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울산저널
편집국장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따뜻한 카리스마로 기업을 이끌고 있다. 생명보험업계 빅3의 한 축을 이끌면서도 자주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직원들 앞에서 통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거나 난타공연을 직접 선보이기도 했다.

그보다 더 특이한 이력은 2000년 교보그룹 회장 취임 전까지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과장으로 날리던 의사였다. 신용호 선대 회장의 장남으로 보험업에 뛰어들었다.

대산문화재단이 다음달이면 출범 20주년을 맞는다. ‘대산(大山)’은 선친 신용호 전 회장의 호다. 교보는 ‘국민교육 진흥과 민족자본 형성’이란 상당히 내공 있는 가치를 내세우며 창립했다.

신창재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은 지난 27일 서울 광화문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재단이 지난 20년간 문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앞으로는 청소년 문학창작 지원을 넘어 청소년 육성사업에 힘쓰고자 한다”고 말했다.(중앙일보 11월28일자 30면)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지만 늘 공부하는 기업가였던 고 신용호 전 회장이 만든 재단답게 가난한 문인들에게 파격적인 상금을 내걸고 대산문학상을 매년 시상해 왔다.

선대 회장을 이어받은 신창재 회장도 재임 초기 임원들과 다소 마찰을 빚었지만 이내 안정적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이런 신창재 회장이 2007년 12월6일 중국 북경대에서 특강을 했다. 강연 제목은 ‘변화혁신과 보험업의 미래’였다. 이날 강연은 북경대 중국보험 및 사회보장연구센터장 쑨치샹 교수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북경대 보험학과 정기수업의 특별강사로 초빙된 신 회장은 이날 보험학 교수와 전공학생 250여명에게 약 90여분 동안 최근의 보험시장 환경과 보험산업의 미래, 교보생명의 변화혁신에 대해 설명했다.

신 회장의 이날 강연을 다룬 한 신문의 기사 제목은 “(민간) 보험사가 (공적) 사회보장제도(를) 대체한다”(매일경제신문 2007년 12월7일자 37면)였다. 신 회장은 이날 특강에서 “국가나 공공부문이 제공하던 공공서비스를 민간기업이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보험업계가 매출 규모가 크고 대기업이 많아 지속적 성장이 이뤄지기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인재들을 계속 필요로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신 회장이 강연하던 2007년 12월은 노무현 정부 말기로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의료민영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보건의료단체와 강하게 부딪쳤다. 그 선두 주자에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있었다. 따라서 나라 밖에서 “미래엔 국가나 공공부문이 제공하던 공공서비스를 민간기업이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보험업계 빅3 회사 대표의 발언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신 회장에겐 환희의 미래겠지만 서민들에겐 소름끼치는 미래다.

그렇다고 신 회장이 한국의 다른 재벌기업에 비해 특별히 더 극악무도한 기업가도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한국 기업가의 대표단수일 뿐이다.

대산문화재단은 지난달 말 올해 제20회 대산문학상 수상작과 작가들을 소개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그 간단한 보도자료에 “시와 소설 각 5천만원, 평론과 번역 각 3천만원으로 총 1억6천만원을 시상한다”고 적었다. 그악스럽다.

신 회장의 북경대 강연 이후 5년이 지난 오늘, 한미FTA를 추진했던 세력과 완성했던 세력, 의료민영화를 추진했던 세력과 완성했던 세력이 맞붙는 대통령 선거일이 고작 20일밖에 남지 않았다. 절망스럽다.

울산저널 편집국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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