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
공인노무사
(전국철도노조
법규부장)

현재 차별시정 제도가 본래 도입취지와 달리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고용불안에 늘상 노출돼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계약해지의 위험을 무릅쓰고 차별시정을 신청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당 비정규 노동자가 속한 노동조합 혹은 상급단체에 시정신청권을 부여하거나, 대표구제신청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차별시정 제도 시행 초반에 노조가 적극 개입해 제기된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는 한국철도공사 비정규 노동자들이 제기한 성과상여금 차별시정 신청사건이다. 2007년 당시 철도에는 3천여명의 비정규직(철도공사 직접고용)이 있었다. 2007년 7월1일 기간제법이 시행됐는데도 철도공사는 성과상여금을 비정규 노동자들에게는 지급하지 않았다. 철도공사 비정규직 1천400여명은 차별시정을 신청했고, 중앙노동위원회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고등법원에서 재심판정이 취소되기도 했지만 결국 대법원에서 차별적 처우라는 중노위의 재심판정이 확정됐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올해 8월20일께 나왔으니까 시정신청부터 확정판결까지 무려 5년이 걸렸다. 최종 판결 소식에 당시 신청했던 비정규직 조합원들로부터 지급시기에 관한 문의가 쇄도했다. 당연히 한 달 이내에 지급을 완료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철도공사는 노조의 지급요청에 대해 내부검토 중이라고 하면서 미루기만 했다.

차별시정 신청사건은 1차와 2차에 걸쳐 진행됐는데, 1차 신청자들(30명)은 보조참가자로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2차 신청은 신청자들이 1천350명으로 너무 많아 보조참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철도공사는 보조참가한 신청인들에게만 성과상여금을 지급했다. 노조는 나머지 신청인들에 대한 지급을 재촉했다. 철도공사는 "반드시 지급할 의무는 없다는 로펌의 의견이 있어 내부검토 중"이라는 답변과 함께 대법원 판결문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판결문의 요지는 부당해고시 임금상당액을 구하는 사건에서 행정소송에서의 보조참가는 소멸시효 중단사유에 해당한다는 내용이었다. 즉 보조참가를 하지 아니한 1천350명의 성과상여금이라는 임금채권은 소멸시효가 완료됐기 때문에 반드시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렇게 버티던 철도공사는 결국 시혜를 베푸듯이 성과상여금을 지급하기는 했다.

하지만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노동위원회 판정은 공법상 의무를 부담할 뿐 사법상 효력은 없다. 그러나 소위 법과 원칙을 준수하면서 사회에 모범적 사용자가 돼야 할 공공기관에서 노동위의 판정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철도공사는 이명박 정권에서 공공기관 중 선두에서 ‘노사관계 선진화’에 앞장서 왔다. 초임삭감과 연봉제 도입, 5천명의 정원감축, 단체협약 개악, 노동조합 탄압…. 정말 이명박 정권이 바라는 모범적인 사용자로서의 모습을 유감 없이 보여 줬다. 그러한 사용자가 대법원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그 시효가 완성됐다는 법원의 판결을 내보이며 판정이행을 미뤘다. 지급의무도 없는 성과상여금에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꼼꼼하고도 모범적인 공공기관 사용자의 모습으로 봐 줘야 할까. 아니면 대법원 판결도 무시하고 이행하지 않는 ‘문제아’로 봐야 할까.

노사관계에 있어 진정 모범적인 사용자는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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