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14일 유럽노동자 총파업이 있었다. 유럽노총(ETUC)이 정한 ‘유럽인 행동과 연대의 날’의 파업과 시위에 스페인·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프랑스·벨기에 등 유럽 23개국 40여 노동단체가 참여했다. 천만명이 넘는 유럽노동자들이 파업과 시위를 했다. 정부의 긴축정책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행동이었다. 90년대 후반 IMF관리체제 아래서 우리나라에도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에 항의하는 노동자의 투쟁이 있었다.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 등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정부의 긴축·구조조정 정책으로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고 실질임금을 감축당하는 상황에서 이에 반대해서 행동하는 것은 우리나 유럽이나 다를 게 없었다. 다만 그 규모는 많아야 십만명이 조금 넘었다. 그렇다면 그들과 우리는 천만명과 십만명으로 참여 노동자 수만 달랐던 것인가.

2. 유럽총파업의 날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심각한 경제위기에 따른 정부의 긴축정책이 몰아치고 있는 스페인·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 등 외에 프랑스 노동자들이 이번 총파업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프랑스 노동총동맹(CGT)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중심이었다.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를 마구 몰아내는 긴박한 나라의 노동자들이야 불법이든 뭐든 파업을 한다지만 프랑스 노동자들은 정부의 긴축정책에 항의하는 파업을 했다. 불법파업이라도 ‘유럽인 행동과 연대의 날’을 결정한 유럽노총(ETUC)의 지침에 복무하겠다는 것인가. 프랑스에서는 불법파업이 되지 않는다. 정부의 긴축정책에 항의하는 파업을 하더라도 유럽노총의 지침에 따라 파업을 하더라도 업무방해죄로 처벌받을 일도, 사용자로부터 손해배상청구 및 그 가압류에 시달릴 일도 없다. 프랑스 헌법 전문은 “파업권은 이를 규제하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프랑스 노동자는 자유롭게 파업권을 행사한다. 비록 파업권을 규제하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행사할 수 있다고 프랑스 헌법은 노동자의 파업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했지만 어떠한 법률도 일반 노동자의 파업권 행사를 제한하거나 금지하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노동자들의 자유로서 파업권이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돼 있는 것이다. 반드시 노동조합을 통해서 파업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노동조합이 아니라도 노동자들은 파업을 할 수 있다. 노동법 개정은 물론이고 정부정책에 항의해서 노동자들은 파업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이 노동자의 기본권으로서 보장돼 있으니 그 파업이 불법일 수가 없다. 그러니 프랑스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10%를 밑돌지만 노동자의 힘은 결코 약하지 않다. 스페인 헌법 제28조 제2항도 노동자의 파업권을 보장하고 있다. 하긴 대한민국 헌법 제33조 제1항도 근로자는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단체행동에는 파업은 당연히 포함된다. 그런데 이번 유럽총파업에 이 나라 노동자들이 참여했다면 어찌됐을까. 불법파업이라고 이를 주도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위반으로서, 심지어는 업무방해죄로 기소돼서 처벌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는 징계당하고, 이를 주도한 노조간부는 급여나 집을 가압류당하고 손해배상재판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사용자를 상대로 근로조건을 정하기 위한 임단협 파업이 아니고 정부의 긴축정책에 항의한 파업이니 불법파업 엄단이라는 권력의 경고와 자본의 협박에 온 나라가 시끄러웠을 것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그들과 우리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은 파업이 자유라면 우리는 아직 자유가 아닌 것이다. 그들은 파업권이 노동자의 기본권이라면 우리는 노동자의 기본권이 아니라고 해야 한다. 이번 유럽총파업은 그들 정부에게는 긴축정책에 대한 항의표시였지만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 파업권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3. 이번 유럽총파업에 독일 노동자는 파업을 하지 않았다. 일부가 시위에 참여했을 뿐이다. 무엇이 그들을 참여하지 않게 했을까. 그나마 잘나가는 독일이라서 총리 메르켈의 정책에 독일노조가 협력한다는 의미일까. 독일은 거대한 산별노조와 산별협약 질서가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고 거대한 덩치라서 파업을 결정하기가 어려웠던 것도 아니다. 헌법에 해당하는 독일기본법 제9조 제3항은 “근로조건과 경제조건의 유지와 개선을 위해 단체를 결성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그리고 모든 직업에도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단결의 자유 조항의 해석을 통해서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이 보장된다고 보고 있다. 노동자의 파업,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를 제한하고 금지하는 법률은 없다. 우리의 노조법과 같은 노동조합의 조직과 쟁의 등 활동을 규제하는 법률은 없다. 단지 사용자와 체결한 단체협약에 정한 바에 따라 조정신청 등 쟁의행위 절차상의 제한을 받고 있다. 그런데 독일의 경우 정치파업을 쟁의행위의 목적으로서 정당성이 없다고 본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주도하지 않는 파업은 정당성이 없다고 본다. 이는 프랑스 헌법과는 달리 노동자의 파업권을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는, 단결의 자유로 규정하고 있는 위 독일기본법이 한 몫을 했다. 프랑스는 노동자의 파업이 자유인데, 독일은 단결의 자유이고 여기서 파업 등 단체행동권이 나온다고 해석하는 것이므로 노동조합을 통해서 행사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독일의 경우 정치파업은 불법파업으로 정하고 있다고 하고, 이러한 독일의 정치파업에 관한 법해석이 독일의 법해석을 쫓아가는 일본과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독일은 우리와 다르다. 독일의 헌법은 단결의 자유로 보장한 것이지만 대한민국 헌법은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으로 보장한다. 독일기본법의 단결의 자유는 “근로조건과 경제조건의 유지와 개선을 위해 단체를 결성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그리고 모든 직업에도 보장”되는 것이므로 사용자조차도 이 단결의 자유로 사용자단체를 조직할 기본권이 보장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단체행동권은 단체협약질서를 떠받치는 한 당사자인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기본권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근로자가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한 헌법 제33조 제1항의 나라, 대한민국의 경우는 그렇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 헌법이 규정한 대로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파업을 할 수 있다고 봐야 하고,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서라면 노동자는 정치파업이라도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는 그렇지 못하다. 헌법의 노동기본권 조항과는 달리 노동자는 파업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조합을 통해서 행사할 수 있는 기본권이라고 해석해서 적용해 왔다. 90년대 후반 IMF관리체제에서 김대중 정부의 구조조정이 몰아칠 때 이 나라 노동운동이 이에 맞서 투쟁을 했어도 그것은 기껏해야 결의대회 등 집회·시위였다. 파업투쟁은 사업장의 임단협 체결을 위한 파업을 시기집중해서 진행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야말로 순수하게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에 항의해서 파업을 전개한 적은 없었다. 지금 유럽노동자들만큼, 아니 보다 심각한 인원감축·임금삭감이 몰아치던 구조조정정책이 추진됐음에도 그랬다. 당시 80년대 노동자대투쟁을 거쳐 급속히 성장한 민주노총·금속산업연맹 등의 노동운동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갖추고서도 그랬다. 독일의 경우는 사민당 등을 통한 노동자 요구가 정부의 구조조정정책에 반영될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도 못하다. 무엇보다도 독일의 경우 불법파업을 해도 파업을 주도하거나 적극 참여한 노조간부나 노동자를 처벌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미 약 150년 전에 단결금지법리가 폐지되면서 극복됐다. 불법파업이라도 그것이 그야말로 집단적으로 노무제공을 거부하는 파업인 한 처벌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노동자는 불법파업이라고 노조법 위반으로, 심지어 업무방해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정부의 긴축정책에 항의해서 불법파업을 했어도 독일 노동자들은 기껏해야 노동조합이 손해배상청구를 당하는 것을 걱정하지만, 우리의 노동자는 처벌받고 자신이 손해배상청구를 당하는 것까지 걱정해야 한다. 그러니 독일 노동조합은 이번 유럽총파업에 참여한다면 불법파업이라고 사용자가 노동조합에 청구할 손해배상을 걱정했을 것이다.

4. 파업이 무엇인가. 노동자가 근로계약에서 정한 근로를 집단적으로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근로계약은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가 그 대가로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라고 근로기준법은 정하고 있다(제2조 제1항 제2호). 그러니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사용자가 그 대가로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집단적으로 근로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즉 노동자가 파업을 했다고 국가가 법위반이라며 처벌하고 사용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징계한다면 그건 노동자의 기본권으로서 파업의 자유, 단체행동권을 아직 보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 노동자는 유럽총파업에 참여할 수 없어도 그것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의 파업의 자유, 단체행동권 보장을 읽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노총이든 한국노총이든 주요 과제로 이것이 보이지 않는다. 파업은 노동자의 자유다. 파업이 노동자의 자유가 아니라면 노동자는 노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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