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우람 기자

배삼영(51·사진) 사무연대노조 농협중앙회지부장은 세 번의 해고를 경험했다. 농협중앙회는 99년과 2007년, 그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그때마다 배 지부장은 투쟁했고, 이후 복직했다. 하지만 최근 그가 처한 상황은 예년과는 달라 보인다. 지난 2010년 7월 세 번째 해고 이후 2년 이상 투쟁했지만 사측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그는 지난 달 30일 오전 서울 영등포동 자택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비록 당장의 성과가 없을 지라도 나 하나가 비정규직 목소리를 대표한다는 사명감으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전락 후 노조 필요성 절감

배 지부장은 지난 84년 운전 기능직으로 농협중앙회에 입사했다. 당시만 해도 업무 형태에 따라 고용구조가 세분화돼 있지 않았다.

그는 15년 동안 농협중앙회 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아내를 만났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행복에 부풀어 있을 무렵 회사는 99년 외환위기를 이유로 배 지부장을 해고했다.

“농협뿐 아니라, 금융권 전반에서 구조조정 회오리가 몰아치던 때였죠. 화가 나는 것은 회사가 해고한 직원들의 98%가 저와 같은 기능직이었습니다.”

복직투쟁을 거쳐 그는 회사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신분이 달라졌다. 과거와 하는 일은 같았지만 그는 비정규직이었다. 막상 비정규직으로 일하다보니 근무 환경은 물론 주변의 눈빛부터 달라졌다.

“2000년 이후 하루아침에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는 노동자가 얼마나 많았는줄 아십니까. 농협만 해도 비정규직이 1만명을 훌쩍 넘었던 때도 있습니다. 회사는 이들의 단물을 빨아 먹으려 하고, 정규직 노조는 이를 외면하고…. 아무런 경험도 관심도 없던 제가 노조 설립에 목숨을 걸게 된 이유입니다.”

"사측의 계략에 조합원들 대거 노조 탈퇴"

배 지부장은 노조위원장의 경험이 있던 지인의 도움을 얻어 지난 2001년 비정규직들로 이뤄진 노조(농협중앙회지부)를 결성했다. 그는 조직 간부로 일하며 비정규직들의 조합가입을 유도했다. 그가 지부장을 맡았던 2006년 당시에는 조합원 규모가 3천명에 달하는 대형 조직으로 성장했다. 당시에는 유래가 드물었던 비정규직 관련 임금 및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전임자·사무실 등을 확보했다. 이러한 흐름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7년 6월 농협중앙회가 기간제법 시행을 앞두고 특정 기간에 채용된 비정규직들에 한 해서만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비정규직 안에서도 몇 가지 부류가 있었는데, 사측이 460여명의 99년 이전 채용자들만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고 공표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노조 전체가 여기에 속해 있었고요. 이를 알게 된 나머지 조합원들이 '간부들이 자신들을 팔아 먹었다'고 들고 일어났습니다. 사측의 계략이 그대로 적중한 것이죠.”

배 지부장을 제외한 99년 이전 채용자 전원이 무기계약직 전환을 신청했다. 그는 기간제법 시행 이후 정확히 1년이 경과한 후 다시 해고됐다.

끈질긴 복직투쟁에 가족에게 날아든 화살

그는 해고 직후 목숨을 건 고공농성을 시도했다. 이른 새벽 기습적으로 지상 30미터 높이는 농협중앙회 본관 건물에 매달렸다. 출근하던 직원들과 방송 카메라가 농성장 밑에 모여들었고, 농성 9시간 만에 사측은 그와 재계약 했다.

하지만 회사는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 그를 다시 해고했다. 배 지부장은 "과거 경력이 문제가 된 것"이라고 했다. 이후 그는 3번째 복직을 위한 투쟁에 들어갔다.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이 가는 곳 마다 따라 다니는 '그림자 투쟁'과 집회·시위·기자회견 등을 수시로 열어 사측을 압박했다. 공교롭게도 화살은 그의 가족에게 날아 들었다. 배 지부장의 아내는 농협중앙회에서 과장급 정규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6월까지 모두 세 차례 회사 인사부장 등이 아내를 찾아갔습니다. ‘농협에서 월급 받으면서 이럴 거냐’는 식으로 말했더군요. 깡패들이 쓸 법한 위압적인 말도 했다고 하고요.”

배 지부장은 곧바로 ‘가족까지 괴롭히는 인사부장 김○○는 제 정신인가?’라는 피켓을 들었고, 사측으로부터 명예훼손죄로 고발당했다. 1심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됐지만 회사는 항소한 상태다.

사측의 완강한 태도로 인해 배 지부장의 투쟁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그 사이 지부와 사측이 맺은 단협은 해지됐고, 조합원은 20명 남짓으로 줄었다.

"정신적 물질적으로 참 힘듭니다. 비정규직 중 저 만큼 투쟁할 여력이 있는 사람도 없더라고요. 생계로 다들 바쁘니까요.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더라도 저부터 열심히 투쟁하려고요. 하나 둘 씩 침묵을 선택한다면 이 땅의 비정규직 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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