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시행일은 법이 개정된 2010년 1월1일일까, 절차가 개시되는 2011년 7월1일일까. 부칙의 ‘이 법 시행일’을 놓고 벌이던 고용노동부와 노동계의 ‘잔인한’ 논쟁이 대법원의 판결로 마무리됐다. 최근 대법원은 금속노조 KEC지회가 낸 단체교섭응낙가처분 재판에서 지회의 손을 들어줬다. 지회는 법 시행일인 2011년 7월1일에 단체교섭을 벌이고 있었으니 이후에도 교섭대표권을 가진다는 판결이다. 이 법 시행일은 2010년 1월1일이 아니라 2011년 7월1일이라는 얘기다. 창구단일화 제도가 시행됐던 2011년 7월1일, 상당수 노조가 시행일은 2010년 1월1일이라는 노동부의 행정해석으로 교섭권을 빼앗겼다. 사용자들은 2011년 6월30일까지 교섭을 벌였던 노조에게 창구단일화 절차에 참여하라며 기존 협상을 원점으로 되돌렸다. 대법원 판결의 의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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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취지 고려한 행정해석, 법원도 해석 엇갈릴 정도였다"

권혁태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
개정 노조법 시행일을 둘러싼 논란에는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다. 고용노동부는 행정해석을 통해 1월1일을 시행일이라고 해석했고, 행정해석이 맞다는 의견도 많았다. 실제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이전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의 판결도 엇갈릴 정도였다.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고등법원 판결은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이 맞다고 판결을 내렸다. 특히 대법원 판결도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이 틀렸다는 내용은 아니다. 대법원 판결은 과반수 지위를 획득한 새노조에 교섭대표권이 있지만 금속노조 KEC지회, 즉 기존노조에도 교섭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시행일을 2010년 1월1일로 판단하든 2011년 7월1일로 보든, 그것이 문제가 된 사업장에서 어떤 노조든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소송은 복수노조가 설립되고 새노조가 과반수 지위를 획득한 사업장에서 기존 노조가 '피해를 봤다'고 소송을 낸 것이다. 반대로 고용노동부가 2011년 7월1일을 시행일로 해석했다면 과반수 조합원을 획득한 새노조는 당해연도와 교섭대표노조 지위가 보장되는 2년 등 3년간의 교섭권을 행사할 수 없다. 당연히 이들도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소송을 냈을 것이다.

노조법의 시행일은 2010년 1월1일이고, 복수노조 시행일인 2011년 7월1일까지의 기간은 경과기간이었을 뿐이다. 고용노동부는 당시 이러한 법의 취지와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행정해석을 내놓았던 것이다.

“노동3권 빼앗는 노조법 개정해야”

김성훈
금속노조
KEC지회장

KEC지회는 노조법 때문에 만신창이가 됐다. 2010년에는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를 이유로 불법파업을 했다고 노조의 단체행동권을 제약하더니, 2011년에는 복수노조 1호 사업장으로 떠들썩했던 회사노조가 급조돼 교섭권마저 침해했다.

이명박 정부가 노조 무력화 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한 결과다. 노동부는 잘못된 행정해석을 내려 KEC 노동자들이 임금을 삭감당하고 교섭권을 박탈당하게 만들었으면서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나온 이후에도 “KEC지회에만 해당되는 판결이며 별다른 영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부의 억지 행정해석으로 교섭권이 박탈당한 곳은 KEC지회뿐만 아니다. 숱한 사업장에서 정상적으로 진행되던 교섭이 중단됐고, 하루아침에 교섭권을 잃었다. 그나마 KEC지회는 법정소송을 통해 교섭권을 유지할 수 있지만 다른 노조들은 이미 소수노조로 전락해 단결권마저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은 곳이 적지 않다.

국회는 노조를 죽이는 노조법를 개정하고, 노동부도 잘못된 행정해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노동부가 법 안 지켜 ‘창조’ 같은 괴물 커졌다”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변호사

창조컨설팅 같은 괴물이 나타나게 한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나. 바로 행정기관인 노동부가 법대로 집행하지 않은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법에는 분명히 복수노조 시행일이 2011년 7월1일이라고 돼 있다. 그러면 노동부는 법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노동부가 복수노조 시행일을 2010년 1월1일이라고 제멋대로 해석한 결과는 참혹하다. 노동현장에 혼란이 발생하고, 이번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수많은 노조가 어용노조에 밀려 사라졌다. 탈법을 넘어 위법한, 다시 말해 노동부가 법에 반하는 집행권을 행사한 결과다. 그 피해는 노동자가, 그 이득은 사용자와 사용자를 대리하는 노무사·변호사들이 봤다.

문제는 노동부의 태도다. 가령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을 무시하는 현대차에 대해 노동부는 왜 법대로 관리·감독을 하지 못하나. 법은 물론 법원의 판단까지 무시하면서, 관리·감독의 책임을 저버린 노동부가 더 이상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나. 지금 이 순간 노동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의 대부분은 노동부가 현행법대로 관리·감독만 잘해도 해결할 수 있다.

처음부터 2011년 7월1일인지, 2010년 1월1일인지 따질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법에 2011년 7월1일이라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법에 분명하게 명시된 내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노동부는 빨리 정신을 차리기 바란다. 법을 집행하는 행정기관으로서 자기 소임을 명심하고,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여 잘못된 행정해석부터 시정해야 한다. 이를 거부한다면 행정부로서 국민의 녹을 먹을 자격이 없다.

“판결은 나왔지만, 노조는 이미 만신창이”

박성식
민주노총
부대변인

언제쯤이면 노동자들은 상식을 갈구하고 그에 따른 법의 판단을 기다리고 환영해야 하는 처지에서 벗어날 것인가. KEC의 복수노조 악용에 대한 대법원의 상식적인 판단을 환영해마지 않지만, 이렇게까지 온 것 자체가 유감이다. 대법원은 복수노조 시행일을 2011년 7월1일로 확정하며, 당시 교섭 중이던 금속노조 KEC지회가 교섭 당사자로서의 지위를 계속 가진다고 판결했다. 그 결과 당시 회사와 급조된 어용노조가 체결한 단체교섭도 효력을 상실하게 됐다.

마침내 상식이 승리했지만, 법의 최종 판결이 나오기까지 민주노조는 만신창이가 됐다. 역시 주먹은 법보다 가깝다. 그 폭력효과도 꽤 유효하다. 때문에 사용자들은 걸핏하면 힘을 앞세운 부당노동행위를 일삼고 권력은 기꺼이 뒷배가 돼 준다. 이번에도 노동부는 복수노조 시행일을 2010년 1월1일이라고 해석하면서 무수한 사업장에서 사용자들의 부당행위를 부추기고 어용노조를 육성했다. KEC에서도 2011년 7월 친기업노조가 만들어져 상여금 삭감이 이뤄지기도 했다. 다행히 법의 판결은 나왔지만 그간 노동자들이 당한 피해와 잃어버린 권리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부당노동행위 사례가 차고 넘치지만 사용자들에게 매서운 처벌이 따랐다는 기억은 없다. 노동부 역시 숱한 편파행정을 일삼지만 그 어떤 책임을 진 적이 없다. 더 이상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사용자들과 노동부의 반성과 책임을 바란다.

"복수노조 제도와 시행일은 아무런 상관없어“

이형준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금속노조 KEC지회 교섭권을 둘러싼 대법원의 판결은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소수의 사업장에서만 노조법 시행일을 두고 논란이 있었을 뿐 대다수 사업장에서는 이와 관련한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이 다른 사업장에 미칠 영향도 거의 없다고 본다. 법이 시행된 지 이미 2년이 지났고 대다수 사업장에서 복수노조 설립과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안착된 상황이다..

문제는 노동계의 태도다. 노동계는 마치 노조법 시행일을 둘러싼 논란이 중요한 사안인 것처럼 부풀려 주장하면서 창구단일화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침소봉대하고 있다. 시행일이 2011년 7월1일이라는 대법원의 판결과 창구단일화 제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제도가 언제 시작됐는지만을 결정한 것이다. 시행일이 달라졌다고 해도 경영계가 크게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보는 것도 없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개별 사업장이 처한 상황마다 유불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침소봉대식 주장을 거두고 제도 안착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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