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
성공회대 사회과학정책
대학원 교수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문재인-안철수 후보 두 사람이 지난 21일 밤 TV토론을 마치고, 그 다음날 만나 담판하기로 하고는 아무런 결과도 없이 헤어진 상황이 보도된 직후다. 어떤 극적인 변화가 생길지 모르는 상태다. 그러니 뭔가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다. 워낙 모든 것이 유동적이니 말이다. 일단 전날 토론에서 두 사람은 화기애애하면서도 서로 짚을 것은 짚어 나가는 품격 있는 토론을 보여 줬다. 충돌하는 지점에 대해서는 서로 이해하고, 동의를 구하고, 차이를 드러내는 과정을 잘 드러내 줌으로써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평가에 따라 두 사람의 세 번째 회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던 이들은 아무 성과가 없다는 보도에 마음을 졸이고 있다. 단일화 방식에 대한 유불리를 따질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누구에게도 불리하지 않을 수 있는 원칙과 방법을 찾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단일화 시한이 다가오는 빡빡한 일정 가운데 어떻게든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못하면 단일화 드라마는 파국을 맞고, 두 사람은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안고 대선 무대의 중앙에서 비틀거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단일화 과정의 파열음이 쌓이면서 문-안 지지세력 간에 벌어지고 있는 불화는 단일화 이후를 보장할 수 없게 된다. 정치연합 또는 세력 연대의 고리가 끊기고 마는 것이다. 사실 이 점이 가장 우려된다. 단일화의 과정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깊게 만들어 가는 절차가 아니라 불신을 심화시키는 경로가 되고 있으니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난 과정을 돌아보면 문-안 양측이 서로에게 상처를 받거나 오해가 쌓이기도 했다. 논리의 충돌로 거친 말들이 오간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것들이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 내서 서로 간에 마음을 합치는 일을 방해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 나름대로 발언권이 있는 식자들은 양측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나갈 수 있도록 다독이면서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어느 한쪽의 논리를 내세워 다른 쪽을 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 역시 단일화 효과를 반감시키는 쪽으로 기여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곤란하다. 서로 할 말이 많겠지만 가급적 상대의 자리에 서서 무엇을 고민해야 할 것인지 성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각자의 자리에서 상대를 평가·판단하고, 그것으로 결론을 내림으로써 골은 더욱 깊어지고 말 것이다. 자중할 일이다. 이런 식이 되면 중간지대가 사라져서 양측의 간격을 메울 수 있는 사회적 힘이 줄어든다. 그 뒤에는 대립과 대결만이 남게 된다. 이것은 두 후보 모두에게 치명적인 일이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응집력 있는 단일화 과정이다. 물론 이 과정에 협력과 경쟁이라는 모순된 목표가 공존하고 있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두 후보는 서로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는 것을 입증하고도 이를 토대로 같은 진영의 대표 후보가 돼야 하니 이 역시 얼마나 난제인가. 너무 같으면 차별성이 사라지고, 차이의 간격이 너무 크면 단일화 효과는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실로 신의 섭리에 가까운 정치적 마술이 발휘되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국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한 중간지대가 속히 만들어지는 것밖에 없다. 두 사람의 담판이 성사돼 결론이 내려지지 못하면, 시민사회의 중재와 심판의 역할이 부각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단일화 협상의 무대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시민사회의 요구나 감시 또는 발언권이 배제돼 있는 대목이다. 도대체 정치쇄신의 목표가 무엇인가. 시민사회의 직접 민주주의적 발언권이 정치구조에 최대한 반영될 수 있는 개혁을 하자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단일화 과정도 그러한 내용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신뢰와 협력의 정치가 아니라 불신과 대결의 정치로 가는 것은 문-안 두 후보가 이루겠다는 새 정치의 모습과 반대다. 자신도 이 일을 해내지 못하면서 새 정치를 하겠다고 한다면, 두 사람이 하고자 하는 정치는 설득력을 잃게 된다. 서로 상대가 답답하고 힘들겠지만 다시 맹성을 하고 시민사회의 협력을 구하면 어떨까. 그걸 이끌어 내고 함께해 보는 것도 두 사람의 정치력 속에 포함돼야 한다. 기존의 정치구조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두 사람의 개인적 담판이 위력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남은 것은 시민사회의 조력을 받는 것 아닐까.

단일화 효과를 반감시키는 과정이 되는 것을 막고, 불신을 척결하고 신뢰를 복구하는 방식에 대한 깊고 신속한 고민이 새로운 결과를 낳기를 절박하게 기대하는 바다. 시간이 별로 없다.

성공회대 사회과학정책대학원 교수 (globalize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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