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규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참터)

1. 사건의 개요
사용자인 피고와 피고의 노동자들인 원고들은 ‘퇴직금을 연봉액에 포함시켜 미리 지급키로 하는 연봉계약’을 체결했다. 피고와 원고들은 근로기간 동안 2가지 종류의 연봉계약서를 체결했다. 2004년 2월 이전에 체결된 연봉계약서에는 ‘퇴직금은 연봉금액에 포함된다’는 취지만이 기재됐을 뿐 퇴직금 명목의 금액이 특정돼 있지 않았다. 반면에 2004년 2월 이후에 체결된 연봉계약서에는 퇴직금 명목의 금액이 특정됐고, 퇴직 시 별도의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합의가 담겼다.

원고들은 위 연봉계약에도 불구하고 퇴직 후에 피고에게 퇴직금을 청구했다. 원심(인천지방법원 2010.10.26. 선고 2008나14947 판결)은 퇴직금이 연봉액에 포함돼 미리 지급됐다는 피고의 주장을 배척했다. 그러나 원심은 2004년 2월 이후에 체결된 ‘연봉계약서’에 매월 지급되는 퇴직금 명목의 금원이 특정돼 있었다는 이유로 원고들이 2004년 2월 이후에 수령한 퇴직금 명목의 금원을 ‘부당이득’으로 보고, 이를 피고에게 반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대상판결은 “퇴직금 제도를 강행법규로 규정한 입법취지를 감안할 때 위와 같은 법리는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실질적인 퇴직금 분할 약정이 존재함을 전제로 해 비로소 적용할 것이어서, 사용자와 근로자가 체결한 당해 약정이 그 실질은 임금을 정한 것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퇴직금의 지급을 면탈하기 위해 퇴직금 분할 약정의 형식만을 취한 것인 경우에는 위와 같은 법리를 적용할 수 없다”고 봤다. 원고들이 이미 수령한 퇴직금 명목의 금원을 피고에게 반환해야 한다고 본 원심의 판단을 부정한 것이다.

2. 쟁점 검토
가. 연봉제 확산에 따른 퇴직금 제도의 혼란
최근 많은 기업들이 ‘호봉제’에서 ‘연봉제’로 임금체계를 변경했다. 연봉제는 급여 계산의 편리성은 물론, 성과와 임금을 연동시킬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편리성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퇴직금을 연봉액에 포함시켜 미리 지급했다. 많은 기업들이 ‘퇴직시 지급되는 임금’이라는 퇴직금의 법률적·사전적 의미와 달리 퇴직금 제도를 운용한 것이다.

기업들이 성과나 급여 계산의 편리성을 지향한 것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부 기업들이 기존에 엄연히 임금으로 지급되던 금액을 퇴직금 항목으로 분할하고, 이를 통해 퇴직금 부담을 면하려는 것이 문제였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이 퇴직금을 연봉액에 포함시킨다는 취지의 연봉계약서를 스스로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를 상대로 퇴직금을 다시 청구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편법적 인사 관리가 불필요한 법적 다툼으로 이어진 것이다.

나. 연봉액에 포함돼 미리 지급된 퇴직금의 효력
사용자와 노동자가 연봉액에 퇴직금을 포함해 미리 지급하기로 약정한 경우, 이를 유효한 퇴직금 지급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우리 대법원은 “사용자와 근로자가 매월 지급하는 월급이나 매일 지급하는 일당과 함께 퇴직금으로 일정한 금원을 미리 지급하기로 약정(이하 ‘퇴직금 분할 약정’이라 한다)했다면, 그 약정은 퇴직금 중간정산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아닌 한 최종 퇴직시 발생하는 퇴직금청구권을 근로자가 사전에 포기하는 것으로서 강행법규에 위배되어 무효이고, 그 결과 퇴직금 분할 약정에 따라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퇴직금 명목의 금원을 지급하였다하더라도 퇴직금 지급으로서의 효력이 없다”는 판단 기준에 따라 퇴직금 청구권의 존부를 판단하고 있다. 대상판결 역시 이 같은 판단 기준에 따르고 있다. 즉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상 퇴직금 중간정산의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이를 유효한 퇴직금 지급으로 인정할 수 있다. (대법원 2010.05.20. 선고 2007다90760 판결, 대법원 2007.8.23. 선고 2007도4171 판결, 대법원 2002.7.26. 선고 2000다27671 판결 등 참조)

이와 관련해 옛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8조 제2항은 퇴직금 중간 정산의 요건을 ‘노동자의 요구’와 ‘사용자의 동의’로만 정하고 있어서, 사용자들이 퇴직금을 연봉액에 포함시켜 미리 지급하는 것이 법률적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최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8조 제2항이 개정됐다.(법률 제10967호, 시행 2012.7.26) 동 법률 개정에 따라 퇴직금 중간정산의 사유가 보다 엄격해짐으로써, 이제는 연봉액에 퇴직금을 포함해 미리 지급하는 근로계약의 성립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제3조(퇴직금의 중간정산 사유) ① 법 제8조제2항 전단에서 “주택구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를 말한다.
1. 무주택자인 근로자가 본인 명의로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2. 무주택자인 근로자가 주거를 목적으로 「민법」 제303조에 따른 전세금 또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2에 따른 보증금을 부담하는 경우. 이 경우 근로자가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이하 “사업”이라 한다)에 근로하는 동안 1회로 한정한다.
3. 근로자, 근로자의 배우자 또는 「소득세법」 제50조제1항에 따른 근로자 또는 근로자의 배우자와 생계를 같이하는 부양가족이 질병 또는 부상으로 6개월 이상 요양을 하는 경우
4. 퇴직금 중간정산을 신청하는 날부터 역산하여 5년 이내에 근로자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라 파산선고를 받은 경우
5. 퇴직금 중간정산을 신청하는 날부터 역산하여 5년 이내에 근로자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개인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은 경우
6. 「고용보험법 시행령」 제28조제1항제1호부터 제3호까지의 규정에 따른 임금피크제를 실시하여 임금이 줄어드는 경우
7. 그 밖에 천재지변 등으로 피해를 입는 등 고용노동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사유와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

다. 퇴직금으로 미리 지급된 금원의 반환 여부
‘연봉액에 포함시켜 미리 지급한 퇴직금’의 효력이 부인되는 경우 한 가지 문제가 남는다. 노동자가 미리 수령한 퇴직금 명목의 금원을 반환해야 할까? 이에 대해서는 이를 임금의 일부로 인정해 반환할 의무가 없다는 견해와 이를 부당 이득으로 보아 반환할 의무가 있다는 견해가 대립했다.

전자는 사용자가 퇴직금 명목의 금원을 매월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했다면, 이는 퇴직금 지급으로서 효력이 없는 한 근로의 대가로서 통상임금의 일부에 해당되므로 부당이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견해다. 주로 하급심에서 인용됐다.(인천지방법원 2007.4.5. 선고 2006나12992 판결, 서울지방법원 2002.12.11.선고 2002나24439 판결 참조)

반면에 전자는 사용자가 퇴직금 명목의 금원을 지급했으나 퇴직금 분할 약정이 무효가 돼 퇴직금 지급으로서 효력이 없다면, 사용자는 법률상 원인 없이 퇴직금 명목의 금원을 지급한 셈이 되므로 노동자는 기 수령한 퇴직금 명목의 금원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한다는 견해다(대법원 2010.5.20. 선고 2007다90760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3. 판례의 의의
‘연봉액에 포함돼 미리 지급된 퇴직금’의 효력에 관한 우리 대법원의 입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상 적법한 중간정산으로 인정되지 않는 한, 미리 지급된 퇴직금의 효력은 인정될 수 없다. 다만, 노동자가 미리 수령한 연봉계약서상 퇴직금 명목의 금원은 부당이득으로서 반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사용자와 노동자간 힘의 역학 관계를 충분히 고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용자는 노동자와 연봉계약을 체결하면서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즉, 사용자는 마음만 먹으면 기존 임금액을 분할해 퇴직금 항목을 연봉계약서에 언제든 신설할 수 있다. 만약 노동자가 갓 입사한 신입 사원이거나 오랜 실업 끝에 어렵게 일자리를 다시 잡은 노동자인 경우, 사용자의 의도는 더욱 쉽게 관철될 것이다.

대상판결은 이와 같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원심은 연봉계약서상 퇴직금 항목의 존부만을 판단해, 쉽사리 노동자의 부당이득 반환 의무를 인정하고 말았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사용자와 근로자가 체결한 당해 약정이 그 실질은 임금을 정한 것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퇴직금의 지급을 면탈하기 위하여 퇴직금 분할 약정의 형식만을 취한 것”인지 여부를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함을 밝히고 있다.

대상판결은 이와 같은 견해에서 “월급의 형태로 임금을 지급받는 원고들의 처지에서 퇴직금으로 지급되는 부분과 그렇지 아니한 부분을 명확히 구별하여 지급받았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을 강조했다. 또 “원고들의 2004년 및 2005년 연봉금액에서 퇴직금 명목 금액을 제외하면 오히려 2003년 연봉금액보다 삭감되어 근로계약이 불리해진 결과가 되는데, 이는 2001년 이래 연봉금액의 증가 추세에 비추어 납득하기 어려워서 2004년 이후의 실질 연봉은 퇴직금 명목 금액을 포함한 금액으로 봄이 상당한 점”등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판단했다. 연봉계약서의 형식적 문구에 구애 받지 않고, 그 실질을 보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4. 결론을 대신해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에 따라 연봉액에 포함된 퇴직금의 효력 여부를 다투는 소송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법률 개정의 효력과 무관한 퇴직금 소송만이 다퉈질 테니 말이다. 그러나 대상판결의 의미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변화된 상황에서도 편법적 임금 집행을 통해 법적 의무를 면탈하려는 일부 사용자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상판결과 같이 ‘형식’보다는 ‘실질’을 보려는 법률적 판단만이 이들을 제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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