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태
인하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어느 사회, 어느 조직에서도 리더는 반드시 필요하다. 리더에 따라 그 사회나 조직의 흥망성쇠가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훌륭한 리더는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을 갖춰야 한다. 예를 들면, 혼란기에는 강력한 리더가 필요하고 평화기에는 온화한 리더가 필요하다. 신분 등에 의한 위계가 분명한 사회나 조직에는 권위주의적 리더가 적합하고, 구성원이 평등한 사회에는 민주적 리더가 적합하다. 이 정도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리더의 조건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권위주의적 리더든, 민주적 리더든 반드시 갖춰야 할 조건이 따로 있다.

우선 우리 시대가 직면한 문제를 민주적이고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철학과 신념을 확고하고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는 리더여야 한다. 잘못된 철학이나 신념을 가진 지도자는 자국민은 물론 이웃나라의 국민들조차 엄청난 고통 속으로 몰고 간다. 독일 히틀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잘못된 철학과 신념을 가진 리더를 뽑아 엄청난 국가적 자원을 낭비하고 불필요한 국내외 갈등을 야기한 사례는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그 핵심 요소가 바뀐다면 조직이나 사회를 혼란 속에 빠뜨릴 것이다. 따라서 리더는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확고하게 일관되게 유지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한동안 논란이 됐던 무상급식 문제에 대해 진보나 보수 할 것 없이 제도화를 추진하다가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의원과 단체장들이 중단시키는 바람에 국민들이 많은 혼란을 겪었던 사례가 재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것은 뚜렷한 철학이나 신념도 없었고 앞뒤 사정도 가리지 않은 채 여론에 밀려 졸속으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만약 리더가 아예 철학이나 신념이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런 부류의 리더는 대체로 자신이나 가족의 이미지를 이용해 구성원의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이나 정서에 호소하면서 지지를 얻는다. 이런 부류의 리더는 자신의 철학이나 신념이 없다. 구성원이 좋아할 만한 정책은 무엇이든 약속해 놓고, 정작 그것을 입법화하거나 집행해야할 단계에서는 여건 운운하면서 딴전을 피운다. 실망감·불신·혼란·자원낭비만 조장할 뿐이다.

두 번째 조건으로 리더는 구성원과 언제든지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도 구성원이 충분히 납득할 수 없거나 대다수 구성원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 정책의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없다. 리더는 애초에 정책을 입안하는 단계에서부터 결정하고 집행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구성원 특히 이해당사자(집단)와 성실하고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만약 상당수 구성원들이 반대하거나 미심쩍어할 경우 리더는 다수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소통을 통한 설득 과정을 밟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나 증오가 강할 때, 법이나 양심에 어긋나는 결정을 내리려고 할 때, 상대방에게 숨겨 혜택을 독식하거나 더 많은 몫을 차지하려고 할 때 사람들은 소통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국내외 경험에 비춰 보면 나만이 옳다는 독선적 태도, 윗사람에 대한 문제제기를 불허하는 권위주의 의식, 지금 당장 결과를 봐야겠다는 ‘빨리빨리주의’와 같은 속도주의(조급증), 수단과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성과지상주의를 신봉하는 리더는 구성원과의 소통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충분한 소통이 없이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인 정책과 사업은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지는 몰라도 부작용이나 후유증은 훨씬 더 클 수 있다. 대다수 구성원이 찬성하지 않는 정책이기 때문에 밀실에서 뇌물과 불법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고, 공개적인 절차를 거치는 경우에도 다수의 힘이나 불법적인 방식으로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국가 수준에서 보면 대통령과 국회의 다수당이 모두 ‘불통’의 독선적인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면 엄청난 예산의 손실과 정치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리더는 자신의 철학과 정책노선을 지지할 확고한 조직이나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 필요한 정책이라도 이를 효과적으로 결정하고 집행하기 위해서는 내부적으로 단결되고 통일된 집단의 지지가 없으면 리더의 철학이나 신념이 정책으로 전환되지도 않고 설령 정책으로 만들어져도 내부 반대파의 저항과 방해로 출발부터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리더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지지하는 조직이나 집단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의견을 조율해 각 부분이 정합적인 정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조정자 또는 중재자로서의 자질을 갖춰야 하고, 자신의 철학과 원칙이 있어야 하며, 이를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

리더가 자기 조직을 제대로 이끌어 가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는 파벌의 문제점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조직 내 파벌은 의견의 다양성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파벌들이 가진 다른 의견이나 이해관계를 잘못 관리할 경우 조직의 파괴나 부패는 물론 외부의 다른 조직과 환경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줄 수 있다.

이제 국가의 최고지도자를 선출하기 위한 선거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시대의 우리 사회에서는 가족의 가장도 철학과 신념도 없고 합리성과 민주성도 결여한 채 전통이나 권위만을 강조하거나 정에만 호소해서는 자녀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없고 가족의 행복도 보장할 수 없다. 하물며 5천만 국민의 생존과 행복을 책임질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철학도 없고 합리성과 민주성을 결여해서야 되겠는가.

인하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ytjung@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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