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한 달째 철탑농성 중인 천의봉(사진 오른쪽)·최병승씨가 손을 높이 들고 있다. 노동과세계
드넓은 현대자동차 정문 주차장 한구석에 푸른색 천막 대여섯 동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거친 바람이 천막을 깃발인 양 흔들어 대는 그곳 한가운데 50미터의 송전철탑이 거대하게 솟아 있다. 철탑의 중간지점에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천의봉·최병승씨. 두 명의 현대차 비정규직의 얼굴이 작은 점처럼 보였다. 그들의 발밑으로 접근을 막는 철조망이 흉물스럽게 둘러처져 있다. 조금 더 아래쪽에는 철탑농성이 31일째임을 알리는 붉은 현수막이 펄럭였다.

지난 16일 오후 <매일노동뉴스>가 찾은 현대차 철탑농성장은 17일과 18일 이틀간 진행되는 ‘제3차 울산공장 포위의 날’ 행사준비로 분주했다. 지상에서 대형 걸개그림을 펼치니 철탑 위에서 그 모습을 스마트폰에 담고 외친다. “사진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죠? 궁금하면 500원.”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농성장을 메웠다.

널빤지 두 조각으로 시작한 철탑농성장은 지난 한 달간 이동식 화장실에 물탱크까지 갖춘 농성촌으로 변했다. 다음달 대선 이후 정치상황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지만 철탑농성장은 한겨울을 보낼 채비를 마쳤다.

“천의봉씨는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사무장이고, 최병승씨는 현대차 정규직 조합원이에요. 철탑 위에서 원·하청 공동투쟁을 하는 셈이죠.” 비정규직지회 한 간부가 농담 삼아 던진 말이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올해 5월부터 최씨는 현대차 정규직지부의 조합원이다. 이날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문용문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은 “회사도 최병승씨에 대한 불법파견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15일 열린 10차 불법파견 특별교섭에서 윤갑한 대표이사가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고 인정한다”고 밝힌 것을 두고 정규직지부와 비정규직지회는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불법파견 문제 해결에 대한 접근방식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극이 크다. 문용문 지부장은 “회사가 불법파견을 인정했다면 정규직으로 전화해야 한다"며 "불법파견 공정에 대한 노사 간 이견이 있으면 전문가를 포함해 같이 논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정규직지회는 정규직 전환 대상기준은 이미 대법원에서 판단이 끝났다는 입장이다. 박현제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장은 “임금협상의 문제라면 노사 간 타협의 지점이 나올 수 있지만 불법파견은 법적 권리의 문제”라며 “정규직 전환은 교섭의제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현대차측은 최병승씨 외 비정규직의 불법파견 여부는 법적 판결을 구해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투쟁수위에 대해서도 아직은 온도차가 느껴진다. 정규직지부는 이달 26일 열리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불법파견 투쟁방침을 정한다. 이에 앞서 금속노조는 19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내걸고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 안건을 다룬다. 문 지부장은 “1사1조직 안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투쟁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비정규직지회는 불법파견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파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으로 파업 돌입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철탑농성은 대선이 끝난 뒤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급한 쪽은 현대차다. 늦어도 내년 1월에는 현대차 550개 하청업체 447명에 대한 불법파견 여부에 대한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이 나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1천700여명의 하청노동자가 현대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 판결도 대기 중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