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림
전국비정규직
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지난 30일 대한상의 초청간담회에서 “일자리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와 기업·노동자 등 이해관계자 모두가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한다”며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규직도 어느 정도 내려놓을 것이 있다”고 밝혔다. 기업인 출신의 안 후보는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을 정부와 기업의 노동신축화 전략의 결과가 아니라 ‘격차’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진영 역시 ‘사회적 대타협’을 강조하고 있다. 문 후보 선대위 이정우 경제민주화위원장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국가가 앞장서 재벌개혁·중소기업·골목상권·임금·노동시간·비정규직·노조·복지·조세문제를 포함하는 사회적 대타협 모델을 제시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을 노사정의 타협, 더 정확히는 노동자의 양보의 문제로 접근하는 주장은 사실 연원이 오래된 것이다. 김대중 정권은 98년 2월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동의 양보로 정리해고제와 파견법을 수용하도록 하는 노사정 합의를 만들어 냈다. 노무현 정권은 ‘대기업·정규직 노동조합 중심의 노동운동의 이기성’이라는 공세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 속에서 지금은 누구나 폐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이라는 기간제법 제정과 파견법 개악을 노동의 저항을 무릅쓰고 관철시켰다. 이명박 정권은 민주노조운동을 노골적으로 공격하긴 했지만, 노동자의 양보를 전제로 한 노동시간단축과 같은 노동신축화 전략을 입법화하는 데 성공하진 못했다.

대통령은 달라도 지난 15년간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에 접근해 온 패러다임은 대체로 비슷하다. 비정규직이 확산되는 원인을 정규직의 고용경직성에서 찾기 때문에 일자리 문제의 해법을 해고에 대한 규제완화로 돌린다.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을 차별, 더 정확히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의 문제로 보고 정규직의 노동조건 양보(저하)를 요구한다. 이상의 전제 위에서 ‘사회적 안전망’으로서 비정규직 차별 축소와 함께 “평생 직장이 아닌 평생 직업”으로 살아 남기 위한 고용서비스를 강조한다. 요약하자면 기업이 노동자를 쉽게 자를 수 있으면 굳이 비정규직만을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고용이 불안해도 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로 차별이 축소되고 몇 년에 한 번씩 원활하게 일자리를 구할 수만 있다면 사회적으로 큰 불만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처방이다.

이러한 접근법이 보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 더 정확히는 말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비정규직 문제를 낳은 자본의 탐욕이다. 세계 4위의 자동차기업인 현대자동차의 사례를 보자. 현대차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4조7천771억원으로 발표됐고, 이 중 4천801억원이 주주들에게 배당됐다. 또한 현대차 금고에는 3조5천300억원 이상의 이익잉여금이 준비돼 있다. 심상정 의원과 금속노조의 추산에 따르면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전체인 1만2천955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드는 비용이 연간 4천479억원이라 한다. 최대치로 봐도 지난해 주주들에게 배당된 금액의 규모보다 작다.

현대차 매출액은 2002년 24조5천600억원에서 2009년 12월 말 현재 31조8천600억원으로 30% 가까이 증가했다. 당기순이익은 같은 기간 1조4천400억원에서 2조9천600억원으로 무려 105.5% 늘어났다. 반면에 현대차의 생산직 정규직의 경우 2만9천400명에서 3만1천600명으로 고작 7.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쉽게 말해 현대차는 정규직 고용을 최소화하고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을 계속 쥐어짜냄으로써 이윤을 남기고 있는 셈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진정한 해법은 이러한 자본의 탐욕을 통제하는 데 있다. 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가 아니라 노동신축화를 규제하고 비정규직 활용을 제한해야 한다. 비정규직 활용을 통해 노동자와 사회 전체에 고통과 비용을 전가하는 기업에 대해 하다 못해, 혼잡유발부담금과 같은 노동시장악화 특별세를 물려야 한다. 노동자들의 노동3권 행사에 제약이 되는 법·제도를 없애고, 노동자를 사용하는 자가 책임을 지도록 해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주체를 세워야 한다. 이러한 자본에 대한 통제 없는 비정규직 해법은 결국 다시 노동자와 사회에 그 비용을 전가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노동자의 양보가 아니라 자본의 책임이 필요하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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