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
철폐연대
상임활동가

‘함께 살자! 희망행진단’이 길을 걷기 시작한다. 겨울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하는데 걷기를 한다니 걱정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이미 높이 30미터 이상 고공 송전탑에서 찬바람과 비를 맞으며 새우잠을 자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쌍용자동차 해고자들도 있다. 찬바람 속에서 걷는 것도 사치인 듯하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더 고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모으기 위해 걷는다. 그리고 노동에 지치고 미래가 없어서 힘든데도 더 이상 희망이 없어서 인내하고 침묵하는 이들에게 ‘싸우는 자들만이 희망’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걷는다. 그래서 우리의 발걸음은 가볍고 바람도 차지 않다.

현재 싸우고 있는 17개의 노조가 모여서 함께 만든 ‘정리해고·비정규직·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향한 공동투쟁단’,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위해서 싸우는 농성단, 그리고 용산참사 진상규명을 외치는 이들, 제주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강정주민들, 핵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 함께하는 ‘함께 살자, 농성단’, 또한 장애인등급제 폐지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서 농성하고 있는 장애인들이 함께 모였다. 서울과 수도권 귀퉁이를 조그맣게 ‘농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차지하고 철거의 위협을 견디며,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서 싸우는 이들이, 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외치기 위해서 모였다. 이름하여 ‘함께 살자! 희망행진단’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두가 모여 목소리와 발걸음을 모아 희망행진을 한다.

지난 16일 광화문에서 출발해 쌍용자동차 분향소, 그리고 노조탄압에 맞서 투쟁 중인 골든브릿지투자증권지부 농성장을 거쳐 새누리당사까지 행진을 했다. 비도 오고 날도 추웠지만 긴 길을 걷는 세 시간 내내 함께하는 마음만은 즐거웠다. 그리고 23일 무려 1천800일을 거리에서 보내야 했던 재능교육 노동자들의 싸움을 응원하기 위해서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에서부터 을지로를 거쳐 시청 앞 농성장까지 행진을 했다. 싸우는 우리만이 희망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즐겁게, 더욱 힘 있게 행진을 하고자 했다. 그리고 28일 평택역 앞에서 만나 송전탑을 지키고 있는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을 만나러 가는 희망행진을 했다.

‘함께 산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기업과 정부는 우리에게 함께 살지 말고 서로 경쟁하라고 한다. 다른 이들을 짓밟고 살아남으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정리해고를 자행하면서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눠 노동자들이 서로 반목하도록 만들었다. 노동자들을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갈라놓고 차별하며 단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어디 노동자들뿐이랴. 해군기지를 만들면서 마을 주민들을 찬성측과 반대측으로 갈라 놓았다. 우리가 함께 살아 가야 할 환경과 발전을 대립시켜서 우리에게 환경을 짓밟으라고 명령한다. 장애인도 등급을 나눠서 활동보조 서비스를 지급하겠다고 하고 모두에게 당연한 권리를 시혜라도 주는 듯 억지를 부린다. 모두를 갈라 놓고 경쟁을 시키고 다툼을 만들고 있다.

이렇게 갈라지는 세상은 자본의 세상이다. 노동자들이 단결하지 못할 때,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뭉치지 못할 때, 모든 이들의 권리를 찾는 데에 함께하지 못할 때, 자본·정부·언론·법원·경찰은 한편이 돼 싸우는 이들을 짓밟는다. 다른 이들을 침묵하게 만들고 공포와 두려움으로 사람들을 지배한다. 그 위에서 그들은 엄청난 부를 쌓아올리고, 권력은 영원히 그들 사이에서만 분배된다. 이런 사회 속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침묵’이 아니라 ‘함께 살기’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함께 살기’를 택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함께 살자고 외치다가 23명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내하청이 정규직이 돼야 한다고 외쳤던 현대자동차 비정규 노동자들은 지금 송전탑 위에서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모든’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고자 했던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1천800일을 거리에서 버텨야 했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야 하고, 핵 없는 세상이 모두를 위한 세상이라고 믿는 강정과 밀양의 주민들은 여전히 매일 갇히고 맞으면서 공사를 막고 있다.

그러나 이제 이들도 함께 싸우기로 했다. 함께 살기 위해서 함께 싸우고, 함께 살기 위해서 마음을 모으고, 함께 살기 위해서 더 많은 이들에게 ‘함께 사는 것만이 인간답게 사는 길’임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함께 살자 희망행진단’이 됐다. 네 번째 희망행진단은 다음달 5일 강남에서 만난다. 그 길에 더 많은 ‘우리’들이 함께했으면 좋겠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