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매기의 꿈' 5주년 맞이 단골의 밤이 열린 지난 20일 저녁, 퓨전국악그룹 'THE 律(더 율)'이 가게 한편에 임시로 마련한 무대에서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정기훈 기자

음식이 유별나게 맛있는 것도 아니다. 화학조미료를 전혀 안 쓰기 때문이다. 노는 물(?)이 좋은 것도 아니다. 40대 중반의 검은 옷을 즐겨 입는 시커먼 남성들이 주요 고객이다. 하지만 단골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사람 맛이 있는 곳"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20일 늦은 저녁. 인천 남동구 구월동의 한 술집에서 시큼한 막걸리 냄새와 사람들의 박장대소가 작은 문틈을 비집고 골목어귀로 새어 나왔다. '갈매기의 꿈'이라는 간판을 내건 작은 막걸리집에서는 5살 맞이 생일찬치가 한창이었다. 동네 어디서나 볼수 있는 작은 막걸리집이지만 단골이 붙여 준 별명은 차고 넘친다. '인천을 움직이는 파워 인맥이 모이는 명소'라거나 문화살롱·힐링주막·구월동 사랑방·큰형집….

"사람 맛 나는 갈매기의 꿈"

갈매기의 꿈은 매년 11월20일마다 '단골의 밤'이라는 제목의 생일잔치를 한다. 모든 안주와 술은 공짜다. 대신 성의껏 성금을 낸다. 단골들과 정을 나누고, 십시일반 모은 성금으로 인천지역 장기투쟁 사업장에 힘을 보탠다.

이날 저녁에도 생일을 맞아 단골 예술가들의 재능기부 잔치가 열렸다. 성악가부터 소리꾼까지 '인천에서 잘 논다' 하는 예술인들이 모여 성금을 내고 재능을 나눴다. 이날 모인 성금은 콜트콜텍 노동자들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갈매기의 꿈 운영자 이종우(51)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해고사태가 해결되지 않아 내년에는 꼭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콜트콜텍에 기금을 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평생 동지인 윤지선(51)씨와 함께 갈매기의 꿈을 운영한다. 인천해고노동자협회에서 일하다 눈이 맞았다고 했다. 윤씨는 주로 음식을 담당한다. 국산품과 제철음식 천연조미료만 사용한다. 단골들이 "음식맛이 솔직하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5년 단골인 오혁재(46)씨는 "갈매기의 꿈에서는 아무런 양념도 조미료도 없는 생무가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 단골의 밤 술과 안주값은 무료다. 성의껏 성금을 내는 것으로 '퉁친다'. 모인 돈으로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겨울나기를 지원한다. 정기훈 기자


"말할수록 더 맛있는 막걸리"

대신 윤지선씨가 조미료 역할을 한다. 각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사회운동·노동운동·교육문제·정치문제 등 온갖 인생상담을 한다. 톡 쏘는 독설은 그만의 매력이다. 단골들 호주머니에 시루떡을 쑤셔 넣으며 "마누라 꼭 챙겨 주라"는 안부도 잊지 않는다. 유치원 교사인 김아무개(52)씨는 갈매기의 꿈에 대해 "고민을 잔뜩 안고 울면서 왔다가 희망을 품고 웃으면서 나가게 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쌀과 누룩으로 빚은 막걸리는 배가 불러 빨리 먹을 수가 없다. 소화시킬 동안 대화를 하며 적당히 시간을 보내야 술기운이 올라온다. 이종우씨는 "막걸리는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있고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할수록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술"이라며 "사람의 정과 가장 비슷한 온도를 가진 막걸리 정신을 나누고 싶어 주막을 열었다"고 말했다.

밤이 깊어지자 막걸리 냄새는 더욱 진해졌다. 가게는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1센치미터도 안 됐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허물어졌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도 서로 안고 어깨춤을 췄다. 오혁재씨는 "단골의 날 덕분에 콜트콜텍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고 이웃의 안부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며 "20대의 젊은 친구들도 방문해 사람들이 나누는 정과 토론의 문화에 대해 접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운영자 이씨의 바람은 자신을 대신해 가게를 운영할 젊은 청년을 찾는 것이다. 이씨는 “요즘 20대와 30대 젊은 친구들을 볼 때면 무한경쟁에 치여 외롭고 안쓰러울 때가 적지 않다”며 “저를 이어 갈매기의 꿈을 운영할 젊은 새 주인을 찾아 청년들이 외롭지 않게 함께 사는 정을 나누고 배우는 주막으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