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실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노동과 삶)

매주 목요일이 되면 사무실 한켠에서 색도화지를 이렇게 저렇게 자르고, 풀로 붙이는 공작시간을 보낸다. 구로근로자복지센터와 함께 노동인권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오류중학교를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일과다. 10주에 걸쳐 매주 금요일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학생들과 만나 노동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 생긴 것이다.

근로기준법에서는 만 15세 이상부터 근로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중학교 3학년은 이 나이에 딱 맞는다. 때문에 중학교 3학년생들을 만나서 물어보면 이미 노동을 경험한 친구들이 꽤 된다. 근로기준법과 상관없이 초등학교 때부터 전단지를 돌리는 아동노동을 경험한 청소년들도 상당수다. 청소년 노동을 경험한 친구들에게 노동을 할 때 여러분을 보호하는 법과 권리가 있다고, 이에 대해 배운 적이 있냐고 물어보면 100% 없다는 대답을 듣게 된다. 청소년(만 15세 이상 만 18세 미만) 중 절반 가까이가 노동현장에 뛰어드는 현실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노동권 보호와 권리에 대한 교육이 하루빨리 정규 교과과정에 포함돼야 할 것이다.

중학교 3학년이든 고등학생이든 교육을 진행해 보면 일방적인 강의식 교육이 얼마나 의미 없는지 체감하게 된다. 학교 선생님도 아닌 외부강사가 들어와 강의를 해 봐야 ‘쇠귀에 경 읽기’다. 때문에 매번 여러 가지 형태의 교육방식을 시도해 본다. 때로는 책상을 치우고 움직이게 해 보고, 때로는 스케치북을 나눠 주고 골든벨 형식으로도 해 본다. 그러나 사실 같은 학교에서도 반의 분위기에 따라 매번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전날의 준비가 아무 소용이 없는 때도 부지기수다. 그래도 3년간의 중학교 수업 중 단 한 시간뿐인 노동권 교육시간이기 때문에 이 시간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 시간이 지나면 오늘 수업을 들은 3분의 1 이상의 청소년이 노동현장으로 뛰어들기 때문이다.

오류중학교에서는 “청소년 노동권 0X”라는 이름의 교육을 진행했다. 가장 호응이 좋았던 것은 ○×판을 나눠 주고 상품(칸초나 빼빼로 같은 소소한 먹을 것이 가장 좋다)을 걸고 맞혀 나가는 것이었다. 반칙과 커닝이 오간다. 나만 믿으라고, 내가 일해 봐서 안다는 청소년도 있다.

대부분 쉬운 질문에서 시작하긴 하지만 정답자가 너무나 많은 상황에 조금 당황하곤 한다. 오류중학교에서의 마지막 수업 역시 그랬다. 질문 13개 중에서 질문 4번까지 오답자가 30명 중 5명도 되지 않았다. 주로 노동자와 사용자에 대한 개념, 임금의 기본원칙, 근로계약서 작성·지급 의무에 대한 문제들이었다. 노동권 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데 어떻게 문제를 맞히는지 물었다. 답은 “에이, 이런 건 ‘초록불에 길을 건너요’ 같은 당연한 거잖아요”였다.

항상 교육을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말하곤 했다. “법은 상식이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이렇게 돼야 하는 것에 대해 알아보자.” 그러나 노무사로서 법을 공부해서 알아야 했던 나는 말만 그럴 뿐, 법을 너무나 어렵게 생각했던 것 같다. 맞다. 임금을 목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노동자이고,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알바이든 간에 모두 노동자다. 임금은 노동하는 사람에게 직접 전액을 줘야 하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 당연히 노동자에게 줘야 한다. 이런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에서 너무 오래 살았던 것 같다.

오늘 만난 이 청소년들이 언제까지고 이러한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느끼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그리고 당연한 것을 세상이 지키지 않을 때, 분연히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정당하게 맞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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