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해지면 초등학교 점심시간 풍경이 떠오른다. 교실 난로 위에 차곡차곡 쌓인 양은 도시락은 순식간에 없어진다. 양은 도시락 속에 있던 밥과 반찬은 게 눈 감추듯 없어졌고, 그 순간 교실은 숨죽이듯 조용했다. 집에서 먹는 것 같은 따뜻한 밥은 겨울 추위를 녹이기에 충분했다. 금세 밥을 먹어 치운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고 떠들어 교실은 시끌벅적했다. 양은 도시락은 꿀맛이었지만 그땐 몰랐다. 일하러 나가시는 어머니에게 삼형제의 도시락은 고역이었다는 것을.

세월이 흘러 결혼을 했지만 도시락을 챙겨 주시던 어머니의 고충은 여전히 헤아릴 수 없었다. 아내는 아이를 위해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됐다. 학교에서 일하는 급식조리원이 어머니의 수고를 덜어 줬다. 영양사·조리사·조리원 선생님들은 학교식당에서 밥과 반찬을 만들어 직접 나눠 주고, 교실까지 가져다주신다. 때론 학부모들이 거들기도 하지만 이젠 급식조리원이 대부분 해 주신다. 부모 입장에선 교사뿐 아니라 급식조리원도 아이들의 선생님이다. 아이에겐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뿐 아니라 학교에서 접하는 모든 것이 교육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무심코 흘려보낼 때가 많았다. 학교를 가더라도 교사를 제외하곤 급식조리원의 경우 유령취급하기 십상이다. 도시락을 싸 주시는 어머니의 일을 가사노동으로 여기지 않았듯이 급식조리원이 제대로 대접받는지 깊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아이가 먹는 음식에만 예민했을 뿐 그것을 책임지고 있는 급식조리원에 대해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렇듯 유령취급을 받았던 급식조리원에게 세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급식조리원을 포함한 학교 비정규 노동자들이 9일 하루 총파업을 벌이기 때문이다. 학교 비정규직은 영양사·조리사·조리원·사서·교무·행정·과학·전산실무원·특수교육실무원·돌봄강사·당직기사 등 15만명에 달한다. 학교에서 일하는 전체 교직원의 25%를 차지한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에 소속된 조합원은 3만5천명이다. 이 가운데 급식 업무를 담당하는 조합원이 2만여명이다. 연대회의에 따르면 전국의 학교 1만1천곳 중 연대회의 소속 조합원이 있는 학교는 7천여 곳이다.

이들이 파업을 벌이는 이유는 간명하다. 정치권과 교육당국이 노동권 사각지대에 있는 학교 비정규직을 위한 개선대책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간제 형태의 근로계약을 하는 학교 비정규직은 해마다 계약을 갱신하는데, 2년까지만 고용된다. 비정규직 관련법에 의해 고용기간이 2년으로 제한된 탓이다. 잘리고 난 후 다른 학교에 채용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학교 비정규직이 받는 평균 월급은 100여만원이다. 각종 수당과 상여금은 꿈도 꾸지 못한다.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정규직 교직원은 방학기간에도 월급을 받지만 이들에겐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적용된다. 방학기간엔 사실상 실업상태다. 계약갱신을 거듭해 근속연수가 10년을 넘겨도 1년 일한 이들과 비슷한 임금을 받는다. 물가가 올라도, 근속이 높아져도 임금은 그대로다. 정규직인 일반 공무원에 비해 격차가 클 뿐만 아니라 철저히 차별받고 있다.

이를 개선하고자 학교 비정규직은 노조로 뭉쳤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교육감이 학교 비정규직을 직접고용해 신분을 안정시키고, 호봉제로 전환해 임금차별을 해소하자고 요구했지만 교육당국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시·도 교육감은 단체교섭으로 풀어 보자는 학교 비정규직의 요구를 깡그리 무시했다. 사용자의 지위에 있다는 대법원과 중앙노동위원회의 해석조차 외면하고 행정소송으로 맞불을 놓았다. 학교 비정규직이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런데도 교과부는 파업을 탓하며 학부모들에게 도시락을 싸 달라고 호소할 뿐이다.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와 단체교섭에 응하면 될 일인데도 학부모에게 책임을 떠넘기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도시락 폭탄이라도 있으면 무책임한 교과부를 향해 던지고 싶은 심정이다.

학부모라면 아이들이 차별로 얼룩진 학교현장을 보며 자라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학교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이 선생님으로서 동등하게 대접하기를 원한다. 아이들은 학교라는 창을 통해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교육당국은 더 이상 학교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말로만 하지 말아야 한다.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와의 단체교섭에 성실히 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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