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양보의 달인’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지만, 적어도 안철수의 양보는 아름답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그의 진심이 행동으로 나타났기에 그는 언행이 일치된 정치인의 모습을 보였다. 민주통합당을 변화시키고 구 정치에 일침을 놓으며 새 정치를 원하는 국민들을 정치적 실체로 바꿔 놓은 것도 커다란 공적이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무엇들이 아직 남아 있다. 그는 지지자들에게 문재인 후보가 단일후보라고 밝히고 지지자들에게 문 후보를 성원해 줄 것을 호소했다. 그리고 자신은 백의종군하겠다고 눈물을 뿌렸다. 여전히 그의 애매한 어법과 좌고우면하는 특징이 보인다.

문 후보는 안 후보로 단일화될 경우 정권교체를 성사시키기 위해 민주통합당이라는 조직적 차원에서 대선을 치르되 자신이 정부에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러나 안 후보는 ‘단일후보’ 문재인에 대한 ‘성원’을 호소하고 ‘백의종군’하겠다고 했다.

후보 사퇴 다음날인 24일 ‘백의종군’이 인터넷 검색어 1위로 떠올랐다. “아무런 직책이 없이 일개 평민 혹은 졸병으로 군대를 따라 전장에 나감”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몰라서였겠는가. 안철수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들’은 안철수가 말하는 ‘백의종군’의 의미를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문 후보가 밝힌 ‘조직적 지원’은 아닌 게 분명하다. 선대위원장 같은 공식 직함을 갖지 않고 유권자 개인의 자격으로 지지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판세를 좌우할 만한 세력을 가진 사람이 사퇴의 변으로 조직적 지원이 아니라 유권자 개인의 자격으로 지지하겠다는 것이 과연 단일화를 위한 양보가 될 수 있는가. 게다가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한 것이 아니라 ‘성원’을 호소했다. “문재인 후보에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 정권교체를 이뤄 주십시오”와 “문재인 후보께 성원을 보내 주십시오”는 작지 않은 뉘앙스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비록 새 정치의 꿈은 잠시 미뤄지겠지만 저 안철수는 진심으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갈망합니다”라는 말로 사퇴의 변을 이어 갔다. 그가 보기에 문 후보로 이뤄지는 정치는 역시 ‘새 정치’가 아니다. 따라서 그는 ‘눈물을 삼키며 후보를 사퇴’한 것이다. 비록 민주통합당으로 정권교체를 이루는 데 성원을 보내겠지만, 자신으로 대표되는 새 정치를 이루지는 못하겠기에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안철수가 말하는 ‘새 정치’는 과연 무엇인가. 언제나 "잘 아시리라 생각한다"는 표현으로 요구가 제시된다. 과연 국민들은 그 ‘새 정치’를 알고 있는가. 안 후보는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새 정치라고 한 적이 있다. 모르면 국민들에게 물어서 할 것이라고 우회한다. 안철수의 국민들은 ‘백의종군’의 의미를 해석해야 하는데, 안철수는 국민의 뜻을 상식으로 보는 듯하다.

안철수의 ‘국민들’은 누구인가. 그의 어법으로 볼 때, 구 정치로 인해 핍박받고 소외된 국민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특징은 자신들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래가 부정적이고 암담한 것이 아니라 미래가 베일에 싸여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변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과 같은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을 느낀다. 사회경제적으로 차별받거나 억압받는다는 구체적 박탈 상태에 처한 경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처럼 사회경제적 억압에 직접 노출된 사람들에게 과연 안철수식 ‘새 정치’가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실제 안 후보 진영의 마지막 공약집에서는 복지국가도 노동 문제도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따져 물으면 아마도, 당선되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국민들에게 물어서 결정하리라고 답변할 것이다.

안철수의 ‘국민들’은 여전히 정치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서 특히 안철수처럼 성공한 엘리트 출신의 새 정치인에게 기대를 건다. 은연중에 자신들의 상을 안철수에 대입하기 때문이다. 구 정치로부터 억압되고 소외되는 자신들의 상태에 대한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이 해석이 틀리기를 바란다. 안철수의 ‘국민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정체성을 올바로 성찰하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면, 내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안 후보가 민주통합당의 구 정치를 개혁할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고, 그의 백의종군이 노동과 복지를 위한 정권교체가 될 수 있도록 조직적 차원의 지원과 함께 이뤄진다면, 이 해석은 틀린 것이다.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byungkee@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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