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투자증권노조

증권업계가 불황이다. 유수 증권사들조차 경쟁적으로 지점을 폐쇄하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 비해 영업실적이 반토막 났다는 얘기도 나온다. 구조조정 얘기가 파다한데도 노동자들은 숨을 죽이고 있다. 어디에서 칼날이 날아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업계에 드리운 먹구름이 짙다. 한동안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3개월여의 천막농성을 통해 조합원들의 숙원을 해결하고, 고용과 복지 안정을 이끌어 낸 노조가 있어 화제다. 사무금융연맹 우리투자증권노조(위원장 이재진)는 이달 초 사측과 올해 임금·단체협약 교섭을 타결하고, 성과급 제도 개선과 IT 외주화 금지에 합의했다.

이재진(44·사진) 위원장은 지난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우리투자증권빌딩 3층 노조 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어려운 업황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의 일치단결로 성과급제 개선 등 중요한 합의에 이르렀다”며 “전국 단위 결의대회 등 조합원들의 연대와 참여가 만든 성과라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고 말했다.

노조는 올해 7월 중순 우리투자증권 본점 로비에 철야농성장을 설치했다. 그즈음 여러 동종업체로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지점폐쇄 등의 비보가 날아들었다. 앞서 노조는 4월 사측과 2년치 임금 11% 인상에 합의했다. 이어 천막농성을 하면서 단체교섭에 나섰다. 이 위원장은 “불황에 따른 구조조정 위험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고, 전 조합원들의 오랜 바람이었던 성과급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에 따르면 우리투자증권은 매해 총 영업이익에서 비용을 뺀 경상이익을 기준으로 성과급을 책정한다. 성과급은 사업부문과 본·지점 단위로 별도로 적용돼 왔다. 이러한 구조가 소속 조직별로 차별과 박탈감을 야기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위원장은 "회사는 수익 창출을 위한 비용의 80% 정도가 영업현장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이를 감안해 성과를 배분해 왔다"며 "이로 인해 회사에 직접 이익을 가져다주는 영업점이 성과 책정에서 소외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노조는 사측에 수익·비용 배분기준 재조정을 통해 영업점 조합원에 대한 차별을 바로잡아 달라고 요청했다. 10여년에 걸친 일관된 요구였다. 하지만 회사는 "초과이익 배분은 경영권"이라며 논의를 거부했다.

7차례 실무교섭이 진행됐지만 진전이 없었다. 노조는 지난달 중순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노조는 지역별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다음달 12일 열리는 주주총회를 앞두고 대응 투쟁계획까지 짰다. 이 위원장은 “부산·대구·호남 등 지역본부별 투쟁 결의대회에 90%가 넘는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등 호응이 뜨거웠다”며 “주총에 맞춰 경고파업에 돌입하고, 상근감사 선임 저지를 포함해 의결권 행사를 통한 투쟁을 준비해 나갔다”고 말했다.

우리투자증권은 지난해 6천300억원을 증자했는데, 이 중 20%의 주식을 직원들에게 배분했다.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의 증권사에게만 투자은행(IB) 업무를 허용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통합법) 개정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지역본부별 결의대회가 조합원들의 호응 속에 치러지면서 파업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러자 사측이 노조에 대화를 요청해 왔다. 결국 사측이 수익·비용 등의 배분기준 재조정을 통한 성과급제 개선을 약속하면서 교섭이 타결됐다.

노사는 이와 함께 △PC-OFF제 시행 △생리휴가 75% 이상 소진 의무화 △본·지점 승진인사 개별화 △근속 10년 이상 미혼자 주택자금 대출 신설 △패밀리데이(오후 5시 퇴근) 월 2회로 확대 △IT 아웃소싱 금지 등에 합의했다.

이 위원장은 "그동안 승진인사가 본점 근무자 위주로 이뤄져 지점 조합원들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다"며 "이번 합의로 본·지점별로 각각 승진인사가 이뤄지는 만큼 조합원들이 화합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 임단협은 조합원들의 반응과 업황 등을 감안했을 때 비교적 만족스러운 결과"라고 평했다.

그럼에도 증권업계가 여전히 터널 속을 헤매고 있기 때문에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는 계획이다.

"증권업계의 불황은 한동안 지속될 겁니다. 우리나라 증권업계가 위탁수수료 중심으로 운영되는 구조적인 한계 때문이죠. 임단협 공간에서 구조조정 금지를 사측에게 확인받았지만, 상황은 어떻게 흐를지 모릅니다. 지속적인 견제와 감시를 통해, 최소한 조합원들의 생존권을 담보할 수 있는 노조를 만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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