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복지·경제민주화, 그리고 또 뭐더라. 비정규직 차별철폐·일자리 문제 해결 등. 지금 이 나라 2012 대권시리즈,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겠다고 대선후보들이 내세우고 있는 것들이다.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치고 있다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도, 그리고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진보의 간판을 달고 있는 후보들까지도 그렇다. 지난 23일 출마를 포기한 무소속의 안철수도 그랬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달라도 그 색깔은 똑같지 않아도 다투어 말한다.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위하겠다고, 자신만이 현실성 있게 해낼 수 있고 그런 경험과 조직이 있다고, 그런 진정성을 갖고 있다고, ‘위하여’를 외쳐대고 있다. 복지시설을 찾아가고 기자회견하고 비정규직 사업장과 투쟁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 철탑과 쌍용차 대한문 농성장이 아니라도 하다못해 전태일 다리라도 방문하고 경제단체 주최의 초청강연을 하면서 기자들 끌고 다니며 멋진 그림을 찍으면서 국민을 위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믿어 달라, 뽑아 달라고 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믿는다. 그가 하겠다는 거, 그들이 할 수 있다는 거, 대통령이 되면 추진할 거라는 거, 그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가 새누리당의 후보라도 믿는다. 뭐 추진하려다 그때 경제사정이 어떻다, 재정이 어떻다 이러면서 어쩔 수 없다고 그때 가서 당장은 어렵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걸 추진할 진정성이 지금 그들의 가슴에 있다는 것은 나는 누가 뭐래도 믿는다. 그러니 “너네 후보가 지금 하는 말은 거짓이다” 뭐 이런 말 나는 믿지 않는다. 아무리 그들의 지지자들이 그렇게 말을 해도, 언론이 편을 갈라 뭐라 해도 그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비난해대도 나는 믿지 않는다. 분명히 지금 그는 대통령이 된다면 그걸 하겠다고 진정으로 말하면서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난 그들의 말이 거짓이라고 헛된 공약이라고 비난할 생각이 없다. 그들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그렇게 하겠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다.

2. 그런데 나는 의문을 갖고 있다. 심각하게. 왜 그들은 국민을 위해서 그들이 해 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게 권력을 달라. 그러면 나는 당신을 위해 권력을 행사하겠다.” 그러면서 그들이 행사할 목록을 제시하며 표를 달라 하고 있다. 이건 뭔가. 이걸 선거유세용 말투로 표현해 본다면 이렇다. “내게 당신을 지배할 권력을 주세요. 당신의 지배자로서 당신을 위해서 당신을 잘 다스려 드리겠습니다.” 그들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그들이 이것을 해 준다 저것을 해 준다 말하면서 그들의 권력은 확대·재생산돼 왔다. 그들이 이것도 해 주고 저것도 해 주면서 그의 권력은 인민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해 왔다.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그래왔다. 인간의 역사가 그래왔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왜 그들은 국민을 위해서 그들이 해 주겠다고 외치고 있는 것일까. 뭐 이런 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하며 모두 모여라 하고 있는 걸까. 민주의 당이든 진보의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서. 오히려 진보여서 더욱 강한 권력을 말한다. 세상을 더 크게 바꿔 내야 한다고 더 큰 권력이 있어야 한다며 그렇다고 말한다. 이렇게 “인민을 위하여”라는 말은 권력이 됐다. 보다 더 인민을 위한다는 권력의 행동은 보다 강한 권력을 만들어 왔다. 이 세상에서는 기존 권력의 질서를 지켜야 한다고 보수는 권력을 가져야 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한다고 진보는 권력을 가져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권력을 노래해 왔다. 적어도 인간의 역사는 권력과 인민의 관계에서 본다면 권력의 탄생과 확대·강화의 역사였다. 다만 선거를 통한 자발적인 권력에의 복종질서냐 아니냐만 달라졌다. 공화국은 단지 선거를 통해서 권력이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다. 어떠한 공화국이라도, 즉 민주공화국이든 인민공화국이든 그랬다. 어디서든 그들은 인민을 위해서 그들이 해 줘야 한다고 말해 왔다. 대통령이든 위원장이든 어떤 자리에서든 권력은 그랬다. 민주주의를 외쳐대면서 그들은 의문 없이 심각하게 공화국의 수호자로서 그래왔다. 그러니 나는 지금 의문을 갖고 있다. 심각하게. 왜 민주공화국에서 그들이 인민을 위해서 해 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3. 민주주의. 권력이 말하니까 기껏해야 “인민을 위하여”가 돼 버린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대선후보들이 외쳐대니까 인민을 위해서 권력을 차지하겠다는 말이 돼 버린다. 대통령이 말하니까 인민을 위해서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말로 돼 버린다. 민주주의는 어찌된 일인지 권력의 재생산과 권력의 행사를 부르는 언어가 되고 인민이 권력에 복종하는 질서가 돼 버리고 만다. 이렇게 민주주의가 권력의 기술이 되자 이제 민주주의는 권력의 질서가 된다. 이렇게 민주주의는 인민의 질서가 아니게 된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민주주의가 이상해졌다. 민주주의가 권력의 언어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결코 권력의 언어여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정치의 근본문제에 관한 대답이다. 인민과 권력의 관계를 규정짓는 것이다. 인민이 주인이 되느냐, 즉 인민이 스스로 지배하느냐 아니면 권력이 인민을 지배하느냐의 문제에 관해 인민이 스스로 주인이 돼야 한다고 하는 인민의 정치선언이 민주주의인 것이다. 인민을 위하여든 뭐든 권력의 언어여서는 안되는, 인민의 권력에 대한 자주선언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 인민을 위하는 권력의 언어가 아니라 인민이 주인이 되는 인민의 언어여야 한다.

4. 어디 대권만이겠는가. 그들뿐이겠는가. 인민을 복종시키는 권력뿐이겠는가. 노동자조차도, 노동자로 조직된 노동조합조차도 그렇다. 노동자와 권력의 관계는 조금도 다를 게 없다. 노동자정당조차도 그렇다. 노동자조직이 아무리 규모가 작아도 아무리 권력이 보잘것없어도 거기서 민주주의는 권력의 언어이고, 노동자의 언어가 아니다. 그저 ‘위하여’ 타령으로 요란한 선거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뿐이다. 그러니 노동자라도 지금 이 세상에서는 권력의 비판을 노래하지 못한다. 그저 노동의 권력만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노동자세상도 노동의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이라 하고, 대통령이든 위원장이든 노동자대표가 차지하고서 그 권력을 행사한다는 세상일 뿐이다. 어느 것도 권력의 질서라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인민과 권력의 관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정치의 근본문제로 본다면 여전히 세상은 조금도 변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어찌된 일인지 노동자조직에서조차 당연하게 노동자는 권력의 노래를 부르고 있을 뿐이다. 복지를 말하면 보편복지를 요구하고, 경제민주화를 말하면 비정규직 등 노동자를 위한 경제민주화를 요구한다.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말하면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고, 일자리를 말하면 좋은 일자리를 요구하는 것으로 이 나라 노동자는, 노동조합이든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진보의 당이든 그것이 대선에서 노동의 노래인 거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게 권력의 노래를 하고 있다.

5. ‘위하여’ 타령으로 세워진 세상은 보수든 민주든 진보든 뭐라 해도 “인민을 위하여”를 말하고 그걸 실현하겠다고 한다. 다만 현실적인 고려에서 어느 정도까지 실현해 내겠다고 하는 것만 다를 뿐이다. 그러니 ‘위하여’ 타령으로 세워진 권력의 질서에서 그 권력을 누가 차지하더라도 그 권력의 행사방법은 다를 게 없다. 심지어 노동의 대표가 그 권력을 차지하고서 행사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거기서는 인민을 복종시키는 권력의 재생산이 세상의 질서로 작동한다. 권력의 주인만 바뀔 뿐 권력이 세상의 주인이란 것은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인민은 세상의 주인이 아니고 권력에 복종하는 세상은 계속될 뿐이다. 그런데 지금 대선이라고 민주주의라고 말해지고 있다. 위하여를 말하면서 인민이 복종할 권력을 선택하는데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정치의 기본문제, 즉 인민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대답, 민주주의에 관해서 진정으로 말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도 말하고 있지 않다. 보수든 민주든 진보든 아무도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니 이제 인민이, 노동자가 그들에게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도대체 무슨 권력 하나라도 인민이 행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냐. 무슨 정책 하나라도 입안하고 무슨 정책 하나라도 집행하고 무슨 분쟁·재판 하나라도 권력이 아니라 인민이 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냐고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가장 낮은 단위에서라도. 모두가 아니라면 추첨을 해서라도. 그러나 아무도 묻지 않고 있다. 노동자조차도. 그러니 2012년 대선에서 민주주의는 권력의 노래일 뿐 인민의 노래는 아니다. 그저 권력의 노래에 춤춰서는, 그들이 해 주겠다는 목록만 쳐다봐서는 이번 대선은 권력의 잔치, 그들의 잔치에 그칠 뿐이다. 주인되는 세상을 꿈꾼다면 대선에서라도 노동자는 민주주의를 봐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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