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보
한국노동사회
연구소 이사장

지난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도 인간이라고 부르짖으며 산화한지 42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 사흘 전 빗물을 머금은 찬바람 속에 전야제를 치룬 민주노총은 다음날 여느해처럼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전국에서 3만명이 모였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서울 청계천 전태일 다리에서 출발해 남대문을 거쳐 행진한 뒤 서울역에 진을 쳤다.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철폐, 노조파괴 중단, 투표시간 연장, 진보적 정권교체를 이루자고 결의를 다졌다.

분노에 찬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처연한 가을비 뒤의 차가운 바람을 밀쳐내며 광장을 울렸다. 스물셋의 생떼같은 젊은 삶들을 저 세상으로 보낸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호소는 차라리 절규였다. 일곱해 가까이 법전에 목을 매고 겨우 얻은 정규직화를 보장하라고 스무날 넘게 고공 송전탑에 매달린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새파란 목청이 집회 참가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전국 각지에서 총파업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결의는 자신감이 넘쳤다. 희비가 교차하고 결기가 서린 대집회의 모습은 얼뜻 보기에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인가 가슴 가득히 벅차오르는 열기와 손아귀 가득한 보람이 실감되지 않았다. 서늘한 허전함을 견디지 못한 것은 몇 사람만의 느낌이었을까. 88년 11월 이후 민주노조 진영의 노동자대회는 때로는 격렬한 분노와 처절한 패배의 비애가 교차하기도 했다. 동시에 감격스러운 승리의 환호와 함께 내일을 향해 서로를 북돋아주는 희망과 다짐의 용광로였다.

하지만 올해는 전태일 열사를 다루는 보도조차 찾아 보기가 어려웠다. 처절하리 만큼 절박한 노동자들의 요구는 곳곳에서 차단되고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기린다는 노동자대회의 메아리는 어디서 끊길지 모를 만큼 가냘퍼 보였다. 전태일 열사와 쉼 없이 자기 몸을 내던졌던 수많은 열사들의 소망을 착실하게 성과로 쌓아 왔다면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은 차치하고 노동 무시의 상황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동운동은 이렇게 항변한다. 노동운동은 전태일 열사가 결심하듯,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절대로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떤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거듭 다짐했다. 숱한 피땀을 감내하며 변화를 일구려 힘써 보기도 했고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럼에도 전태일 열사가 바랐던 세상,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탈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세대”가 막을 내리고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짤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증오스러운 인간상이 사라졌는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동등하게 보장되며 인간이 서로 사랑하면서 인간적인 정을 느끼고 살 수 있는 사회”에는 얼마나 다가가 있는가. 전태일 평전의 저자 조영래 변호사가 전태일 열사의 바람으로 지적한 인간의 나라. 약한 자도 강한 자도, 가난한 자도 부유한 자도, 귀한 자도 천한 자도 구별이 없는 평등한 인간들의 세상.‘서로 간의 사랑’이라는 참된 기쁨을 맛보며 살아가는 세상.‘인간을 물질화한 생존경쟁이라는 이름이 없어도 되는, 악마의 야만적인 질서가 완전히 분해된 세상은 여전히 이상향으로 남겨져 있다.

이처럼 전태일 열사가 지적한 세상의 모순이 개선되기보다 더욱 뒤틀려 가고 있음에도 열사의 정신계승을 25년이나 다짐해 왔던 노동운동은 이렇다 할 재기의 기회도 잡지 못하고 있다. 위기의 심연에서 몸부림치고 있음을 올해 노동자대회는 스스로 고백하는 듯 했다. 무엇보다 열사와 그 어머니가 갈구했던 단결과 연대의 원리가 위기상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운동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중소영세기업 및 비정규 노동자를 소외시키면서도 사회연대적 또는 사회운동적 조합주의를 추구하는 모순을 되풀이하는데서 위기는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이번 대선 최대의 의제인 사회복지와 경제민주화에서 대전제인 노동이 배제돼 있는 것은 허약한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의 업보일 테다. 절대절명의 운동과제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내세웠던 노조간부들이 갈래갈래 나누어진 진보진영을 뒤로 하고 제 갈길 찾아간 것은 고사하고, 18대 대선에 네 명의 후보자가 노동자·민중의 대표라는 이름으로 뛰고 있는데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잃는다.

전태일 열사의 출생일이 1948년 9월28일이니 살아있는 나이로 치면 만 예순넷이 되는 올해. 한탄만 하고 있기에는 상황은 너무도 긴박해 보인다. 오늘의 우울한 운동현실을 시원스레 거둬내는 비방은 어디에도 없는 것인가. 잔혹한 노동유연화와 구조조정의 위협 앞에 노동조건이나 조직력의 현상유지도 버거운 판이지만 “그래도 노동이 희망”이라는 말 그대로 내일의 꿈을 위해 무엇인가 실천의 호미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대선의 향방에 목을 늘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지만 노동운동의 재생을 위한 조그만 변화라도 스스로 일궈 내야 하지 않겠는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퇴조와 도도한 역사의 대전환이 전망되는 상황에서 운동침체와 패배의 변명을 넘어 희망의 메시지가 전태일 열사에게 전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leewb45@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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