를 떠났다. 지난 5년간 교육 대상자 절반 가까이가 그렇게 회사를 떠났다.

정리해고나 징계해고라는 법적 책임을 피하면서 A사는 그렇게 최선의 선택을 했다. A사는 당당히 정규직 학습지교사를 아예 없애 버릴 계획이라고 말한다. 구성원에 대한 눈높이사랑의 실천, 사회에 대한 눈높이사랑의 실천이 이래도 되나. A사는 떠나는 노동자를 붙잡지 않는다. 특판사업본부나 생산성 향상교육이 결국 퇴출프로그램임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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