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선 노무사
(금속노조 법률원)

체당금 사건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기억나실지 모르겠습니다. 보통 체당금 사건의 경우 원만히 체당금을 받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만 당시 사건은 체당금 신청자(A씨)의 ‘근로자성’이 문제가 됐습니다. 이미 고용노동부에서 근로자성이 부정돼 저희 사무실에서 수습노무사로 계시던 분과 함께 행정심판을 준비했습니다.

그게 벌써 올해 초군요. 행정심판을 신청한지 석 달이 지나도록 행정심판은 진행되지 않았고, 계속 대기 사건이 많아 연기되고 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9월에 행정심판위원회에서 A씨의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몇 차례 행정심판위원회의 담당자와 연락도 하고 추가 자료도 제출한 후, 10월 말 드디어 A씨에 대한 행정심판 결정이 왔습니다.

결정 내용은? 물론, 근로자성이 인정되므로 고용노동부의 체당금 부지급 결정은 위법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결정문의 핵심 내용을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청구인은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없이 근무한 점, 근로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은 점,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점, 청구인 본인이 근로자를 고용해 일당을 지급하였다고 진술한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로서의 특성이 없는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이러한 사정들은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서 사실상 임의로 정할 수 있는 사정에 불과하여 청구인의 근로자성을 뒤집는 사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중략)

청구인은 관리자의 지휘감독을 받아 근로를 제공한 것으로 보여 작업량에 비례해 임금을 받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이 사건 회사에게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다.’

즉, 객공의 형식으로 사업장에서 근무를 했다는 사실은 사용자가 임의로 정할 수 있는 사정일 뿐이므로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고, 근로자성 여부는 계약의 형식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실질에 있어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체당금 신청을 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법리적으로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인데 이 결과를 받기 위해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자 그럼, 이제 A씨는 곧바로 체당금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정답은 ‘아니오’ 입니다. 행정심판위원회에서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은 고용노동부가 A씨는 체당금을 신청할 요건, 즉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한 것에 대한 판단이었을 뿐 A씨가 지급받을 체당금이 존재하는 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A씨가 체당금을 받기 위해서는 다시 고용노동부에 체당금지급신청을 해야 합니다.(물론, 실무적으로는 이미 신청을 했기 때문에 재신청을 하지는 않고 조사만 이뤄질 것입니다.) 함께 근무했던 근로자들과 같은 지위에서 체당금을 신청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행정심판 결과를 통보받은 후 A씨와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근로자성이 인정됐다는 말에 A씨는 무척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거쳤던 조사과정을 다시 거쳐야 한다(예전에 A씨 사건을 맡았던 근로감독관은 전보되어 다른 감독관이 조사를 한다더군요)는 이야기를 들은 후 A씨의 목소리에서 서운한 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결과는 끈질기게 법적 다툼을 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승리라는 것을 A씨도 저도 알고 있습니다. 만약 A씨가 처음 사업장에서 체당금지급신청을 대행해 주던 노무사의 얘기만 듣고 체당금 지급 신청을 포기했다면, 만약 고용노동부의 부지급 결정에 더 이상 본인의 ‘근로자성’ 여부를 다투지 않고 체당금 지급신청을 포기했다면,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지부진한 법적 다툼을 못 견뎌냈다면 지금의 결과는 없었을 것입니다.

A씨는 근로자로서 당연히 법적으로 보장받는 권리를 다시 행사하려고 합니다. 근로자로서 근로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체불된 채로 사업장이 부도처리 되고, 사용자는 해외로 도피한 상황에서 국가에 적법하게 청구할 수 있는 체당금 지급을 요구하려고 합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저 역시 작지만 소중한 승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A씨가 적법한 권리행사를 통해 노동의 대가를 보장받는 날까지 함께 할 것입니다.

다음에는 확실한 승리를 말씀드릴 수 있도록 여러분도 많이 응원해주세요.

김혜선 노무사 (금속노조 법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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