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대선후보들의 경제민주화론에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외국인투자기업에 관한 규제 정책이다.

한국의 외투기업은 40만명에 가까운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전후방 연관산업까지 합하면 100만명에 가까운 노동자의 고용에 영향을 미친다. 매출액으로 보면 한국 전 산업 매출액의 10%에 해당한다. 정부는 이러한 외투기업에 대해 법인세·소득세·취득세·등록세·재산세 등의 조세를 감면해 주고 있다. 지자체들은 외투기업 전용공단을 만들어 토지까지 헐값에 분양해 주고 있다.

하지만 한국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정부 지원을 많이 받고 있는 외투기업들의 경영행태는 그야말로 막장에 가깝다.

먼저 노동탄압. 현재 금속노조에 대해 악질적인 탄압을 계속하고 있는 3M·파카한일유압·발레오전장·포레시아·보워터코리아·보쉬전장·컨티넨탈 등은 모두 외투기업이다. 금속노조 소속 외투기업 지회 중 20% 가까이가 이른바 장기투쟁 사업장일 정도다. 외투기업의 사용자들은 노조의 교섭요구에 대해 본사 관할이라며 회피하기 일쑤고, 공장철수 협박으로 노조 와해를 도모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다음으로 자본유출. 3천명 정리해고와 23명의 죽음을 만들어 낸 상하이차의 기획부도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009년 1월 상하이차는 수천억원 규모의 디젤자동차 기술을 빼간 이후 쌍용차를 부도처리해 버리고 중국으로 튀었다. 최근 1천여명의 희망퇴직을 실시한 르노삼성은 최근 몇 년간 모기업인 일본 닛산·프랑스 르노기업과 부품거래를 하며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한국지엠 역시 지엠과의 거래에서 2조원에 가까운 외환손실을 입은 것은 물론 지난해에는 글로벌 신차 생산비용을 모두 떠맡아 큰 손해를 봤다. 직장폐쇄 이전에 700억원에 가까운 유상감자로 자본을 빼내 간 발레오만도, 순이익 전액을 배당을 통해 해외로 가져간 로보트보쉬, 정치권 로비를 통해 외환은행을 헐값 인수한 이후 유상감자·배당·매각을 통해 5조원 가까운 돈을 빼간 론스타 등도 유명한 사례다.

노동을 통제해 이윤을 늘리려는 자본의 속성은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노사관계가 안정적이라는 독일·프랑스의 자본도 한국 사업장에서는 국내 자본과 비슷하게 노조 파괴에 혈안이 돼 있다. 외투기업이 노조 흔들기에 주로 이용하는 공장철수 협박을 한국자본 역시 해외공장 생산 확대라는 명분으로 비슷하게 해 댄다. 외투기업들이 기회만 되면 자본유출을 하듯이 한국의 기업들도 면세 국가에 페이퍼 컴퍼니를 차려 놓고 회삿돈을 빼돌리거나, 제품가격을 조정해 의도적으로 국내공장이 아니라 해외공장에 수익이 나도록 만드는 일을 종종 한다.

외투기업에 대한 특별한 규제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의 노동자에게 국내기업과 결정적으로 다른 한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교섭대상이다.

국내기업의 경우 법인의 대표이사가 다르다 하더라도 노조가 국내에 있는 실질적 소유주에게 고용·임금과 관련한 요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외투기업은 바지사장에 불과한 국내법인 대표이사가 자신은 권한이 없다고 버티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져 버린다.

예컨대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노조는 결정적 노사문제가 발생하면 법적 교섭대상인 사업장의 대표이사가 아니라 실질적 소유주인 정몽구 회장을 상대로 문제해결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지엠의 경우 최근 물량이전 문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고용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사안이 터져도 스스로 권한이 없다고 말하면 그만인 한국지엠의 사장을 상대로 교섭을 할 수밖에 없다. 한국지엠 공장의 생산품목에 대한 결정권한을 실질적으로 쥐고 있는 디트로이트 지엠 본사의 애커슨 회장은 한국지엠 노사관계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린다. 한국의 노조는 실질적 해결권한을 쥐고 있는 상대방에게 압력조차 행사하기 쉽지 않다. 아예 중국으로 튀어 버린 상하이자동차의 예는 말할 필요도 없다.

외투기업을 규제하는 별도의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외투기업의 노동탄압·자본유출에 대해 한국의 노동자들이 실질적 권한이 있는 책임자와 상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자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개입해야 한다.

지금까지 진보진영에서 나온 대책들은 외투기업의 유상감자, 고배당에 대한 고율의 세금 부과, 세제혜택에 대한 반대급부로 고용의무 부과, 자본 유출입에 대한 관련기관의 감독권한 강화 등이다. 외투기업 사업장의 노조가 해외에 있는 본사와 협의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이런 이야기가 나온 지 수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정치권에서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다. 부디 경제민주화의 중요한 한 축으로 외투기업 문제가 다뤄지기를 바란다. 세계경제가 요동칠수록 외투기업 문제는 한국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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