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과세계

“요즘 현대차비정규직지회 내부에서는 이런 말을 합니다. ‘비정규직지회가 갑이고 현대차가 을이다.’ 철탑 고공농성 한 달 동안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가장 크게 변한 건 여론이죠. 여론이 움직이니까 대선후보들도 철탑 고공농성장으로 오는 것 아니겠어요.”

현대차 비정규직의 고공농성이 한 달을 넘기고 있다. 박현제(39·사진)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장은 “급할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난 8년을 힘들고 어렵게 싸워 왔다”며 “오히려 지금이 행복한 편”이라고 말했다. 고공농성 31일째인 지난 16일 현대차 울산공장 명륜주차장 아래 철탑 농성장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박 지회장은 “불법파견 정규직화는 법적 권리”라며 “노사합의 대상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두 번의 구속영장 기각 … "약자는 희생, 강자는 법 위에 군림"

지난달 17일 고공농성이 시작되고 일주일이 지난 무렵 박 지회장은 공장에 잠복 중이던 경찰에 연행됐다. 법원은 "주거가 분명하고 직책에 비춰 도주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검찰이 청구한 영장을 기각했다. 그런데 열흘도 안돼 검찰은 박 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했다. 법원은 이 역시 기각했다.

"경찰도 (연행을) 포기한다고 제게 선언했어요. 4월에 지회장에 당선됐는데 열 달도 안 돼 세 번의 체포영장을 받았고, 두 번의 구속영장이 기각됐습니다. 조합원들과 만나는데 (수배라는) 제약이 사라져 다행이긴 한데…. 약자는 법에 희생되고, 강자는 법 위에 군림하는 현실을 다시금 느끼게 됐죠."

박 지회장은 고공농성 한 달 동안 크게 변했다고 했다.

"여론이 우호적으로 돌아왔어요. 대선후보가 움직인 것도 자신들의 의지보다는 여론의 힘이라고 봐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대선후보 모두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첫 번째 공약으로 꼽고 있다.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공개질의서에 대선후보들의 답변서를 받았습니다. 새누리당을 포함해서요. 그런데 이 문제를 당장 해결하겠다는 후보는 없더군요. 대통령이 되면 뭔가 하겠다고 하는데 선거용 립서비스에 그칠까 걱정도 돼요."

"비정규직이 갑이고 현대차가 을이다"

최근 현대차 원하청 노사는 불법파견 특별교섭을 재개했다. 지회는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이 지회의 요구가 원칙만을 고집해 현실적으로 무리한 해결방안이라고 지적한다. 정규직지부도 "대리점 딜러까지 정규직화하라는 말이냐"며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

"정규직 전환은 노사가 밀고 당기는 협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법적 권리입니다. 이미 고용노동부가 2004년에 현대차 9천234개 공정을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했고, 대법원 판결문을 봐도 노무독립성·경영독립성 둘 다 충족하지 못한 현대차 하청업체는 불법파견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현대차가 법을 이행해야 할 문제를 두고, 교섭의제로 정규직 전환대상자를 정하자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교섭석상에서는 현대차가 그동안 저지른 불법에 대한 사과와 보상의 문제가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 박 지회장의 생각이다. 박 지회장은 올해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하나는 생산에 타격을 주는 파업이고, 다른 하나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불법파견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정치적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둘 다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요즘 우리끼리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우리가 갑이고 회사가 을이다'는 말인데요. 지금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오늘도 2공장 조합원 간담회를 다녀왔는데 제가 놀랄 정도로 조합원들이 달라졌어요. 출투(출근선전전)도 늘고 오후 촛불집회 참가자도 꾸준히 늘고 있어요. 급할 게 없다는 판단입니다. 지난 8년간 우리는 이렇게 늘 싸워 왔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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