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지회 홍종인 지회장이 지난 21일부터 아산공장 앞 굴다리 위에서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지회의 요구는 회사와 창조컨설팅이 만들어 낸 어용노조인 유성기업(주)노동조합을 해체하고,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는 것이다. 지난달 24일 국회 환노위 청문회와 이후 국정감사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듯이 유성기업은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금속노조를 약화시키고 어용노조를 다수 노조로 만들기 위해 온갖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한 의혹을 받고 있다.

창조컨설팅의 자료를 통해 드러난 유성기업의 어용노조 육성전략은 크게 네 부분으로 돼 있다. 첫째 직장폐쇄를 통해 금속노조 조합원 이탈을 유도하고, 둘째 복수노조가 허용된 지난해 7월을 기점으로 어용노조를 설립하는 것이다. 셋째 금속노조 조합원에게는 징계를 추진하고 어용노조에는 교섭과 일상활동을 지원해 노조 간 경쟁에서 어용노조가 우위에 설 수 있도록 한 뒤, 넷째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어용노조가 교섭대표노조가 될 수 있도록 사무관리직을 가입시켜 조합원수를 늘린다는 것이다. 창조컨설팅이 자문하고 유성기업이 실행한 이 계획은 그대로 실행됐다. 현재 유성기업의 교섭대표권은 어용노조가 가지고 있다.

한편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창조컨설팅이 자문한 기업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부당노동행위는 암세포와 같다”는 표현까지 써 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노동부가 해 온 행태를 생각해 보면 과연 노동부가 적절한 수사를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사업주를 실제 규제할 수 있는 처벌을 가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기대가 크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창조컨설팅이 자문한 핵심 내용 중 하나가 바로 관계기관에 대한 로비와 공조였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그렇다.

특히 문제는 노동부가 사측 부당노동행위의 결과물인 어용노조에 대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노조법 2조에 따르면 노동조합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는 단체다. 회사가 금속노조 파괴를 목적으로 만든 단체는 노동조합이 아니다. 지난해 7월 노동부가 설립신고를 접수한 유성기업(주)노동조합은 창조컨설팅의 자문에 따라 설립부터 운영까지 회사가 주도한 단체로 노동조합이 아니다. 노동부는 설립신고를 취소해야 한다. 현재까지 노동부의 발언에는 부당노동행위에만 초점이 가 있을 뿐, 그 결과물인 어용노조를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 없다.

어용노조를 내버려 둔 채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만 소극적인 처벌을 내린다면 사용자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 될 것이다. 왜냐면 부당노동행위 최고 벌금이 2천만원이니 최대 2천만원으로 어용노조를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2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도 있으나, 부당노동행위로 구속된 사용주는 지난 10년간 악덕 임금체불 건을 제외하면 연간 2명이 되지 않는다. 사용자로서는 부당노동행위를 통해 어용노조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민주노조를 약화시키는 일이 해 볼 만한 비즈니스가 된다는 것이다. 창조컨설팅의 자문내역도 사실 이러한 법적 허점을 바탕에 깔고 있다. 또한 창조컨설팅이 문을 닫아도 노조법의 허점을 이용한 민주노조 파괴 컨설팅이 계속 확대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용노조에 대한 민주노조의 해법은 무엇보다 스스로의 힘으로 어용노조가 발을 붙일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제도의 힘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단결력을 기초로 힘을 발휘하는 것이 기본이다. 어떤 제도도 노동자 스스로의 강한 의지가 없다면 자주적이고, 민주적이며, 연대를 지향하는 노동조합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물론 지금과 같은 친사용자적 노조법은 대폭 개선해야 한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부터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폐지까지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는 사용자 개입을 근절하는 것이 아니라 줄여 주는 역할을 한다. 어용과 민주가 다른 근본적 이유는 스스로가 만들 수밖에 없다.

현재 유성기업에서는 조금씩이나마 어용노조에 가입돼 있었던 조합원들이 다시 금속노조로 재가입하고 있다고 한다. 유성기업 아산·영동지회는 현장에서 노동권을 지켜 내기 위한 다양한 투쟁을 벌이고 있고, 어용노조 집행부의 실체에 대해 폭로하고 있다. 사측의 강압 속에 어용노조로 끌려간 노동자들도 청문회를 통해 밝혀진 사측과 창조의 끔찍한 노조파괴 공작에 치를 떨고 있다고 한다. 꽤 많은 숫자가 금속노조로 재가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금속노조가 이 투쟁에 좀 더 힘을 보태 어용노조를 박멸하는 ‘금속노조 스타일’을 유성기업에서부터 시도해 봐도 좋을 것이다.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노동부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사용자 처벌과 동시에 부당노동행위로 탄생한 어용노조에 대해서도 해법을 내놓기 바란다. 이번 창조사태에 대해 꼬리 자르기 식 결과를 내놓는다면 결국 노동부 역시 창조와 한편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 될 것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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