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요즘 가끔 정신을 놓는다. 노동자가 아니라서 그런가. TV토론을 보다가 나는 이정희가 너무 빨리 말한다고, 얼굴을 옆으로 돌리면 토끼 이빨이 보인다고, 남쪽정부라 말한다고 안타까워했다. TV토론을 듣다가 나는 문재인이 좀 더 분명한 내용으로 분명한 말투로 하지 않는 것에 안쓰러워했다. 나는 날마다 노동타령으로 살고 있는데도 이 모양이다. 종북타령의 빌미가 되지 않을까. 표 잃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노동타령만 해대는 자이니 노동자권리로 노동정치로 대선도 바라봐야 하는데 순간 나는 정권교체로 바라보고 말았다. 박근혜냐 문재인이냐로 갈라진 세상을 헤매다가 나는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독재의 공포가 몰려온다는 민주의 구호에 순간이지만 나는 그만 넋이 빠졌다. 침착하자. 어느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말자. 오직 노동으로 모든 걸 바라보자. 다짐하고 다짐하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것도 토론이 끝나고서야 나는. 정신 못 차리게 하는 선거판이다. 그 선거판 한 가운데 이정희와 문재인이 있다. 이 나라 진보와 민주를 대표하는 대선후보로 대통령선거에서 민주진보세력의 관심을 모으고 표를 모으고 있다. 노동자후보가 2명이나 출마했는데 그들은 노동자의 관심도 표도 모으지 못하고 오늘 대한민국 18대 대선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정희는 뭐고 문재인은 뭐란 말인가. 노동자에게 뭐란 말인가.

2. 공약, 이정희와 문재인은 다르다. 분명히 차이가 있다. 중앙선관위 제공 후보들의 핵심공약을 보면 ‘한미FTA 폐기로 경제주권 수호’가 이정희 후보의 1호 공약인데, 문재인 후보는 그 핵심공약에 한미FTA 자체가 들어 있지 않다.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체제 실현, 노동3권의 실질적이고 완전한 보장, 기초 농산물 국가수매제도로 식량주권 실현, 여성이 행복한 사회, 공교육 정상화와 교육비 경감, 국가가 책임지는 무상의료, 1% 재벌 해체로 99% 서민행복, 부유층과 재벌에 대한 증세로 복지재원 마련, 핵발전소 폐기 및 에너지 전환 등 나머지 이정희 후보의 공약도 문재인 후보의 공약과는 같지 않다. 그런데 오늘 대한민국에서는 다르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르다고 문재인이 아니라 이정희이어야 한다고, 심상정과는 다르게 후보등록하고서 대선후보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이정희는 다르니 투표소에서 기호 3번을 찍어 달라고 그러면 공약을 실현해 내겠다고 하지 않는다. 이정희 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은 열심히 기호 3번 이정희를 외쳐대면서 광장과 거리, 시장과 공장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런데도 이정희는 문재인과는 다르니 이번 대선에서 기호 2번을 찍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기호 3번을 찍어달라고 외치고 있다고는 선거권자 국민들은 듣지 않는다. 이정희 후보가 TV토론하는 걸 보고 박수쳐 대면서도 그러니 이정희를 찍겠다고 하지 않는다. 문재인의 지지자도 이정희의 토론을 보고 잘한다 하고, 이정희의 지지자는 문재인에게 투표한다고 한다. 분명히 다른데, 다르니 대선후보로 문재인이고 이정희인데 이런다. 몇 십 년을 이러고 있다. 왜 이런 것일까. 다르다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넘어서지 못해서다. 새누리당 앞에서는 결코 다르지 않다. 민주든 진보든 뭐든 문재인과 이정희의 기치로 모여든 ‘우리’는 다르지 않다. 민주의 당 후보를 지지해서 새누리당 후보를 낙선시키고 새누리당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 진보로 다른 것으로는 당선될 수가 없으니 당선가능성 있는 민주의 당을 지지하는 것. 그것이 언제나 우리의 정치였다. 오늘 대선을 앞두고서도 여지없이 그렇다. 이 나라에서는 최고권력, 대권 앞에서는 언제나 진보든 민주든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진보라도 어차피 민주의 당 후보에게 투표할 것인데 도대체 왜 진보라고 후보등록을 하는 것인지 의문을 갖는다. 혹시 세를 모아서 표를 주기 위해서인가. 어차피 정치는 현실이다. 선거는 권력을 내가 차지할 수 있느냐 하는, 표가 권력이 되는 생생한 현실이다. 현실이 어떻다며 진보가 아니라 민주를 지지하겠다 한다면 그의 정치적 선택은 진보가 아니라 민주인 거다. 새누리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아무개들에게 물어보라. 그가 모든 인민이 자유롭고 평등한 내일을 지지하지 않는지. 대부분 지지한다 할 것이다. 다만 그걸 오늘 이뤄낼 수가 없으니 경제니 안보니 안정이니 뭐니 현실을 살펴야 한다고 새누리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라고 말해 줄 것이다. 그가 어떤 꿈을 꾸느냐가 아니라 그가 어떤 행위를 하냐가 그를 말한다. 오늘 민주의 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자는 아무리 노동자의 세상이 어떻다고 떠들며 끼리끼리 단체를 조직해서 활동해 왔다 해도 오늘 그는 민주의 당 후보 지지자다. 아무리 진보를 떠벌여 왔어도 민주의 당 후보 지지자고 진보가 아니라 민주가 그의 정체다. 바로 이러한 정체로 이 나라에서는 오늘 민주와 진보는 다르지 않다. 이정희와 문재인만을 두고 말하는 게 아니다. 민주를 외치고 진보를 외쳐 온 우리는 다르지 않다. 진보에 냉정한 정치현실에서 우리는 언제나 민주였을 뿐이다. 그러니 이 나라에서는 민주와 진보는, 문재인과 이정희는 머리만 다르고 몸통은 다르지 않은 샴쌍둥이인 거다.

3. 몇 십 년 동안, 특히 유신과 전두환 정권에 맞선 민주화운동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이 나라에서는 민주로 하나였다. 시민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민주변혁운동의 한 부문운동이었을 뿐이었다. 학생운동을 하던 아무개가 시민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면 시민운동인 거고, 그가 노동현장에 취업해서 노조 활동을 하거나 노동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면 노동운동인 거였다. 우리가 학습하고 활동했던 것들, 우리의 기억의 뿌리들은 언제나 하나였다. 민족민주냐, 민중민주냐, 혹은 민족민중민주냐 뭔가 다른 것 같았지만 그건 고작 활동의 순위였지 쟁취해야 할 과제로는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 활동의 순위조차도 민주의 구호 아래서는 다르지 않았다. 민주는 맨 앞의 순위였으니. 오직 그것으로만 적과 동지가 분명히 보였다. 87년 민주의 거리와 광장에서 외쳤던 민주쟁취의 구호가 25년이 지난 오늘도 이 나라에서는 민주든 진보든 노동이든 동지라며 새누리당 정권교체를 위해 하나로 외쳐지고 있다. 일반민주주의를 말한다. 정치민주화를 넘어 경제민주화를 내세운다. 새누리당의 정권을 교체해야 일반민주주의를 확보할 수 있고, 경제민주화를 쟁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야 진보의 정치세력화든 노동의 정치세력화든 가능하다고 내세운다. 그런가. 아직도 이 나라는 민주쟁취를 위해서 독재타도를 위해서 투표소에 가서 민주의 당 후보를 찍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민주의 당 후보를 당선시켜서 일반민주주의를 실현해 낼 수 있는 것이니, 어제는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을 막아야 하니 노무현을 찍어야 했고 오늘은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을 막아야 하니 문재인을 찍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그럼 내일도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서 또 민주의 당 후보를 찍어야 하는 것이겠다. 일반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물론 일반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 당연히 민주의 열렬한 수호자로서 민주정부를 지켜내야 하는 것이고. 그러니 집권하더라도 새누리당의 흔들기로부터 지켜 줘야 하니 괜한 트집잡히지 않게 노동운동이든 시민운동이든 조심해 줘야 하는 것이고. 그러면 되는가. 그래주면 다 되는가. 그럼 새누리당은 지금 통합진보당 수준으로 쪼그라들고 이제 새누리당 자리를 진보의 당, 노동의 당이 차지해서 민주의 당과 맞장 뜨는 세상이 오게 되는가. 일반민주주의가 되면 그런 날이 되는 건가. 사실 일반민주주의, 이런 말 문재인은 말하지 않는다. 문재인에게 투표할 진보든 노동이든 민주진보세력이 말하고 있을 뿐이다. 민주당 정권에서 정치민주화했으니 새누리당 정권에서 일부 훼손된 것 바로 잡고 이제 경제민주화하겠다고 문재인은 말한다. 경제민주화, 이건 또 무슨 민주의 구호란 말인가. 정치민주화를 위해서 수 십 년 민주의 당을 지지하던 우리는 이제 경제민주화를 위해서 다시 몇 십 년을 민주의 당을 지지하라는 말이다. 진보는 모르겠다. 이정희는 모르겠다. 그러나 노동이면 나는 한 마디 해야겠다. 도대체 왜 민주가 그들 민주의 당의 것이어야 하는지, 그들의 구호여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언제까지 민주로 그들과 하나여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적이 돼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꿈꾸는 노동자세상이 자본과의 공존하는 세상일지 자본을 폐지한 노동독점의 세상일지 알 수 없지만 노동자세상을 향해서 나아가겠다면, 노동운동은 무엇이든 그러니 민주주의를 자신이 쟁취할 과제로 내세워야만 한다. 일반민주주의든 경제민주화든 더 나아가 노동자의 민주주의든 노동운동이 제 손으로 쟁취하고서야 그것은 노동자의 것이 될 수 있다. 그걸 제 손으로 쟁취하겠다고 하고서야 노동운동은 정치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노동운동은 도대체 너희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된 게 없다고 내가 해 내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그러고서야, 노동의 독립선언이 있고서야 전략적 연대든 전술적 통합이든 민주를 함께 하는 것이 노동의 배반이 아닐 수 있다. 노동운동이 단지 민주의 샴쌍둥이여서는 노동도 없고 노동자세상도 없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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