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14일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공공기관 자회사 노조 간부와 긴 시간 상담을 했다. 자신의 사용자는 아무리 봐도 자회사가 아닌 모회사라는 게 요지다. 몇 년 전 회사의 희망퇴직 종용에 견디다 못해 자회사로 전적을 했지만, 일부 근로조건을 제외하고는 근무장소·복지수준·작업지시자 등이 예전과 별반 차이가 없다 게 이유다.

상담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지 돌아서는 그분의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용기를 드리려 “아마 이번 대선이 끝나고 새로운 정부가 구성되면 분명 바뀔 거예요, 힘 내세요.”라고 말씀드렸다. 웃으면서 작별 인사는 나눴지만 못내 마음이 걸린다. 빈 소리라는 것을 그분도 알 것이라는 짐작에 애써 스스로 위안할 따름이다.

사실 지금까진 희망을 가질 구석이 없다. 주요 후보자들의 노동공약이라는 것이 뜯어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일자리를 늘리겠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없애겠다”, “이를 위해 법을 만들겠다”는 정도가 항상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공약이 실현되리라 믿을 노동자가 누가 있겠는가. 대통령이라고 해서 혼자서 법을 만들 수 없지 않은가. 더욱 참담한 것은 막상 노동자를 위해 투표시간도 확보해 주지 못하는 작금의 현실이다. 아마도 투표를 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라서,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아니라는 판단으로 헛공약을 남발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때도 있다.

지금까지 나온 공약의 내용은 좁은 의미에서는 노동공약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일자리 늘리기 공약이 그렇다. 노동부가 갑자기 고용노동부로 바뀌기 전에는 일자리 문제는 경제부처가 책임졌다. 노동부가 노동에다 일자리 업무까지 관장하겠다는 것은 특정 개인 욕심의 산물일 뿐이다.

따라서 노동공약이라면 “노동3권을 보장하겠다”, “차별받지 않는 노동환경과 산업재해로부터 안전한 사업장을 보장하겠다”는 내용과 “이를 집행할 부처(노동부)를 어떻게 운용하겠다”는 내용이 반드시 포함돼야 할 것이다. 어떤 후보는 노동3권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또 어떤 후보는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의 양보로 해결하겠다”며 노동자들의 인식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말을 하고 있다. 최근 유력 야당후보가 “고용노동부를 개편해 각 시·도에 일자리청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한 공약도 노동공약이라고 보기 어렵다.

공약에는 선후가 있어야 한다. 행정 각부의 목적을 명확히 하겠다는 선언이 필요하다. 노동부는 반드시 노동자들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업무에 매진하고 기획재정부는 일자리 업무에 매진토록 해야 한다. 그 후에나 세부 실행 내용을 담아야 할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만든 일자리에 어떤 방식으로 노동기본권을 실현하겠다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한 공약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중앙과 지방정부의 영향력 아래 만들어진 새로운 일자리에는 “노조설립을 지원하겠다”, “노조 간부에 대해 근로시간 면제한도를 보장하겠다”는 정도의 구체적인 내용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전제는 노동부를 가볍게 하는 것이다. 지금의 노동부는 너무 피곤하다. 그야말로 너무나 많은 일들을 머리에 이고 있다. 매일 밤을 세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잘했다고 칭찬받을 길도 없다. 그것은 노동부 설치의 원래 목적에서 한참 벗어났기 때문이다. 본연의 업무 이외는 모두 다 내려놓아야 한다. 타 부처 사업은 떼어 내고, 민간이 해도 충분한 것들은 과감히 민간으로 넘겨야 한다. 비워야 채울 것 아닌가. 생각해 보라. 지난 몇 년 동안 사용자에 의해 자행된 부당노동행위가 만연하지 않았는가. 무조건 노동부를 욕할 일만이 아니다. 감독만 충실히 할 수 있는 환경이었더라면 부당노동행위는 많이 줄었을 것이다.

오로지 노동자 편에서 노동자를 위한 노동부로 거듭난다면 적어도 노동자들로부터는 아낌없는 사랑을 받지 않겠는가.

근본적으로 행정부는 입법부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특히 오늘의 어려운 노동현실은 제도의 잘못보다 상당부분 집행부의 월권과 자의적인 법집행에 있다. 국가 지도자가 되겠다고 한다면 법에서 위임한 한계 내에서 집행하겠다는 약속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로 들리지만 그동안 그렇지 못했던 결과가 바로 오늘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94kimhyung@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