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림
전국비정규직
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이미지만 떠돌던 안철수 대선후보의 공약이 지난 10일 발표되고 나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노동 분야에 관한 공약만 봐도 안 후보의 인식이 시대에 한참 뒤떨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눈에 띄는 항목이 ‘특수고용형태종사자에게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 적용’, ‘특수고용종사자협회와 같은 별도 단체 결성을 통한 공동문제 해결 보장’이라는 약속이다. 여기서 ‘특수고용형태종사자’라 지칭되고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핵심 문제가 다른 노동자와 동일하게 일을 하는데도 현행 법제도에서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임을 안 후보가 과연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 문제는 2000년 10월 고용노동부가 ‘근로자에 준하는 자’라는 개념을 내놓고 2001년부터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를 벌이면서 십 년이 넘게 논란을 벌여 온 사안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기본적으로 특수고용 노동자가 노동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전제 위에서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경제법적 혹은 사회보험법적 보호를 추진했다. 그 결과 2008년 7월1일부터 산재보험법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가 명시돼 학습지교사·보험모집인·골프장 경기보조원·레미콘 운송기사·택배기사·전속적 퀵서비스기사에 한해 산재보험이 특례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특수고용 형태 중 단지 6개 직종으로 제한되고, 보험료의 절반을 노동자가 부담해야 한다. 임의탈퇴가 가능한 제도상 문제점으로 인해 현재 적용률은 한 자리 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노동계의 요구는 특수고용 노동자를 산재보험법상의 ‘근로자’로 포함시켜 전면·동등 적용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를 반영한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이미 19대 국회에 상정돼 있다. 안철수 후보가 이러한 실태를 알기나 하는지,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 적용’이 현행 특례 제도와 어떻게 다른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에 관한 안 후보의 인식이 전무해 보인다는 것이다. ‘특수고용종사자 협회와 같은 단체 결성’은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 지금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단체나 협회는 헌법상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특수고용 문제의 해법으로 ‘단체 결성 보장’을 내놓았던 것은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을 제한하기 위한 정책의 성격을 지녔다. 일례로 노사정위원회 논의를 거쳐 2007년 6월 정부안으로 제출됐던 김진표 의원 안이 단체 결성과 협의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18대 국회에서 민주당 당론이었던 김상희 의원안도 역시 유사하게 단체 결성과 교섭 및 체결권한만 허용하는 것이었다. 즉 김대중 정부시절부터 정부·노사정위원회·여당의 입장은 특수고용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할 수 없기에 노동조합이 아닌 단체 결성ㆍ 교섭 권한만 부여하고 단결권ㆍ단체교섭권ㆍ단체행동권은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줄기찬 투쟁으로 19대 국회에는 특수고용 노동자를 노조법상 ‘근로자’로 포함시키는 김경협 의원 대표 발의안 및 심상정 의원 대표 발의안이 상정돼 현재 논의 중이다.

10일 발표된 안철수 후보의 공약은 이러한 흐름과 동떨어져 논의를 17대 국회 수준으로 되돌린 것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강력한 비판으로 20일 발표된 공약에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법제도 보완”으로 표현은 바뀌었다. 하지만 한국노총의 질의에 대한 답변서에서는 여전히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고용보험 적용방안은 노사정위 논의를 거쳐 결정”,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조직결성과 협의권 등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별도의 법제정을 추진”이라고 답변해 기본적 내용이 바뀌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안 후보의 노동공약 전반에 나오는 공통적 언사는 ‘노사정 대타협’, ‘노사정위원회 논의’다. 특수고용 문제만이 아니라 △공무원 노동기본권 보장 △필수유지업무·공격적 직장폐쇄·손배가압류 등을 제한하는 노조법 개정 △비정규직 차별 시정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현실화 등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 노사정 논의를 거쳐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나 전임자 근로시간면제 제도에 대해서는 아예 현행 법을 유지하면서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사안들은 노사정 논의를 거쳐, 더 정확히 말하자면 노동계의 양보와 타협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라 현재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태에 조응해 해결해야 한다. 헌법상 노동기본권의 보장이라는 원칙과 시대정신에 맞춰 개선이 돼야 할 문제다. 노동계의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 안철수 후보는 계속 ‘진심’, ‘대통령의 국정 운영 철학’을 믿어 달라고만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의 ‘진심’ㆍ‘철학’만 믿고 대통령이 직접 챙겨 주기만을 기대하기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배신이 너무 깊다. 이 땅 노동자들의 현실은 너무 엄혹하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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