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대통령소속 지방분권촉진위원회가 고용센터가 하는 업무를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하겠다고 결정했다. 취업지원과 알선·직업지도나 실업급여 지급, 고용안정 지원, 남녀고용평등 지원사업이 위임 대상 업무에 들어갔다. 이명박 정부는 이들 업무의 지방이양을 꾸준하게 추진했다가 고용보험기금의 부담주체인 노동계와 재계의 반대에 부딪혀 사실상 중단했었다. 정권 막바지에 이양을 위임으로 바꿔 다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분권위의 고용센터 업무 위임에 대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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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에 책임 떠넘기기 … 고용센터 지원 늘리는 게 정부가 할 일” 

한지혜
청년유니온 위원장

서울청년유니온은 지난 8월부터 서울시와 사회적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예산문제나 걸리는 시간문제나 동원할 수 있는 인력 등 조건이 굉장히 열악하다고 느꼈다. 그나마 많은 예산을 갖고 있는 서울시도 이런 상황인데 다른 지자체들은 더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청년들에게는 일자리가 가장 큰 화두이고 문제다. 그런데 정부가 고용센터 업무를 위임하겠다고 하는 것은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얘기다. 지자체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모양새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고용센터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지만, 이를 지자체에 위임하면 업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효율이 더 떨어지고 시간만 더 오래 걸릴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오히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고용센터에 예산을 더 편성하고 인력을 늘려야 한다. 고용센터에 인력이 부족해 일 처리가 늘어지기도 한다. 현재도 취업 지원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나 구인공고가 난 곳에 구직자를 끼워 맞추는 방식이다. 취업지원 프로그램을 다양화해 구직자의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찾아주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종합 고용서비스 원하는 국민 기대 저버릴까 우려” 

정지원
고용노동부
고용서비스정책관

사회보험인 고용보험은 국가가 책임지는 보험제도다. 고용보험의 수입과 운영·지출은 보험을 관장하는 국가가 통합 운영하는 것이 보험사무의 기본 원리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특히 고용보험은 실업급여 지급뿐만 아니라 직업능력개발·취업알선과 같은 적극적이고 종합적인 노동시장 정책의 근간이 된다. 취업지원 프로그램과 취업알선은 고용촉진지원금 등 고용보험사업과 연계돼야 성과를 제고할 수 있다. 또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협업체계를 구축해 운영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세계 다수의 국가는 전국적 통일성과 가입자 균등처우, 사회보험의 성격 때문에 고용보험을 중앙정부가 운영한다. 우리와 동일한 행정체계를 갖춘 일본이 한때 고용서비스 업무를 지방에 위임했으나 중앙정부의 지도·감독이 어려워지면서 다시 국가사무로 환원했다. 이외에 고용서비스 업무를 지방에 위임한 나라는 세계적으로 스페인이 유일한 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스페인을 실패사례로 언급하면서 고용서비스 업무를 다시 국가로 환원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노사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고용보험료를 분담하는 주체가 바로 노사이기 때문이다. 현재 노사단체 모두가 명백히 반대하고 있음에도 고용서비스 전달체계를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수요자 중심의 행정과도 배치된다. 또 종합적이고 효율적인 고용서비스를 원하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결과를 초래할까 우려된다.

“지방분권위 무리수 … 정권말 ‘실적내기’ 의심” 

김미정
민주노총
정책기획실장

이명박 정권 때 만들어진 ‘대통령소속 지방분권촉진위원회’가 그동안 노사가 고용보험제도의 일부 사무 지방이관을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폐기된 ‘지방이양’을 ‘지방위임’으로 문구만 수정해 추진하고 있다. 이는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에 반하는 것이므로 즉각 폐기돼야 한다.

중앙정부의 기능을 지방 이관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사업이나 업무를 중심으로 추진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 지방분권위에서 추진하고 있는 의제는 국가차원의 전반적인 고용통계, 중장기 고용수급전망, 일자리 창출, 경기변동이나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른 노동시장 전망 등 전국적으로 통일성과 전문성이 필요한 중앙정부의 역할이다. 결코 각 지방별로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안인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실업보험 지출 및 고용서비스 업무를 지방에 위임한 스페인의 경우 청년실업률 급증 및 이에 따른 실업보험료 지출액이 급증하는 문제가 발생하면서 OECD가 스페인에 고용서비스를 중앙정부로 환원하도록 권고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지금처럼 경제악화에 따른 실업과 일자리 문제가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중앙정부가 수행하던 업무를 지방으로 넘겨서는 스페인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교체기 시점에 지방분권위가 무리한 추진을 하는 건 정권 말 ‘실적내기’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지방분권보다 고용정책·기금 안정성이 중요” 

류기정
한국경총
사회정책본부장

고용센터는 실업급여 지급과 직업능력개발·고용안정사업 등 고용보험정책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한다. 10년 이상 고용서비스 노하우를 쌓았다. 지방자치단체의 고용서비스 관련 전문인력과 노하우 부족을 고려한다면 실업급여와 직업훈련·취업지원 등이 상호 유기적 연결고리를 맺으면서 맞춤형 통합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또 유일하게 고용센터를 지자체가 운영하는 제주지역은 실업인정 불인정률이 0.04%로 전국 평균(0.25%)에 비해 매우 낮다. 반면 직업훈련 프로그램인 내일배움카드제 신청 대비 발급률은 98.2%로 전국 평균 65.8%에 비해 높다. 필요한 곳에 지원을 해야 하는데, 도덕적 해이가 두드러지는 것은 아닌지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재정 책임은 중앙정부가 지면서 지출만 지자체가 담당한다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할 것이다. 비효율성의 증가뿐만 아니라 고용정책에 대한 노사 신뢰를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

고용센터 지자체 위임은 단순하게 지방분권이나 국가의 균형발전 측면에서만 고려할 문제가 아니다. 재정 건전성과 관리·감독, 실업급여와 취업알선·직업훈련 등 고용-복지 연계와 중앙-지자체 간 유기적 소통 등 여러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특히 지방분권촉진위원회는 실업급여 지출의 절반을 부담하는 경영계의 의견을 사전에 수렴하지 않고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 지방분권위 결정에 따른 재정부담은 결국 노사의 몫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결국 고용정책사업의 중요성, 보험재정의 안정성, 보험기금의 부담주체인 노사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지방분권위의 의결은 즉각 철회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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